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대 300과 29대 250. 앞은 한국의 연합뉴스와 미국 AP통신의 해외특파원, 뒤는 한국 KBS와 영국 BBC의 특파원 숫자다. 이화여대 이재경 교수가 <신문과 방송> 2019년 5월호에 쓴 글에 나온다. 국제보도에 대한 한국 언론의 관심과 투자가 미흡함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이지만 현장에서 노력하는 특파원을 격려하기 위해 한국기자협회와 연합뉴스는 해마다 ‘조계창 국제보도상’을 시상한다. 올해 영예는 ‘인도네시아 임금체불 한인기업 파문’을 취재한 한국일보 고찬유 특파원(자카르타)에게 돌아갔다.

고 특파원은 인도네시아 브카시에 있는 ㈜에스카베(SKB) 공장의 임금체불을 보도했다. 한국인 사장이 4개월 치 월급을 지불하지 않고 900억 루피아(약 72억 원)를 들고 도주해서 불거진 문제다.

현지 노동자 3000여 명이 월급과 퇴직금을 받지 못하고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렸다. 이들은 인도네시아의 한국 대사관 앞에서 농성을 벌였다. 일부는 사장이 시설을 처분하러 돌아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공장을 지켰다.

인도네시아 노동부 장관은 문제해결을 촉구했다. 신남방정책을 공언한 한국 정부의 움직임에 제동이 걸릴 수 있는 상황. 심각성이 드러나자 문재인 대통령이 나섰다. 양국 경찰이 수사하고 외교부와 고용노동부도 해결책을 모색했다.

결국 한국인 사장은 80억 루피아(약 6억 5000만 원)를 인도네시아 현지은행에 송금했다. 임금체불이 시작된 2018년 8월부터 공장이 폐쇄된 12월 중순까지의 노동자 3000여 명 임금 수준이다. 문제가 일단락되자 인도네시아 노동부 장관은 한국정부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 고찬유 특파원은 인도네시아에서 영상으로 수상소감을 전했다.

한국기자상 공적설명서는 기자의 문제의식과 부지런함을 보여준다. 고 특파원은 당시 특파원비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지만 이곳저곳의 취재원을 만나는 과정에서 SKB 이야기를 들었다. 진상을 파악하려고 차를 빌려 현장으로 떠났다.

고 특파원이 번호를 어렵게 알아내 전화했지만 사장은 받지 않았다. 인터넷전화를 이용해서 통화를 시도했더니 바로 연결됐다. 사장은 완강하게 부인하다가 첫 보도 직후에야 억울하다면서도 잘못을 사실상 시인했다.

한국일보 보도 이후 다른 언론이 관심을 가졌다. 연합뉴스 특파원의 현지를 취재해 사실을 확인했고 SBS는 한국에서 기자를 보내 현지 소식을 전했다. 서울신문은 업체 노조의 메일을 받아 보도했다.

현지의 한인포스트(HanInPost)는 한인기업의 윤리를 제고하기 위한 공청회와 노사합의, 임금 지급 소식을 전했다. 데일리인도네시아는 한국 고용노동부가 한인기업을 대상으로 현지에서 열었던 인사노무관리 세미나 소식, 노사합의, 임금지급 사실을 보도했다.

재인도네시아 한인회의 이은진 간사는 “한인회에서도 SKB 같은 무책임한 기업의 행보가 한인기업의 이미지 훼손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게 됐다”며 “어려움에 처한 기업이 합법적인 청산절차를 밟도록 도와주는 방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한인봉제협의회(KOGA)의 안창섭 회장은 “기자의 수고 덕에 문제가 원만히 해결될 수 있었고, 인도네시아 노동부와 KOGA가 유지해온 좋은 인연도 해결에 한 몫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 특파원은 “의미 있고 귀한 상을 받게 돼 뜻깊다”고 <스토리오브서울> 기자에게 전했다. 한국에서 3년간 사회부 차장을 지낸 뒤에 현장이 그리워 특파원에 지원했는데 초심을 다잡는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취재과정의 어려움을 물었다. 그는 “임금체불 파문이 기사화 되는데 찬성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현지의 다른 업체에는 문제를 왜 키우느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다”며 다른 기업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신경 쓰는 일이 힘들었다고 했다.

고 특파원은 첫 보도 직후, 길에서 피해 노동자를 우연히 만났는데 눈에서 기쁨과 애환이 동시에 느껴져 그 기억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무엇보다 답은 늘 현장에 있다는 말을 떠올리게 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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