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을 방문하면 길쭉하게 뻗은 나무와 아름다운 호수, 바닷가 그리고 이들 사이의 공원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미국에서도 자연환경과 마천루 그리고 도심공원이 이렇게 조화를 잘 이룬 도시는 찾기 어렵다. 가히 자연공원의 천국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시애틀 공원과 레크리에이션(SPR) 본부에 따르면 시애틀에는 공원이 485개 있다. SPR이 관할하는 공원만도 6000에이커가 넘는다. 1에이커를 4000㎡로 계산하면 800만 평 정도가 공원이다. 여의도 내부면적이 88만 평이니 여의도 10배 남짓이 시애틀의 공원지역이다.

이 중에서도 미국뿐만 아니라 블록버스터 영화에 나올 정도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공원은 다운타운 위 물길을 따라 퓨젯 사운드와 연결되는 유니온 호수 북쪽의 가스웍스파크(Gas Works Park)다.

▲ 가스웍스파크에서 본 시애틀 다운타운. 스페이스 니들이 오른쪽에 보인다.

시애틀의 숨겨진 보물공원, 가스웍스파크를 보기 위해서는 다운타운에서 5번 고속도로를 타고 5분 정도 북쪽으로 가다가 유니온 호수 위의 다리를 건너자마자 워싱턴대로 가는 45가 169번 출구로 빠져나와야 한다.

다리 밑으로 P턴하면 고색창연한 황금빛의 가스공장 탑 6개가 공원 여기저기에 서 있다. 이 공원은 유니온 호수 북쪽에 있는데 2만 3000평 정도로 미국 공원치고는 아담한 편이다. 다운타운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공원에서는 시애틀 명물인 스페이스 니들이 보인다.

가스웍스파크가 자리한 지역은 툭 튀어나와 영어로 프로몬토리(promontory)라는 곶이다. 양평의 두물머리를 생각하면 된다. 북서쪽으로 운하를 통해 퓨젯 사운드의 쉴즈홀 베이와 연결되고 북동쪽으로는 워싱턴대의 허스키 미식축구장에서 바라볼 수 있는 레이크 워싱턴과 연결된다. 미국 건국기념일(7월 4일)에는 공원이 있는 유니온 호수에서 불꽃놀이를 한다.

가스웍스파크는 시애틀의 다른 녹지 공원과는 다르게 나무가 별로 없고 누런  잔디가 쭉 깔려있어 일견 낯설며 “미국에 이런 공원도 있나?”라는 호기심을 자아낸다. 시애틀시와 워싱턴 주가 랜드마크로 설정해 역사를 보존하는 과거 가스공장 부지를 공원화했기 때문이다.

가스웍스공장은 1906년 문을 열어 1956년까지 반세기 동안 가스피케이션(gasification)이라는 작업을 통해 석탄을 가스화했다. 여기서 생산된 가스는 시애틀과 인근 주변 도시에 공급됐다.

20세기 초 미국이 산업화에 박차를 가할 때 석탄의 가스화 시설물이 1400개 있었다. 세계적으로는 이런 시설이 5000~6000개라고 한다. 지금은 다 없어지고 세계에서도 유일하게 가스웍스파크에 남았다.

더 이상 석탄의 가스화 작업을 하지 않게 되자 시애틀시가 공장과 부지를 1962년 인수해 13년 동안 공원화 디자인을 해서 1975년 오픈했다. 공원은 2013년 미국의 산업역사 유적지로 지정됐다.

▲ 가스웍스파크의 모습

시애틀을 방문해 가스웍스파크에 찾아간 이유는 미국에서 폐기용 에너지 산업시설을 공원으로 전환한 사례에 박수를 보내기 때문만은 아니다. 바로 우리 문제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는 미군기지가 자리한다. 미군이 평택기지로 옮겨갔기에 미군시설은 서울시에 곧 반환된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1월 10일 샌프란시스코 프레시디오 공원을 찾아 “용산 미군기지에 아파트를 짓지 않고 시민이 사랑할 수 있는 공원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프레시디오 공원은 사용이 끝난 미군기지를 공원화한 장소다. 천정부지로 뛰는 서울 시내 땅값의 유혹에 괘념치 않고, 용산공원 부지를 보존한 서울시민과 용산지역 관계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일본 시코쿠 지역의 나오시마 섬도 원래는 쓰레기 매립장이었다. 안도 다다오와 같은 걸출한  건축가가 나타나 섬을 공원화해서 지금은 연간 30만 명의 관광객이 세계 곳곳에서 찾는다.

섬 전체가 공원이 된 나오시마와 함께 시애틀의 가스웍스파크의 조경건축 과정을 벤치마킹해 폐기되고 오염화된 산업시설이나 군사시설의 역사를 보존하면서 친환경적인 도심 속 생태공원으로 전환해야 한다.  

▲ 가스화 공장

세계 유일의 가스웍스파크를 디자인한 사람은 리처드 헤그이다. 일리노이대와 하버드대에서 건축학과 조경학을 전공했으며 워싱턴대에서 조경 건축학과(Landscaping Architect)를 창설했다.

그는 가스웍스파크와 시애틀주변 도시인 베인브리지 아일랜드의 블로델 보호구역 공원(Bloedel Reserve)의 설계로 미국조경건축학회 회장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다. 블로델 보호구역 공원은 18만평 정도인데, 이 안에 일본식 정원이 있다. 헤그 교수가 젊은 시절, 일본에서 2년간 머문 적이 있어서 동양식 조경 디자인을 적용했다.

베인브리지 아일랜드는 시애틀 북동쪽의 섬으로 2005년 CNN에 의해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2위에 올랐다. 베인브리지 아일랜드에서 퓨젯 사운드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영화 ‘사관과 신사’를 촬영한 포트 타운센드와 포트 워든이 나타난다. 포트 워든에서 더 올라가면 포트 앤젤레스가 나타나며 이 부근에 올림픽 국립공원이 있다.

뉴욕타임스는 2012년 올림픽 국립공원의 캐스케이드 산맥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카우보이 마운틴에서 터널 크릭을 통해 일어난 산사태를 16명의 전문 스키어가 추적하는 특별한 보도를 했다.

세계 최초로 눈사태가 일어나는 현장을 실시간으로 추적하며 직접 들여다 본 취재였다. 눈사태 보도는 그 해의 기획취재부문에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본격적인 멀티미디어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 기법을 뉴욕타임스가 세계 최초로 선을 보인 사례다.

시애틀 한인도 주말이면 올림픽 국립공원의 케스케이드 산맥을 오른다. 한인 등반 동호회가 조직돼 다양하게 야외 취미생활을 즐긴다. 시애틀에서 캐나다 밴쿠버로 올라갔다가 페리를 타고 빅토리아에 있는 재패니즈 부차트 가든을 방문하는 2박3일 여행 코스도 바다와 공원 조경에 관심이 있다면 추천할 만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해안 경계선 밑으로 미국령의 북태평양과 올림픽 국립공원 그리고 시애틀의 퓨젯 사운드가 있다.

전편에서 다뤘듯이 보잉사가 자리를 잡고 스타벅스의 발원지인 시애틀이란 도시의 변천사는 시애틀타임스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시애틀타임스는 1891년 창간됐다. 원래 이름은 시애틀프레스타임스였다. 당시 4쪽 짜리 신문으로 3500부를 발간했다. 메인주에서 교사생활과 변호사를 했던 앨덴 블레슨이 1896년 인수했다.

시애틀타임스는 1915년 하루 7만 부를 발행하는 미 서북부 태평양 지역의 대표적인 신문으로 성장했다. 경쟁지로는 시애틀포스트인텔리전스가 있었다. 이 신문은 온라인 신문으로 갔다가 폐간돼 현재 시애틀에는 시애틀타임스가 메트로폴리탄 신문으로 유일하다.

시애틀타임스의 발행부수는 평일 23만 부, 일요판 34만 부다. 지금도 블레슨 가문이 소유한다. 시애틀타임스 건물은 다운타운 북쪽의 대니웨이와 보렌 애비뉴가 만나는 지점에 있다. 바로 옆에는 아마존 본사가 위치한다.

▲ 시애틀 다운타운의 아마존 본사와 스피어스(The Spheres). 외관이 유리 돔 형태인 스피어스는아마존 직원의 쉼터이자 창의공간으로 4만종의 희귀 식물을 모아 놓았다.

제프 베저스 아마존 회장이 경영난이었던 워싱턴포스트를 개인적으로 인수한 사실은 미디어업계에 잘 알려진 사실이다. 베저스 회장은 시애틀에서 자란 토박이로, 자신이 구독한 시애틀타임스에도 관심을 보였을 수 있다. 베저스 회장은 지금은 고인이 된 폴 앨런 가족이 구단주인 시혹스 미식축구팀에 관심을 보인다는 소문이 전미 미식축구협회(NFL)에서 흘러나온다.

시애틀타임스처럼 신문을 보면 나라의 변화나 지역의 사건사고를 포함한 흥망성쇠를 알 수 있다. 신문은 사회문화와 생활사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조선은 20세기 문을 열면서 패망했다. 우리의 부모 세대는 일본의 지배를 받는 가운데 1919년 3.1 운동으로 전환의 기틀을 마련한다. 일제의 문화정치가 시작됐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1920년 창간됐다.

조선일보가 3월 5일, 동아일보가 4월 1일 창간돼 금년도로 100주년을 맞이하게 됐다. 일제지배와 다이내믹 대한민국의 변화상은 이들 신문의, 지난 100년간의 취재보도에 기록으로 남아있다.

시애틀 하면 20세기에는 퓨젯 사운드, 워싱턴대, 스페이스 니들, 알라스카의 전초기지로서 다운타운 부두와 피셔스 마켓 같은 상징물을 떠올릴 수 있다. 21세기에 들어와서는 산업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전환됐다. 그래서인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창업주인 빌 게이트와 폴 앨런,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시애틀타임스의 발행인인 프랭크 블레슨이 떠오른다.

미 서북부의 중심도시로서 시애틀은 20세기에 들어서야 다운타운 개발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그동안 조선업의 쇠퇴와 불경기로 다운타운 상당 부분이 슬럼화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서 제4차 산업혁명의 본거지로서 도심부 재생과 함께 현재진행형으로 발전하는 중이다.

경자년 새해가 밝았다. 21세기가 시작한 지 벌써 20년째이다. 그동안 2020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정부나 영리와 비영리 단체 그리고 개인은 지난 수년간 세웠던 목표를 과연 얼마나 이뤘는지, 성적표를 곧 받게 된다. 발 빠른 기관이나 단체, 그리고 개인은 이미 2030년도에 이룰 목표를 세워놓았을 것이다.

2020년 이후 십 년간은 과학기술이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는 제4차 산업혁명의 대전환 시대를 맞게 된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그리고 초연결 사회 속에서 인류와 지구가 과연 어떻게 지속적으로 생존하며 얼마나 빠르게 변화하는지를 상상하기 어려운 불확실성의 시대이다.

호주 초원의 들불에서 보듯이 지구 온난화는 얼마나 본격화될까. 한국은 이러한 지구촌 환경변화 속에서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와 미세먼지 그리고 초미세 먼지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통제할까.

금년에는 아직까지 가보지 못한 아시아 오지와 남아메리카 그리고 아프리카를 찾아 여행기를 이어가고자 한다. 세계 곳곳의 건축물과 풍광 그리고 각국이 성장하거나 변화한 과정을 비교하면서 한국을 포함해 인류가 골머리를 앓는 사회문제와 인구, 환경, 기후, 교통과 원자력을 포함한 에너지 문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모델을 찾고자 한다.

다음 편에서는 올드 타이머와 뉴 프런티어로 나뉜 시애틀 워싱턴주 한인의 삶과 정착과정, 그들이 형성한 이민문화와 커뮤니티를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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