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출귀몰한 도망자와 그의 여자 그리고 강력계 형사들의 추적
<LA 컨피덴셜>같은 필름 느와르 형사물의 예상치 못한 배신이나 극적인 반전을 기대해 볼까? No!
치밀한 두뇌 플레이와 명석한 추리로 범인의 목을 조여 가는 에르큘 포와로 같은 형사가 나오나? No!
그것도 아니면 인정사정 안 봐주는 화끈한 액션이 볼만한가? Oh, no!.
나야말로 너무 인정사정 안 봐주고 말했나? 히히.

솔직히 말하면, 이 영화의 매력은 오히려 형사물이라는 장르의 관습에 의존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이명세 감독의 스타일 그 자체로 재미있고, 무엇보다 느낌이 살아있다. 형사 이야기는 일상의 삶에서 거세된 야성, 본성에 내재된 그 어떤 힘을 전달하기에 적합한 소재였을 뿐이라는 감독의 말. 그러나 직접 형사들과 생활하며 각본을 쓴 감독의 자신감은 영화 속의 형사 박중훈의 거친 대사들과 갖은 기교를 선보인 각각의 장면 속에 이미 드러나 있다. 또한 박중훈을 비롯한 주연 배우들의 숙성된 연기도 영화를 든든하게 뒷받침해 준다.

"우리가 뭐 투캅스 형사인 줄 알아?"
다른 배우도 아닌 안성기(장성민 역)와 마주 본 위치에서 박중훈(우형사 역)이 대폿집 주인에게 아무렇게나 던진 이 한마디. 코미디 영화가 아닌 이상 자신의 연기 변신에 대한 웬만한 자신감 없이는 하지 못할 조심스러운 대사다.

중부지방 2일까지 집중호우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개봉한 7월 31일 토요일. 전광판의 일기예보에 부응하듯 극장 안팎에서는 종일토록 비가 내렸다. 영화의 도입 부분, 스크린에 내리는 늦가을 빗속에서 비지스의 '홀리데이'가 흐르고, 장성민의 '아름다운' 살인 장면이 펼쳐진다(절대 액션이 아니다). 마지막 결전의 순간, 서로 뒤엉켜버린 형사와 살인범에게 쏟아지던 겨울비는 극장 밖의 한 여름 폭우를 무색케 할 정도였다. 극장을 나서며 아무 생각 없이 우산을 펴던 나는 현실까지 연속되는 비의 이미지에 순간 섬뜩함을 느꼈다.

장성민 vs. 신창원
현실과 닮은 것은 비오는 풍경뿐이 아니었다. 완력으로 알아주는 우형사마저 맨주먹으로 다운시킨 장성민과 경찰 네다섯 명은 맨손으로 상대했다는 괴력의 신창원. 이 둘 모두 댄디한 외모에다 변장의 귀재로 매번 경찰의 수사망을 용의주도하게 빠져나가곤 했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공통점은 애인들의 확고한 지지.
"네. 그가 살인범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아무 것도 모른다며 잡아떼던 장성민의 애인 김지원(최지우 분)이 결국 차분하게 내뱉은 대사. 물론 신창원의 동거녀들도 그가 살인강도 탈주범인 줄 뻔히 알면서도 끝까지 감싸주었다. 그런데 장성민의 애인에게 우형사가 매력을 느끼는 다분히 영화적인 묘사와 신창원의 동거녀를 경찰이 성폭행했다는 보도는 서로 연관시켜야 할지 말아야 할지.

살인범 장성민 검거!
우형사와 장성민의 일대일 격투는 장성민의 승리. 그러나 우형사는 죽도록 맞으면서도 끝까지 장성민의 도망을 저지해 결국 검거시키고 만다. 장성민에게 부상당한 동료 김형사(장동건 분)를 찾아가 신문의 1면에 크게 난 검거 기사를 흔들어 보이면서 씁쓸하게 웃는 우형사. 물론 우형사의 이름은 찾을 수 없었지만. 이 때 장동건의 얼굴에 엷게 지어진 미소 또한 그의 눈에 흘러내린 눈물과 함께 추측만 해볼 따름이다.

 

김재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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