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내 의약품의 올바른 사용과 폐의약품 회수·처리 시범사업’이 2009년 4월 전국적으로 시작됐다. 환경부와 대한약사회 등 7개 기관과 단체가 참여했다.

가정에서 나오는 폐의약품은 폐기물 관리법 시행규칙에 따라 생활계 유해 폐기물로 분류된다. 지방자치단체장은 5년 주기로 계획을 수립하고 성과를 환경부에 보고해야 한다. 10년이 지난 지금, 잘 되는지 궁금했다.

서울 숙명여대 앞의 온누리 약국을 찾았다. 서유진 약사 실습생(26)은 “최근 한 달 동안 한 명도 폐의약품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기자는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서울 25개 구의 가정 내 폐의약품 처리방법을 입수했다. 25개 구 중 6곳(24%)에는 별도의 지침이 없었다.

양천구와 중구는 지침이 따로 없다고 답변했고, 강서구 서초구 송파구 영등포구는 정보가 없음을 의미하는 ‘부존재’를 통지했다. 나머지 19개 구에는 별도의 지침이 있지만 이야기를 하면 잘 모르겠다는 경우도 있었다.

정보공개청구 신청을 보고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던 성동구보건소 관계자는 “서로 얽혀있기 때문에 아무도 이거(폐의약품 처리 방법)에 대해서 모른다”며 “주관 부서도 없고 이걸 맡아서 다 한다고 말할 수 있는 부서가 없다. 그냥 각자 하던 대로 하는 거다”라고 말했다.

도봉구 의약과의 임승남 주무관은 “폐의약품을 폐기물로 접근하면 청소행정과가 주관 부서지만, 약으로 접근하면 의약과가 책임을 지는 게 맞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처리과정은 존재하지만 책임지는 사람은 명확하지 않은 셈이다. 환경부 폐자원관리과 김지수 사무관은 “중앙부처에서 환경부가 폐의약품 문제를 총괄한다면 지자체에서는 청소행정과가 담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자는 8월 13일 구로구보건소를 찾아갔다. 폐의약품 수거함은 1층 로비에 있었다. 눈에 잘 띄었지만 다가가자 악취가 났다.

뚜껑을 열자 봉지 그대로 버려진 약이 가득했다. ‘알약은 알맹이만! 물약은 한 병에 모아서’라는 홍보문구가 무색했다. 안내 데스크에 처리방법을 묻자 “원래 알약끼리 따로 버리는 게 맞지만 대부분 그러지 않는다. 그냥 버려도 된다”고 했다.

▲ 구로구보건소의 폐의약품 수거함

관리·감독에서도 허점이 발견됐다. 환경부 폐자원관리과의 김지수 사무관은 “시군구에 대한 관리와 감독은 시도가 하고, 시도에 대한 관리·감독은 환경부가 한다”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서울시 보건의료정책과의 이정목 주무관은 “환경부로 별도로 보고하는 건 없다”며 “법적인 의무사항이 있는 것도 아니며 우리는 약국이나 보건소에 모인 폐의약품을 폐기하라고 지시를 내릴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폐의약품이 제대로 수거되지 않는 편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올해 1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처방을 받아 구입했으나 전부 복용하지 못했다고 응답한 미복용자(589명)의 미사용 처방건(949건) 중 약국 의사 보건소에 반환한다는 응답은 8%(76건)에 그쳤다.

폐기물 관리법 시행규칙에 따라 폐의약품은 소각해야 한다. 적절하게 수거되지 않으면 생활폐기물로 분류돼 매립될 가능성이 높다.

남서울대 이주열 교수(보건행정학과)는 “의약품은 화학물질 성분이 다수를 차지하므로 적절히 분해처리하지 못하면 수질 또는 토양이 오염된다. 특히 항생제와 항호르몬제는 심각한 생태계 교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 구로구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노수진 약사(51)는 “애초에 약을 너무 많이 처방해 폐의약품이 발생하게 만드는 점이 문제”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6년 한국의 의약품 연간 판매액은 통계를 제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 국가 중 13번째로 높다.

의약품정책연구소 박혜경 소장은 “외국에서는 제조자가 1차적 책임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제약회사가 기금을 모아서 폐의약품을 수거하고 처리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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