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깨어난다는 경칩을 앞두고 봄이 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젊은 시절, 해외에서 처음으로 맞이했던 시애틀의 봄은 각별했다.

가랑비가 10월 초부터 3월 중순까지 줄기차게 내리더니 봄의 절경이 다가왔다. 캠퍼스에는 시나브로 벚꽃이 화사한 자태를 드러냈다. 쿼타제로 봄 학기가 시작되는 3월 말에 봄꽃이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렸다.

미주대륙의 서북부 태평양 관문인 퓨젯 사운드를 탐방하기 위해 시애틀을 방문하면 백인이나 아시아인이나 인종에 상관없이 누구나 ‘세계에서 제일 좋은 대학으로 워싱턴대’를 꼽는다.

▲ UW의 아름다운 전경

워싱턴대는 서북부의 중심대학으로 시애틀뿐만 아니라 워싱턴주의 자랑이다. 줄여서 UW라고 불린다. 무엇이 시애틀라이트(Seattleite)에게 세계에 내놓을 명문대라는 자부심을 안겼을까?

UW 캠퍼스는 남서쪽으로 유니온 호수와 북동쪽의 워싱턴 호수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시애틀 도심에서 5번 고속도로를 타고 유니온 호수를 건너자마자 45가로 빠져서 동쪽으로 대 여섯 블록 지나가면 고색창연한 정문이 나온다.

이곳 캠퍼스는 미국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졌다. 봄이 오면 벚꽃이 쿼드(Quad)라는 건물로 둘러싸인 직사각형의 캠퍼스 안뜰에 만개하는데, 흰 눈송이가 바람에 흩날리는 듯 황홀하다. 교수와 재학생은 말할 필요도 없고 시애틀 주민은 가족이나 연인의 손을 잡고 3월 말부터 4월 중순까지 이 절경을 보러 UW를 방문한다.

그런데 UW는 서북부를 벗어나면 좋은 대학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중서부 세인트루이스에는 와슈(WASH. U.)라는 워싱턴대가 있다. 워싱턴 DC에도 조지워싱턴대가 있다. 이들 워싱턴대가 소재지에서 나름대로 인정을 받는다.

객관적으로는 워싱턴대가 대학평가 랭킹에서 하버드나 예일 등의 아이비리그 사립대에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워싱턴대는 연구중심의 대학원 교육에 주력한다. 시애틀이 정보기술(IT)을 중심으로 제4차 산업혁명의 본거지여서 컴퓨터학과와 전자공학과 랭킹이 미국에서 10위 안에 올랐다.

▲ 워싱턴대 쿼드에 벚꽃 구경나온 시애틀 주민 (김창진 교수 촬영 제공)

워싱턴대에는 1985년에 전자공학과의 김용민 교수가 한인 교원으로 유일했다. 그는 UW에서 이미지 프로세싱을 30년 가까이 연구했다. 생명공학과 학과장이었고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포항공대는 그를 2009년 석학교수로 초빙했다. 2011년부터 4년간 포항공대 제 6대 총장을 지냈다. 현재는 포항공대 창의IT융합공학과에서 생명공학 전자기술의 상용화 연구를 지속한다.

김용민 교수와 대비되는 학자가 김창진 교수이다. 김용민 교수가 미국대학에서 조교수로 시작해 생명공학에서 명성을 쌓은 후 국내에 들어왔다면 김창진 교수는 한국대학에서 미국으로 옮긴 사례다.

김창진 교수는 고려대 경제학과에서 1993년부터 교수생활을 했다. 국내에서 계량연구를 하면서 국제적 명성을 쌓았다. 지금은 UW로 자리를 옮겨 석좌교수(Bryan C. Cressey Professor)로 계량경제를 활발히 연구한다.

UW에는 김창진 교수 이외에도 48명이 한인교수회에 가입했다. 명단에 없는 교수까지 합치면 1985년과 비교해 한인교수가 50배 이상으로 늘었다. 대기과학을 전공하는 김대현 교수에 따르면 한인교수는 UW의 의대, 치대, 공대, 자연대, 경영대, 사회과학대에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연구를 하는 중이다.

시애틀 한인사회는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미국의 다른 지역과 비슷하게 유학생 중심으로 형성됐다. 또 다른 하나는 이민자로 구성됐다.

미주에서 한인 이민자는 자녀교육 때문인지 주로 대학 근처에 모여 산다. 최근 다시 찾아가 보니 초기 시애틀 한인사회가 보금자리를 틀었던 쇼어라인(Shoreline) 지역에 한인 음식점과 상가가 눈에 띄어 옛 추억을 되살려 주었다. 한인 커뮤니티는 시애틀을 넘어서 이웃 도시인 에드먼즈와 린우드, 벨뷰, 레드먼드, 페더럴웨이로 확산되는 중이다.  

▲ 오로라 애비뉴의 한인상가

시애틀 한인 커뮤니티의 산증인으로는 신호범 박사와 오준걸 씨를 꼽을 수 있다. 신호범 박사는 워싱턴대에서 일본역사로 박사학위를 받고 쇼어라인 커뮤니티 칼리지 교수를 역임했다. 미국명은 폴 신이다. 시애틀 워싱턴주 한인회장을 거쳐 1992년 아사아계 최초의 워싱턴주 하원의원이 됐고, 이후 연속 4선의 주 상원의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 부대에서 구두를 닦다가 장교이자 모르몬교도인 양아버지를 만나 1955년 미국에 입양됐다. 2008년도 미주 동포후원재단이 수여하는 제3회 자랑스러운 한국인 상을 받았다. 제1회 수상자는 이경원 기자다. 그는 인종차별로 사형을 받았던 한인청년 이철수 씨를 취재해 미주사회에서 이슈화 했다. 이철수 씨는 보도에 힘입어 무죄판결을 받았다.

오준걸 씨는 1963년에 유학생으로 미국에 온 건축설계사다. 시애틀 워싱턴주 한인회장과 오레곤 한인회장을 역임했다. 그에 따르면 1970년대 초반까지 시애틀 한인들의 숫자는 100명 미만이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이창희, 서재필 박사가 시애틀을 거쳐 갔고, 전계상이란 분이 1948년도 해방 후 제1호 한국인 유학생으로 워싱턴대에 입학했지만 숫자는 미미했다고 한다. 오준걸 씨는 한인의 날 축제재단 초대 이사장으로 2008년에 워싱턴주 한인의 날 행사를 처음 열어 한인사회의 역량을 미국사회에 알리는 기반을 마련했다.

미국 이주정책연구소(Migration Policy Institute)에 따르면, 미국의 전체 인구는 2018년에 3억 3천만 명으로 총 인구의 14%가 이민자이다. 전체 이민자 4500만 명 중 2.4%에 해당하는 106만 3000명이 한국에서 온 이주자이다. 이민법이 1965년 개정되면서 한인 이민자는 미국 통계청 집계로 1960년대 1만 1000명에서 1980년대 29만 명으로 늘었다.

이 숫자는 지속적으로 늘어 1990년대에 57만 명이 됐고, 2010년에 100만 명을 넘었다가 최근에 다소 줄면서 정체됐다. 자신이 한국에서 이주하지는 않았지만 한국인 조상을 가진 응답자는 100만 명으로 추산된다. 따라서 미주 한인은 200만 명 정도로 집계된다.

시애틀-타코마-벨뷰에 거주하는 한국 출생 미주 한인은 3만 9000명으로 미국 내 한인 이주자의 3.7%이다. 가장 많이 사는 지역은 로스앤젤레스-롱비치-애너하임의 남가주 지역으로 22만 명이다. 다음이 뉴욕-뉴웍-뉴저지 동부지역에 14만 7000명, 워싱턴-알링톤-알렉산드리아의 미국 수도에 6만 1000명이다.

시카고 지역은 3만 8000명이다. 미 통계청 추산에 따르면 시애틀-타코마-벨뷰 지역의 한인은 10만 명 내외로 시카고를 따라잡았다. 미주 한인의 가구당 소득은 연 6만 5000달러로 미국 내 이민자 평균(5만 7000달러)이나 미국 내 출생자 평균(6만 1000달러)보다 높다. 

앞서 소개한 한인이 올드 타이머로 시애틀 미주한인 사회를 형성했다면 젊은 세대인 뉴 프런티어는 미국에서 성장한다.

워싱턴대 홈페이지(washington.edu)를 보면 ‘가격을 줄이고 생명을 구하고(Cutting Costs, Saving Lives)’라는 제목이 눈길을 끈다. 이 기사는 Epi-for-all 이란 비상상비약 주사패키지 창업팀을 소개한다. 이 팀은 2017년 창업계획경쟁에서 우승해 5000달러를 받고 상용화할 계획이다. 7명으로 구성됐는데 2명이 리처드 리와 정하승이란 한인청년이다.

재미한인과학기술자협회 시애틀지부는 수학·과학 경시대회를 매년 개최한다. 재미한인과학기술자 협회는 1971년에 설립돼 회원이 6000명이다. 지부가 70개인데 시애틀-워싱턴주 지부 회원은 2016년에 100명이 넘었다고 한다. 이들 중 상당수는 워싱턴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 재미한인과학기술자협회 시애틀지부 모임

성공한 청년기업가로는 위치기반 데이터 회사인 플레이스드 창업자 데이비드 심(한국명 심우석)을 꼽을 수 있다. 그는 이 벤처회사를 IT기업 스냅쳇에 1억 8500만 달러(2000억 원)에 넘겨 월스트리트저널(WSJ)과 파이낸셜타임스가 뉴스메이커로 다루기도 했다.

스냅쳇은 플레이스드를 경쟁사인 포스퀘어에 매각했다. 현재 데이비드 심은 포스퀘어의 최고경영자(CEO)로 활동한다. (매일경제, CEO 데이비드 심 “스타트업에 시간은 돈...52시간 상상도 못해, 2020년 1월 12자 참조)

올드 타이머인 한인 1세대는 주로 식료품점, 주류 판매점, 세탁소, 신발 수선 등의 자영업을 하면서 자녀가 주류사회로 진출하도록 했다. 이들 올드 타이머와 뉴 프론티어는 기회의 나라 미국에서 꿈을 실현하기 위해 불철주야로 형설의 공을 쌓고 있다. 그것이 한국을 빛내는 일이며 인류사회 평화와 행복을 여는 길로 통할 것이다.

다음 편에서는 아프리카 대륙의 오른쪽 뿔에 해당하는 에티오피아에서 인류문화의 원형을 찾아보겠다. 또 검은 대륙에서 한국전쟁 당시, 전투부대를 유일하게 파병한 에티오피아의 사회문화와 정치경제의 발전상을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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