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여기 빠지면 죽을 것 같은데?” 서울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1번 출구 앞, 어린이가 환기구에 서 있다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엄마에게 이야기했다.

경기 성남 분당구 판교의 야외공연장에서 아이돌 공연을 보려고 지하철 환기구 위에 올라갔다가 16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다. 환기구 덮개가 무너지면서다.

사고는 2014년 10월 17일 일어났다. 지하철 환기구의 위험성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서울 시내 환기구는 2242개. 인도 위의 환기구(높이 10cm이하) 56개 중에서 12개를 찾아갔다.

시민들은 인도를 차지한 환기구 위를 지나다녔다. 기자가 관찰했더니 대부분은 환기구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 쪽으로 걸었다.

지하철 1호선 종로3가역의 2-1번 출구. 횡단보도 앞의 환기구는 인도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보행자가 환기구를 지날 수밖에 없다.

일행 중 1명이 위로 올라가려고 하자 다른 한 명이 위험하다며 말리고 인도로 걸었다. 나윤주 씨(36)는 “사고가 났기도 했고 위험하니까 그랬다. 여기는 다른 환기구와 달리 길처럼 되어있어서 경각심을 갖기 어려울 것 같다”고 지적했다.

▲ 지하철 1호선 종로3가역의 2-1번 출구

일부는 의식하지 않았다. 김희영 씨(25)는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보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방금 지나간 곳이 환기구임을 알았냐고 묻자 “빨리 가야 하니까 생각을 못 했다”고 말했다.

지하철 2호선 시청역 근처의 유원빌딩 옆도 마찬가지. 환기구가 인도 한가운데를 차지했다. 인파가 붐비지 않아서 일부가 환기구를 피해서 걸었는데 인도가 좁으니 도로로 내려와야 한다.

지하철 2호선 사당역에서 낙성대역 사이. 생태순환로(일명 까치고개)의 환기구가 인도 전체를 차지했다. 보행자의 절반 이상이 옆으로 다녔다. 누군가 마주 오면 환기구 가운데를 걷거나 도로로 내려갔다.

▲ 지하철 2호선 사당역~낙성대역의 까치고개

15년 째 이곳에 산다는 임종국(72) 신정희 씨(65) 부부는 “(판교) 사고 이후로 환풍구 위를 걸을 때 조심하면서 다닌다”고 말했다. 이예주 양(16)씨도 “예전에 추락사고가 있다고 들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피해서 걷는다. 혹시라도 추락할까봐 무섭다”고 말했다.

환기구가 인도의 절반 정도만 차지한 곳에서는 대부분의 시민이 그 위를 다니지 않았다. 지하철 2호선 을지로3가역의 9번 출구가 그랬다.

10분간 지켜봤더니 41명 중에서 4명만 환기구 위를 걸었다. 일행 5명이 모두 환풍구를 피해 인도를 걷기도 했다. 김신아 씨는 “환풍구가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웬만하면 피해서 다니는 편”이라고 말했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과 경복궁역 근처에서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 시계방향으로 지하철 3호선 안국역 김밥천국 앞, 경복궁역 1번 출구, 안국역 하나은행과 종로경찰서 부근

지하철 환기구는 도로철도 설계기준을 적용해 1㎡당 510kg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 지하철 3호선 종로3가역을 예로 들면 11.5㎡(가로 5m, 세로 2.3m)로 5865kg의 하중을 견뎌야 한다. 성인남성 80kg을 기준으로 약 73명에 해당한다.

서울교통공사는 2014년 환기구 설치 및 관리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같은 해에 모든 환기구를 조사해서 2015~2017년에 환기구 609개를 보강했다. 상시점검은 매달 1회, 정기점검은 매년 2회한다고 한다.

인도의 환기구는 비교적 안전하게 관리하는 중이었지만 주의 표시가 없는 점이 아쉬웠다. 이런 이유로 상당수 시민이 환기구를 피해서 도로로 걸었다.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교수(토목공학과)는 “사람의 양심이나 노력에 기대지 말고 이중 삼중으로 (사고를) 시스템적으로 막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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