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 실업'이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차린  지 10년 만인 1978년,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은 서울역 앞에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빌딩을 지었다.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허름한 5층 짜리 건물은 화려한 건물로 변모했고, 서울역에 내린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새로이 단장한 이 건물은 5년이 채 지나지 않아 건물 전체가 대우 직원들로 가득 차게 된다. '이 건물을 대우 직원으로 가득 채울 만큼 대우를 성장시키겠다'는 김우중 회장의 포부가 현실화되는데 불과 5년의 시간이 걸린 것이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대우그룹 본사 건물인 이 '대우센터'는 부푼  꿈을 안고 서울역에 첫 발을 내딛는 사람들에게 '부'의 상징으로 동경의 대상이 되어 왔다.

자본금 500만원에 직원 다섯 사람의 대우 실업에서 시작해 10만 명이 넘는 직원을 가진 대우 그룹이 되기까지의 고속 성장은, '하면 된다'는 김우중 회장의 경영 철학과 더불어 하나의 신화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최근 연일 신문과 방송을 오르내리는 어두운 대우 사태의 소식은 이러한 대우의 초고속 성장이 속 빈 강정이었음을 말해주어 대우 신화를 동경하던 이들에게 씁쓸함을 안겨 주었다.

윗돌 빼서 아랫돌 괴기

대우 그룹이 그토록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인수 경영의 귀재'라는 김우중 회장에 대한 세간의 평가와 무관하지 않다. 회사를 하나 세우고, 성장시키기까지에는 엄청난 자본금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대우의 계열사들을 보면 처음부터 '대우'로 시작한 것은 최초의 대우라 할 수 있는 '대우 실업'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대우의 알짜 사업체인 대우 증권과 대우 중공업, 대우 자동차 역시 인수와 합병을 통해 오늘에 이르렀다. 대우 중공업은 76년 한국기계에서 거듭났고, 대우 자동차는 78년 새한 자동차의 인수로 문을 열었다. 대우 증권은 83년 동양 증권과 삼보 증권이 합쳐져 탄생했다.

쓰러져가는 사업체들을 인수해 빠른 시일 내에 정상 궤도로 올려놓으면서 김우중 회장은 '인수 경영의 귀재'라는 이름을 얻었고 대우는 빠르게 덩치를 키워 나갔다. 그러나, 문제는 덩치만 키웠지 내실을 쌓지 못했다는 데에 있다. 부실 기업을 인수할 때에는 그 기업의 부채까지 떠 안게 되고 이것이 반복되면 재무 구조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주력 사업에서 자본을 축적한 후 다른 사업체에 눈을 돌려야 함에도, 대우는 부실 기업을 인수해서 정상화시켜 자본을 축적하기도 전에 또 다른 부실 기업에 손을 대 그룹 내에 자금이 축적될 겨를이 없었다. 재무 구조는 더욱 악화되고 사업 투자 과정에서 차입은 눈덩이처럼 불어만 갔다.

대우 그룹 성장 과정의 특징 중 또 다른 하나가 바로 이 '차입 경영'이다. 평소 '자본이 부족한 한국 경제에서 차입은 불가피하다', '부채도 자산이다' 라는 입장을 취해온 김우중 회장. 확장 지향적 태도로 그룹의 덩치를 빠르게 키우다 보니 이쪽 부채의 만기가 되면 다른 곳에서 차입해 갚는,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식으로 일관해 빚은 늘어만 갔다. 93년 '세계경영'을 표방하고 해외 투자에 적극성을 띠면서 현지의 해외 차입이 가속화되어 빚은 더욱 크게 늘었다. 이런 상태에서 외환 위기를 맞게 되자 환율 상승으로 하루에 이자만도 몇 십억을 물어야 했고, 부채 상환 만기가 겹치면서 대우의 자금난은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사실 대우의 위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금부터 꼭 10년 전인 1989년에도 대우는 '대우조선'의 자금위기를 맞아 한 차례 몸살을 앓았다. 당시 대우조선은 누적적자액이 4천 6백억 원에 달하고 금융부채가 1조 2천억 원, 이에 대한 하루 이자만도 4억 3천 만원에 이르고 있었다. 이에 대해 김우중 회장은 '더 이상 자력으로는 대우 조선을 살릴 수 없다'며 정부에 지원 요청서를 내밀었다.

결국 정부는 고심 끝에 '대우조선 지원 방안'을 발표했는데, 산업은행 대출금 2천 5백억 원의 이자를 7년 동안 안 받고 1천 5백억 원을 새로 꾸어주는 등 총 4천억 원 규모였다. 대신 대우그룹은 제철화학, 대우투자금융, 풍국정유, 신아조선, 설악개발의 5개 계열사를 팔고 김회장이 갖고 있는 대우증권 주식을 처분, 총 4천억 원을 자구 노력으로 조달해야 한다는 단서를 붙였다. 정부의 지원 방안은 대우조선 근로자들이 경영 정상화까지는 무리한 임금 인상을 자제해야 한다는 전제 아래 나온 것이었다. 이 때문에 정부의 지원금을 필요로 하는 회사측과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노조간에 심각한 갈등이 있기도 했다.

어찌 됐든 89년 '대우조선사태'는 풍국정유, 설악개발 등 대우 계열사의 매각과 정부의 지원으로 일단락됐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대우는 하나의 계열사의 문제가 아닌 그룹의 해체라는 총체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다. 89년 심각한 자금 위기를 겪은 이후에도 대우의 확장 경영은 지속됐고 IMF 관리체제라는 환란과 더불어 더 큰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89년 당시 위기를 좀더 신중히 검토하고 강도 높은 구조 조정을 단행해 문어발식 확장에 무리수를 두지 않았다면 오늘 같은 사태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25개의 계열사를 지닌 자산 규모 2위의 거대 그룹 대우는 이제 대우 자동차, 대우 자동차 판매, 대우 캐피탈, 대우 통신 자동차 부품 부문 등 자동차 관련 4개사와 주식회사 대우 무역부문, 대우 중공업 기계 부문 등 6개사로 축소된다. 주 계열사였던 대우 증권, 대우 전자등은 모두 매각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대우 자동차가 존속한다고 하지만 GM사와의 협상에서 경영권이 넘어갈 수도 있다.

대우그룹 구조 조정의 주도권을 넘겨받은 채권단은 '특별 재무약정'에서 명시한 계열사별 구조 조정 방안을 대우측이 지키지 못할 경우 담보 자산을 처분하고 기업개선 작업에 들어가는 등 강력한 제재 수단을 동원하기로 했다.

대우 사태의 파장

대우가 우리 나라 경제를 주도하는 거대 기업이었던 만큼 그룹의 위기와 해체는 나라 전체에 큰 파장을 몰고 왔다. 대우의 불안정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투자 심리가 위축돼 주가가 떨어지고 환매가 줄을 이었다.

우리가 투자신탁회사에 돈을 맡기면 투신사에서는 수익 증권을 내주고, 받은 돈을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해 남은 이익만큼을 돈을 맡긴 고객에게 돌려준다. 고객이 투신사에 맡겼던 돈을 되찾고 싶을 때, 수익 증권을 돌려주고 투신사로부터 돈을 돌려 받는데 이것을 '환매'라고 한다. 말 그대로 투신사로부터 샀던 수익 증권을 되파는 형식이어서 환매(還賣)라 하는 것이다. 공사채형 수익 증권의 경우 국채, 지방채 등의 국공채와 회사채를 사서 이자를 받아 운용하게 된다. 그런데, 회사채를 발행한 회사가 부도를 낼 경우 고객이 맡긴 원금이 위험해 질 수 있다. 대우의 미래가 불안정해지자 투신사에 돈을 맡긴 고객들이 자신의 돈이 대우 채권을 사는데 쓰였는지를 알아보고 환매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데, 대우의 미래가 불확실하다고 대우 채권이 포함된 수익 증권에 대한 환매가 줄을 이을 경우, 회사채 발행으로 모았던 자금이 빠져나가 대우는 더 큰 자금난에 봉착하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정부가 환매 제한 조치를 내린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MMF(머니 마켓 펀드)이다. MMF 란 자유롭게 돈을 맡겼다 뺄 수 있는 상품을 말하는데, 은행으로 치면 보통 예금과 같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단기간의 유용자금이 있는 사람들이 환매 수수료를 물지 않고 수시 입출금이 가능해 MMF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환매 제한 조치가 내려지자 꼭 필요한 때에 돈을 찾을 수 없게 되어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파트 중도금 날짜까지 얼마간의 시간적 여유가 있어 MMF에 가입했는데 거기에 대우 채권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 제 때 돈을 찾지 못해 피해를 보게 된다.

MMF 가입자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정부는 MMF의 환매 제한 조치를 해제했다. 그러자 이젠 환매 제한 조치 자체의 기반이 흔들리고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술렁임이 일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또, 대우 그룹의 해체는 대우 관련 업체들의 연쇄 도산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금융권이 대우가 발행한 어음의 할인을 기피하고 있어 대우에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업체들이 자금을 조달하지 못해 도산 위기에 처한 것이다. 설사 상호 신용 금고나 사채 업자 등을 통해 할인을 한다 하더라도 할인율이 높아 자금 사정이 어렵긴 마찬가지이다. 대우 협력 업체들의 연쇄 도산이 발생할 경우, 대우에 부품 공급이 중단되고 이에 따라 대우가 원활히 생산, 영업을 할 수 없게 되어 대우 역시 더 큰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대우 계열사와 거래하고 있는 협력 업체는 6400개에 이르고, 그 종업원 수도 130만명에 이른다. 대우의 위기는 대우 자체만의 위기가 아니다. 십만 대우 직원과 대우 협력체의 130만 직원을 합하면 140만명. 여기에 딸린 가족을 세 명으로 쳐서 140만에 4를 곱하면 560만. 우리나라 인구를 4천만이라고 치면 우리 나라 인구의 1/8이 넘는 사람들이 대우에 생계를 걸고 있는 셈이다. 그만큼 대우 쇼크는 심각하고 신중히 다루어야 할 문제다.

김우중 회장은 자신의 책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에서 부자로서가 아니라 훌륭한 전문 경영인으로서 기억되는 게 가장 큰 꿈이라고 했다. 대우 자동차가 정상화된 뒤 그가 경영에서 물러나든, 물러나지 않든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 사업체를 정상 궤도로 올려놓기까지 구조 조정을 어떻게 수행해 나가느냐이다. 

우리 국민의 대다수가 대우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받는 바, 국민에 미칠 쇼크를 최소화하면서 내실있는 기업으로 대우를 변모시키는 것이 그가 꿈을 이루는 마지막 길이다.

                                  이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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