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담 씨(25)는 3월 26일부터 몸에서 열이 났다. 코로나19가 아닐까 걱정이 됐다. 근처 내과를 찾았다. 의사는 몸살 같다며 해열제만 처방했다. 괜찮겠다고 생각해 다음 날 출근했다.
 
회사 입구의 열 탐지 카메라에 체온이 높다고 나왔다. 경비원이 나와 확인하니 37.4°C. 기준치(37.5°C)가 넘지 않아 들어갈 수 있었지만 주변의 시선이 따가웠다.
 
별다른 증상이 없어 다음날에도 출근했다. 오후가 되자 기침을 하고 가래가 끓었다. 그럴 때마다 주변 직원들이 신경 쓰였다.

인턴 신분으로서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다시 내과를 찾았다. 흉부 엑스레이도 촬영했다. 큰 문제가 없어 다른 약을 추가로 받았다. 1339에 전화했더니 다음 날까지 지켜보자고 했다.
 
백 씨는 걱정이 커졌다. 증상이 코로나19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신이 감염됐으면 회사가 문을 닫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 심각해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1339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상담원은 집 근처의 선별진료소를 알려주며 다음날 꼭 방문하라고 했다.
 
대학병원의 선별진료소를 3월 22일에 갔다. 사람이 많지 않아 조용했다.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지쳐 보였다. 이마와 광대 부분에 테이프를 덧댔고 고글과 마스크를 썼다. 가까이서 봤더니 방호복 안으로 땀이 맺혔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증상을 설명했더니 의사는 “검사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면 된다”고 했다.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말에 백 씨는 코로나19에 감염됐으면 어쩌나 두려움이 커졌다. 

▲ 백담 씨가 받은 코로나19 검사표

백 씨는 PCR 검사를 받았다. 침이나 가래에서 유전자 정보를 채취해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면봉 하나로 입속을, 다른 하나로 콧속을 긁어냈다. 5분이 안 걸렸다.

결과가 다음날 나온다는 말을 듣고 집으로 갔다. 돌아가는 길에 백 씨는 3일 동안 출근하며 수많은 사람을 마주친 사실이 생각났다. 확진 판정을 받고 동선이 공개되면 욕을 먹을까 걱정됐다.

그날 밤에 문자로 결과를 통보받았다. 음성판정. 하지만 열이 계속 나거나 기침을 하면 안심할 수 없다. 이틀이 지나고 증상이 사라지자 백 씨는 걱정을 덜 수 있었다. 백 씨는 당시를 설명하며 “며칠 동안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대구에 사는 김명준 씨(26)도 3월 11일 선별진료소를 갔다. 기침과 가래 등 코로나19와 비슷한 증상이 1주일 넘게 나타났다.

그는 3월 초부터 감기 기운을 느꼈다. 환절기면 쉽게 감기에 걸리는 체질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1주일이 지났지만 증상이 심해졌다. 3월 9일부터는 가슴 통증까지 느꼈다.
 
김 씨는 지정병원을 방문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대구에서 확진자가 계속 나오는 상황이라 병원도 안심할 수 없었다. 김 씨는 우선 1339에 전화했다. 의심할만한 접촉은 없고 증상만 있다고 설명했다.

상담사는 선별진료소가 있는 보건소를 안내했다. 돈이 들더라도 검사를 하고 싶었다. 가족과 친구 등 지인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김 씨는 바로 보건소로 갔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았다. 확진자라면 버스나 지하철에서 여러 사람이 감염될지 몰라서다. 30분 정도 걸어서 도착했다.

보건소 앞의 선별진료소에 1, 2번 천막이 보였다. 먼저 1번 천막에서 진료를 받았다. 가래가 끓고 가슴 통증이 있다는 말에 의사는 김 씨를 2번 천막으로 안내했다. 거기서 PCR 검사를 받고 나왔다. 코로나19와 증상이 비슷한 까닭인지 검사비를 내지 않았다.

▲ 코로나19 검사자에게 배부하는 귀가 안내문

결과가 나올 때까지 걱정을 떨칠 수 없었다. 확진 판정을 받으면 가족과 친구가 위험해질까 걱정했다. 방문했던 마트가 문을 닫거나 음식점이 장사를 못 할까 괜히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음성판정 문자를 받고 안도했다. 그러고도 1주일 동안 안심할 수 없었다. 증상이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집 밖으로 나갔다.

김 씨는 “아픈 사람을 걱정해줘야 하는데 아픈 사람이 걱정하고 있다”며 따뜻한 위로를 건네기를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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