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대 학생은 병원현장에 익숙해지기 위해 3학년부터 대학병원으로 실습을 간다. 하지만 겉핥기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화여대 간호학부 4학년 박정연 씨(22)는 “실습동안 간호대학생은 병풍”이라며 한숨을 지었다.

실습은 간호 진단을 하고 간호 과정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대상과목으로는 성인간호학, 여성건강간호학, 아동간호학이 있다.

현실은 다르다. 환자복이나 이불을 정리하고, 시간이 지나도 맥박이나 호흡을 재는 업무만 한다. 생식기 병동의 진료에는 참여하지 못한다. 의료인이 아니라 대학생이라는 이유로 환자 사생활이 침해된다는 불만사항이 접수되기 때문이다.
 
바쁜 의료진에게 모르는 사항을 쉽게 물어볼 수도 없다. 간호사를 따라다니고, 단순 업무를 반복해 필수로 지정된 1000시간을 채우는 이유다.

경복대 간호학과 방초희 교수(35)는 ‘실습 기관의 부족’을 이유로 꼽았다. 병원환경이 여유롭지 않아 간호대학생의 실습을 전담하는 간호사가 없다. 병원이 학생을 받더라도 관찰 위주로 하는 이유다.

▲ 실습병원 확보의 어려움에 대한 2013년 설문조사 결과 (출처=한국전문대학교교육협의회)

졸업하고 간호사가 돼도 여전히 어려움이 따른다.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긴박한 현장에 적응하기 쉽지 않다. 선배 간호사에게 질문하면 뭘 배우고 왔냐는 대답을 듣기도 한다.

이런 근무환경은 태움(신임 간호사에게 교육을 명목으로 가하는 정신적‧육체적 괴롭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올해로 20년차인 유미경 간호사(48)는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트레이닝 받은 간호사가 후배에게 같은 환경을 대물림해 생기는 문제”라고 말했다.
 
정부의료산업노동연맹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의 간호사 1명은 약 16.3명의 환자를 배정받는다. 간호사 1명이 담당하는 환자가 많아 세심한 관리가 힘들다. 신임 간호사의 실무교육까지 충분히 하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인력문제는 갈수록 악화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해마다 1만 6000명의 간호사가 배출된다. 일을 그만두는 간호사는 전체의 12%로 신규 간호사보다 많다. 대한간호협회의 설문조사 결과 신규 간호사의 67.4%가 이직할 의도가 있다고 밝혔다.

미국 미네소타대 간호학부의 이지현 씨(21)는 미국 간호사를 준비 중이다. 비효율적인 실습을 하고 고강도의 업무환경을 견뎌야 하는 한국보다 환경이 좋은 미국을 택했다.

미국 간호대학생은 학교에서 하는 시뮬레이션 수업을 통과해야 실습에 나간다. 정맥주사를 놓거나 약을 구분하는 방법 같은 기초를 학교에서 미리 배워 학생은 현장에 빨리 적응한다.

실습은 기본간호학 임상실습을 포함해 660~990시간이다. 한국에 비해 짧지만 학교에서 배정한 일명 ‘크리니컬 간호사’가 약 4명의 학생을 맡는다. 병동 간호사와 크리니컬 간호사가 학생을 돕고 교육한다. 예비 의료인으로서 실습에 참여하는 셈이다.

미국이민을 결정하는 외국 간호사도 많아졌다. 한국 간호사도 예외는 아니다. 대한간호협회가 2018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 간호사시험 응시자는 4년 동안 2배 이상 증가해 1200명을 넘었다.

미국 유타대 간호학부 강유정 교수(46)는 한국에서의 간호사 생활을 접고 미국으로 갔다. 병동 생활을 거치고 교수가 됐다. 그는 의사의 보조가 아니라 환자를 위한 전문 의료인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이민을 결심했다.

정부는 간호사의 근무환경과 처우를 개선하는 대책을 3월에 마련했다. 여기에 ‘신규간호사 교육 및 관리체계 구축 가이드라인’이 포함됐다. 또 인력을 확대하기 위해서 간호사와 환자의 비율을 병상 수에서 환자 수로 바꾸고 야간근무 수당을 보장받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5년차 양정의 간호사(40)는 “개선항목이 이론적 매뉴얼 강조와 간호사 인원 증가에 머물렀다”면서도 환경을 바꾸는 시작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간호사에 대한 인식 역시 변화가 필요하다. 이화여대 간호학부 4학년 박정연 씨(22)는 “미디어에 나오는 내용처럼 간호사는 의사 처방 따라 하면 되는 거 아니냐는 말도 실습에서 들었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김영욱 교수(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는 미디어의 직업묘사가 사회적 편견을 확대하고 재생산해 직업을 바라보는 인식에 영향을 준다고 밝혔다.

이연경 간호사(31)는 올해로 7년째 병원에서 근무하는데 자신을 아가씨라 부르는 환자를 만날 때가 있다. “간호사를 서비스직이나 의사의 보조로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어야 한다.” 21년 차 류근숙 간호사(50)는 간호사를 전문인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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