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시설에서 매일 사건사고가 벌어지는 건 아니다. 어떤 하루는 바쁘고, 어떤 하루는 고요하다.”

민주노총 전국요양서비스노조의 전지현 서울지부 사무처장은 요양보호시설 현실을 이같이 설명했다. 하지만 언론에 나온 요양보호시설은 그가 말한 모습과 거리가 멀었다. 학대와 폭력 같은 자극적인 내용이 자주 알려졌다.

한겨레신문 24시팀은 긴 호흡으로 다루기로 했다. 노인의 존엄한 돌봄을 중심으로 장기요양보험제도의 전체를 보기 위해서다. 실제로 취재팀은 2018년 9월부터 2019년 5월까지 현장을 다녔다.

장기요양보험제도는 고령과 질병으로 일상생활을 지속하기 힘든 노인을 위해 2008년부터 시행됐다. 민간을 넘어 국가가 책임지는 공공영역으로 노인문제를 포용하겠다는 신호탄이었다.

김범중 중앙대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외형적인 틀을 갖췄지만 장기요양보험제도에는 세부적인 문제가 있다고 평가했다. “수급 보장성, 요양 서비스의 질, 예산의 지속 가능성, 요양서비스 종사자 처우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

▲ 한겨레신문 24시팀의 기념촬영 장면

권지담 기자는 장기요양보험이 제공하는 요양서비스 실태를 밝히기 위해 요양보호시설에 취업했다. 자격증을 따려고 지난해 9월부터 3개월 동안 요양보호사 교육원에서 공부했다. 이후 240시간의 교육을 거쳐 인천과 경기 부천의 요양보호소에서 한 달 동안 근무했다.

“내부자가 아니면 요양원의 민낯을 볼 수 없었다. 가족들마저도 낮 시간만 면회가 가능했다. CCTV도 사회복지사의 협조 없이는 볼 수 없는 탓에 내부자가 돼야 했다.”

내부자가 되는 과정은 기록으로 남겼다. 학원등록부터 요양보호소의 마지막 날까지 취재일기를 썼다. A4용지로 100쪽, 녹음파일은 117개다. 기록정리에 1주일이 걸렸다. 권 기자는 “자료 정리가 힘들었지만 하나하나가 기사의 현장감을 살리는 힘이 됐다”고 말했다.

전지현 사무처장은 “하루 지켜보고 끝낸 게 기존 동행취재 약점”이라며 “(한겨레 기사는) 기자 신분을 숨기고 요양보호사로 일해 현실 그대로가 기사에 담겼다”고 높이 평가했다.

고정임 전국요양보호사협회 회장은 “(기존 보도는) 실제 요양보호사 이야기를 담은 보도가 아닌 정책을 제안하는 수준에 그쳤다. (한겨레 기사처럼) 요양보호사도 구타, 폭행당하는 현장의 이야기를 담아낸 기사는 없었다”고 말했다.

방문요양서비스에도 문제가 있었다. 지금까지 방문요양보호사가 겪는 어려움은 공론화가 힘들었다. 노인의 집을 찾아가 돌봄을 제공하는 방식과 전국에 흩어져 일하는 업무환경 탓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요양보호사 10명 중에 8명이 방문 서비스를 한다.

이주빈 기자가 메신저 역할을 자처했다. 서울 경기 경남 강원의 요양보호사 14명을 만나 3시간 이상 심층 인터뷰를 했다. 고정임 회장은 “요양보호사들이 못했던 얘기를 터놓고 내뱉을 수 있도록 기자들이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취재팀은 한림대 석재은 교수(사회복지학과)의 도움을 받아 전국의 방문요양보호사 216명을 대상으로 노동실태를 설문조사했다. 또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18년 전국 장기요양보호기관 836곳을 전수조사했던 보고서를 처음 입수했다.

정환봉 기자와 이주빈 기자는 6000쪽에 이르는 보고서를 분석하고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들을 만나 사실을 확인했다.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지워진 자료가 많았고 분량이 방대해서 보고서 분석에만 수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 권지담 기자가 SOS 취재팀과 인터뷰를 했다.

권 기자는 “잘 해야겠다는 생각만 있었지,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했다”고 <스토리오브서울> 취재팀에 말했다. 이런 노력이 ‘대한민국 요양보고서’로 나타나자 많은 독자가 응원과 환호를 보냈다.

“제가 이제까지 읽은 기사 중 최고였습니다. 요양원이라는 곳은 내가 닥치기 이전에 절대 체험해 볼 수 없는 곳이고. 마주하기 힘든 곳인데 이렇게 가감 없이 체험해주시고 공유해주시니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고 알 것 같습니다.” (네이버 아이디 jh43****)

“현재 장기요양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기자님의 열정에 존경을 보냅니다.” (네이버 아이디 jh43****)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현실입니다. 요양보호사 실습 나가서 겪은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아요. 자격증은 다시 장롱 속으로!! 한겨레 기자님들 들춰내기 힘든 일들을 세상에 꺼내주셔서 감사해요.” (네이버 아이디 mkki****)

권 기자가 받은 메일의 80%는 장기요양보호소에 있는 노인의 보호자로부터 왔다. 이들은 당장 부모를 돌볼 수 없어 요양보호소 현실을 외면했다며 보도를 계기로 제도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요양보호사들도 고마움을 전했다. 권 기자는 “요양보호사분들이 자신의 직업적 가치를 알게 돼 보람을 느꼈다고 한 순간이 인상 깊었어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호평은 학계에서도 나왔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요양보호사들의 열악한 상황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전달했다.” (김범중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요양보호사가 100세 시대를 대비하는 유망 직업으로만 소개됐다. 현실을 이토록 솔직하게 그려낸 기사는 없었다. 장기요양보험제도를 구성하는 모든 주체가 행복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김민정 숭실사이버대 노인복지학과 교수)

보도가 나가자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6월 20일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장기요양기관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를 지시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12월 2일 비리기관 명단공표 의무화 방안을 담은 노인장기요양보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8개월의 취재 끝에 완성했지만 담지 못한 문제 역시 많다. 이길원 대한민국요양보호사노조 전 위원장은 휴게시간이 노동시간으로 인정되지 않는 문제를 강조했어야 한다고 아쉬워했다.

고정임 전국요양보호사협회 회장은 지역격차를 충분히 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지자체 지원이) 워낙 월등하다. 하지만 경기도와 인천만 해도 지원이 부족하다. 같은 일을 해도 지역별로 다른 급여를 받는다.”

권 기자는 이런 지적에 동의하면서 “제가 근무할 때만 해도 요양보호소에서 남성 노인의 입소를 거절하는 사례가 많았다. 여성보호사에게 돌봄 노동의 책임을 전가할수록 이런 추세가 더욱 증가할 것”이라고 했다. 권 기자는 요양병원 문제도 다루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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