강근태 군(18·전북 전주)은 이번 선거에 참여하지 않을 생각이다. 투표할 수 있는 나이가 됐지만 정치에 대해 깊이 고민한 적이 없어서다.

“선거권이 생겨 기쁘긴 한데 걱정이 더 돼요. 저희 또래는 선거나 정치에 대해 잘 몰라서 물타기로 갈까 봐 우려됩니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정치를 비롯해 세상 돌아가는 일과 격리된 게 바람직한 학생의 상으로 여겨져 왔다. 제대로 된 정치교육 없이 어느 날 갑자기 투표권 생겼으니 참여하라는 건 모순”이라고 말했다.

정치에 관심 많았던 18세 유권자도 고민하기는 마찬가지다. 김민지 양(18·경기 고양)은 선거와 정당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게 없어서 부담스럽다. 정치에 무관심하지는 않았다. 눈길을 끄는 이슈는 낮은 성범죄 처벌 수위다.

투표에 참여하고 싶었던 마음도 간절했다. 김 양은 “목소리를 대변해줄 국회의원이 없다는 게 정치에 불만을 느끼게 되는 요소 중 하나”라며 “청년,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할 국회의원에게 투표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말했다.

조세영 양(18·경남 거제)도 투표가 처음이라 모르는 게 많다. “평소 학생에게도 투표권이 주어지길 바랐어요. 후보는 표를 얻기 위해 공약을 제시하잖아요. 학생은 투표권이 없다 보니 학생을 위한 공약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영산대 장은주 교수(성심교양학부)는 “미래 세대가 제대로 된 민주시민교육을 받아 수준 높은 주권자로 성장했을 때만 청소년 유권자 유입이 정치권을 합리적인 정책 경쟁의 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도 학교에서의 정치교육을 원했다. 조우현 군(18·경기 고양시)은 “실현 가능한 공약인지, 현실에 부합한 공약인지를 가려내도록 비판적 사고를 키워주는 교육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보이텔스바흐 합의 3원칙

독일에서는 어떨까. 학교에서 정치를 적극적으로 논의한다. 보이텔스바흐 합의 덕분이다. 분단 상황에서 학교의 정치교육을 놓고 학자들이 오랜 토론을 해서 1976년에 만들었다.

합의는 3개 원칙으로 압축된다. 강제(또는 교화) 금지의 원칙, 논쟁성의 원칙, 학생행동 지향의 원칙이다. 학생은 민감한 정치적 사안일수록 더 치열하게 토론한다. 물론 교사의 지도 아래 일정한 절차와 방식을 따른다.

장 교수는 ‘한국판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만드는 일이 성숙한 민주주의를 만드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첨예한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민감한 정치적 사안을 치열하게 토론하는 바탕 위에서 (학생들이)이성적 숙고에 기초한 견해를 형성할 수 있게 된다.”

청주교대 허영식 교수(사회과교육과)는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수업에 반영할 때 ‘관점의 다양성’을 가장 유념할 부분으로 꼽았다. 교사가 논쟁적인 사안에 대해 일방적인 시각과 관점을 선전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또 허교수는 “중요한 입장을 수업에서 아무도 옹호하거나 거론하지 않으면 교사는 이를 끌어들이고 학생이 분명히 이해하도록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사 개인의 입장을 떠나서 꼭 필요한 방식이라고 했다.

장은주 교수는 “단순히 투표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에 대해서만 기꺼워하지 말고 투표의 참된 의미, 우리 사회 정치 현실과 과제를 살피면서 스스로의 성숙이 갖는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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