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국민회의 부총재

나의 스무 살은 어떠했던가. 먼저 암울한 회색과 학교의 뒷담이 생각난다. 자유와 등치되지 않는 쿠테타와 유신의 시대를 절망 이외에 무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나서 한참 후에 낭만과 향수 같은 것을 떠올리게 된다. 나의 이십대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평가가 중요한 것처럼 느끼고 오랜 시간을 살아왔지만, 지금에 와서야 내가 스스로에게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을 알게 된다. 오늘 뒤돌아보면 다른 그림도 보이고 다른 선택도 보이지만 그 때는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당시 내가 정말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지금 20대들은 훨씬 자유로워 보인다. 그러나 이 시대를 위해 어렵게 살아간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그렇다고 과거의 정신으로 돌아가자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바보가 되는 것이겠지. 내 식으로 하자면 70년대는 김지하의 시대였고, 80년대는 운동의 시대였고, 90년대의 초반은 서태지의 시대였다고 말하고 싶다. 시대를 읽고 앞서간 사람들에게서 우리는 희망과 미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한한 잠재력이 썩어 가고 황폐화되는 상황을 지켜보는 것은 내게 있어서 가장 큰 고문이었다. 내가 그럴 때가 있었으며, 무수히 많은 여러분의 선배들이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키다가 어느새 그렇게 되어갔다. 그래서 가끔 독재자 박정희는 물론이고, 뒤꽁무니를 쳤던 이른바 전문가들이 마치 역사의 짐을 다 진 것처럼 행세하는 것이  못마땅하다. 

내게 취미가 있다면 상상과 공상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그러나 무한한 자유의 꿈과 엄청난 도전 가능성을 십분 발휘해 보지 못한 것 같아 아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를테면 모터사이클도 한번 제대로 못 타 보고 젊은 날을 지나왔다. 이제 대학교 2학년인 아들 녀석에게 물을 때가 된 것 같다. 평생 제일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았느냐고, 지금 최선을 다해서 하고 싶은 일이 있느냐고 말이다. 여러분에게도 역시 똑같은 질문을 드리고 싶다.

누가 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어느새 한참이나 뒤처진 듯해서, 부지런히 영어로 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인터넷으로 새로운 세상을 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다가 문득문득 나이를 생각하고 젊은 날을 생각한다. 가끔은 지나온 세월이 왜 이리 서러운 것인가 하고 생각할 때도 있다. 한 시대를 열심히 살았다. 그렇다고 만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에게 정말 진지하게 물어 내일 내가 갈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말이다.

첨언 1. 언젠가 이대와 관련된 글을 쓰게 되면 이 얘기를 꼭 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다. 20대의 후반에 이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73학번 인재근을 만났다. 인천에서 둘 다 활동중이었고, 둘 다 수배 중이었다. 그리고 20년을 더 함께 살았다. 연탄가스를 마시고 쓰러지기도 했으며, 오랜 동안 갇힌 나를 두고 밖에서 나보다 더 열심히 살았다. 지금도 나보다 당당한 인재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럴 때 나는 자랑스럽다. 나는 여러분에게 이화여대의 많은 사람들이 민주화와 새로운 시대를 위해 열심히 살았다는 것을 꼭 말하고 싶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시대를 정하고 새로운 시대를 위해 앞서 나가는 사람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2. 얼마 전 아내와 '아침마당'이라는 프로그램에 나갔다. 순서의 마지막에 아내는 정치에 대한 얘기를 했다. 그 얘기는 "수많은 사람이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 우리가 민주화 운동할 때 정치인이 되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정치를 하려면 좀 잘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더 강도 높게 얘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제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마음이 왜 없겠는가. 잘 하려고 한다. 한가지 부탁만 하고 싶다. 잘 하는 정치인이 있으면 지원해 달라는 것이다. 그래야 정치가 바뀐다. 안 보고 살 수 없다면, 우리가 스스로 바꿔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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