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인 안내견을 환영합니다' 
지난 5월 방한한 엘리자베스 여왕과 면담을 가졌던 한 시각 장애인 학생이 그의 충실한 맹인견과 함께 언론에 보도된 이후 이런 문구를 담은 스티커를 붙인 가게들이 속속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환영의 글을 읽고 그 가게를 찾을 수 있는 것은 맹인일까? 맹인 안내견일까? 일반인들에게 가게의 이미지를 좋게 만들려는 상술은 그냥 두더라도 장애인을 고려하지 않은 장애인 정책은 건강한 일반인들에게 좋은 생색 거리가 될 뿐이다. 


교과서도 예외일 수는 없다. 초등학교 1~6학년까지 국어 교과서를 조사해 본 결과 장애인에 대한 내용을 다룬 단원은 4학년 1학기와 5학년 1학기의 단 두 곳뿐이었다. 장애인을 주제로 하지 않더라도 일상 생활에서 장애인을 묘사한 부분도 있을 법 한데, 저학년 교과서 매 페이지마다 가득 차 있는 삽화 중에서 장애 아동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처음 배우는 1학년 1학기 바른 생활 '제 4과-화목한 우리 가족'에는 몸이 불편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 그러면 '제 9과-여럿이 모이는 곳'을 볼까? 역시 음식점에서도, 차 안에서도, 전시장, 박물관에서도, 극장에서도, 동물원에서도, 병원에서도, 경기장에서도 그 많은 어린이들 사이에서 휠체어를 타거나 신체가 부자유스러워 보이는 어린이의 모습은 단 한명도 보이지 않는다. 

꾸중 정도는 대신 받아 줄 만큼 건강한 문종이는 불쌍한 영탁이의 진정한 친구?

'진정한 친구'라는 제목으로 4학년 2학기 국어(읽기) 교과서에 실린 글을 보자. 한쪽 팔을 쓰지 못하는 영탁이는 그 날도 반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고 있었다. 그러다 영탁이는 채소 장사를 하는 자신의 어머니까지 흉내 내며 놀리는 아이들에게 참다 못해 물통을 던진다. 그 순간 들어오신 선생님이 누구의 짓이냐고 문책하자 그때까지 보고만 있던 문종이가 영탁이 대신 일어나 꾸중을 듣는다. 그러나 결국 영탁이가 일어서서 자신이 친구들의 놀림을 참지 못하고 물통을 던진 것이라고 울먹이며 고백하자 선생님은 그 둘을 앉히고 다시 영탁이를 놀린 아이들에게 벌을 준다. 그리고는 문종이의 얼굴을 들게 해서 문종이야 말로 진정한 친구라고 칭찬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이 글에는 놀라울 정도로 장애인에 대한 일반인의 편견이 고스란히 스며있다.

" 누구 짓이지? … 누구야? 말해봐."
문종이는 영탁이가 가엾은 생각이 들었는지 벌떡 일어나 말했습니다.
"제가 던졌습니다."
                                                                                                                             -           -4학년 2 읽기 교과서 114쪽 

그러나 과연 영탁이는 자신이 가엾게 여겨져서 보호받았다는 사실에 진정 고마워했을까? 장애인들도 자신이 불쌍하고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여겨지기 보다는 활동이 조금 불편하지만 평범한 시민으로 인정받기를 원한다. 따라서 선생님이 문종이를 칭찬한 이유가 불쌍한 장애인 친구를 대신해서 벌을 받으려고 한 것이라면 비판의 여지가 있다. 아이들의 일상에서 서로 놀리는 것은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굳이 건강한 아이가 몸이 불편한 아이를 도우려 했다는 일화가 '진정한 친구'라는 제목으로 교과서에 실린 것은 역시 건강한 이의 생색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오히려 이 글에서 주의 깊게 살펴볼 것은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철없는 아이들이다. 몸이 불편한 친구를 흉내 내며 노골적으로 놀리는 아이들, 이들을 말리지 않고 암묵적으로 동참한 나머지 아이들, 심지어 나중에서야 영탁이를 가엾게 여기고 자신을 희생하려고 한 문종이까지…. 결국 영탁이에게는 같은 반에 친한 친구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 물론 이 글 자체는 몸이 불편하거나 가난한 친구를 놀려서는 안되고 친구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전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교과서의 지문과 삽화 하나에서부터 아이들에게 장애인 친구에 대한 편견과 거부감을 갖지 않게 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기울여 왔는지 묻고 싶다. 

장애 아동의 동심은 고려하지 않는 학교

<학교에선>
옷장 속엔/ 옷들이 모여서/ 즐겁게 속닥거릴 거예요// 이불장 속엔/ 이불들이 모여서/ 두런두런 이야기 나눌 거예요.// 나는 나는/ 우리 집에서/ 가족들과 즐겁게 지내지만// 학교에선/ 답답한 가슴 안고/ 눈빛으로 말해요.
<그림자>
그림자는/ 나를 좋다고 따라다닌다/ 모습이 일그러지고/ 흉해 보여도// 그림자에게/ 다른 친구들과 똑같은 모습/ 안겨주고 싶다.
한 초등학교 교사(최갑순, 서원초등학교)가 지체 장애아들이 모인 특수반을 가르친 경험을 바탕으로 펴낸 동시집 「3학년 6반-나는 장애인이 아니예요」에 실린 동시들이다. 장애 아동이 바라본 학교와 친구들, 자신의 모습에 대한 담담한 서술에서 그들이 느끼는 학교 생활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서울초등특수교육연구회 이사도 역임하고 있는 최갑순 선생님은 "적어도 한 학기나 두 학기에 한 번 쯤은 교과서에도 장애 아동의 시각을 고려한 동화나 동시가 실려야 하지 않겠느냐"라는 견해와 함께 "지금까지 교과서에는 장애 아동을 염두에 둔 배려가 전혀 없었다"고 말한다. 
   
초등학교 교과서는 어린이들에게 그들이 속한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지식을 전달한다. 또한 가족을 벗어난 공동체 속에서 최초의 학습이라는 점에서 교과서를 이용한 초등학교 교육이 어린이들의 의식 형성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만약 교과서에서부터 장애인과 일반인들이 동등한 가족과 친구이자 동반자로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점차 사라질 것이다. 하루 빨리 교과서에서 휠체어를 탄 영희와 맹인견을 데리고 다니는 철수가 건강한 영수, 선영이와도 사이 좋게 지내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한다.

김재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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