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가루를 빻아내는 기계 소리, 고소한 콩 냄새, 팥을 찌는 따뜻한 연기. 이제는 기억 한 편으로 사라진지 오래다. 서울에 얼마 남지 않은 방앗간을 인터넷에서 찾았다.

서울 종로구 명륜길의 낙원떡방앗간. 오래된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자 고소한 콩 냄새가 반겼다. 가게 안쪽 조그마한 단칸방에서 주인 박병수 씨가 낮잠을 잤다. 가게를 나와 전화를 해서 깨우고 다시 찾았다.

가장 바쁜 시간은 새벽이다. 일찍 일어나는 일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박 씨는 “아우. 아침에 일어나는 게 쉬운 게 어디 있어. 남 놀 때 일해야 하고, 명절 때도 일해야 하고. 그래서 (방앗간이) 다 없어져”라고 말했다. 동네에 3곳이던 방앗간 중 2곳이 없어졌다고 한다.

방앗간을 운영한지 올해로 33년째. 쌀가루 빻는 기계와 스팀 찜기, 천장에 걸린 체와 여러 도구가 세월을 고스란히 담았다. 요즘은 고춧가루, 미숫가루, 참기름까지 만든다.

그럼에도 박 씨는 동네에서 믿고 장사하는 일에 자부심이 강했다. “보통 외상으로 가져가면 옛날에는 다 적어놓잖아. 우리는 안 적어. 나중에 알아서 몇 달 있다가 와서 주는 사람도 있어. 돈 없다 그래서 안 주고 그런 게 없어.”

서울 종로구 율곡로의 서울 방앗간. 주인 임정애 씨는 서울로 시집온 뒤 38년째 방앗간을 지킨다.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 일을 한다. 주문이 많으면 새벽 3~4시에 나온다.

요즘은 손님이 많이 줄어서 힘들다고 했다. “아유, 형편없어요. 한 두 명. 요즘 경기가 안 좋다보니까 하나라도 팔릴까 싶어서 가게를 지킵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로 손님이 크게 줄었고, 작년부터는 거의 바닥이라고 한다. 

▲ 서울방앗간의 쌀가루 빻는 기계

유재호 씨는 방앗간 옆의 성균관대 기숙사에서 지낸다. 그는 피자를 자주 사먹었지만 방앗간에서 떡을 사먹은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임 씨는 “시대가 바뀌어요. 떡은 요즘 추세 아니니까. 피자 그런 것만 (먹어요)”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서울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로 나오면 왼쪽으로 계동길 골목이 시작된다. 조금 걸으면 30년 전통의 계동떡방앗간이 나온다.

주인 김신신 씨는 새벽 3시 30분에 방앗간을 열고, 하루에 다섯 가마 정도 떡을 만든다. 주로 떡볶이용 가래떡을 납품한다. 성균관대 학생 사이에 유명한 종로구 명륜동 ‘나누미떡볶이’에도 10년째 납품한다. 직접 들르는 손님은 80~100명. 외국인 관광객이 특히 많다.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일까. “이거(방앗간)해서 우리 애들 가르치고 시집, 장가 다 보내고 그런 거지. 아들은 장가가서 애 낳고, 딸은 이번 주 일요일에 결혼해요.” 김 씨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 충남떡방앗간

동대문구 창신골목시장에는 충남떡방앗간이 있다. 주인 정레천 씨는 평일 오전 6시에 일어나 밤 10시까지 일한다. 주말에는 아침 일찍만 일을 하고 보통은 쉰다.

방앗간을 18년간 하면서 달라진 점을 물어봤다. “(일의 양이) 옛날 같진 않아. 고사도 덜 지내고.” 옛날만큼 떡을 사러 들르는 사람이 적은데 시장 자체의 장사가 잘 안 된다고 한다.

오랜 세월, 방앗간은 주인의 인생이었다. 그들은 지나간 시절의 모습을 기억하지만 전통이 사라지자 씁쓸함을 느낀다. 방앗간을 찾는 발길을 계속 줄어들 것이다. 그럼에도 방앗간 주인들은 같은 자리를 지킨다.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