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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직업 (10) 정성(精誠)의 양복점
송예령‧주희원 기자 | 승인 2019.10.13 14:42

 

영화 ‘킹스맨’에 헌츠맨 양복점이 나온다. 영국 런던의 관광명소가 됐다. 이곳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화려해서만은 아니다. 주인공 몸에 완벽하게 맞으면서도 최첨단 기술을 갖춰서다. ‘나만을 위한’ 양복은 언제나 빛을 발한다. 서울에 이런 곳은 없는지 궁금했다.

서울 용산구 보광동의 좁은 골목. 젊은 사장이 운영하는 100% 수제 맞춤정장 양복점이라는 말을 듣고 찾아갔다. 골목에서 길을 헤매자 어느 가게 주인이 말을 걸었다. 양복점을 찾는다고 하자 매장이 사라졌다고 했다.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3번 출구에 있는 ‘사비로 양복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녹색 간판. 겉모습만으로도 오랜 세월을 짐작케 했다. 양복점 사장 최인규 씨(82)가 고객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기자를 보고 의아해했다. 방문취지를 설명하자 그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최 씨는 1971년부터 이곳을 지켰다. 양복기술 하나만으로 지금까지 일했다. 그는 서울 도심에 양복점 양장점 양화점이 가득했지만 지금은 많이 줄었다고 했다.
 
“그 때는 기성복이 아무것도 없었어. 양복 하나를 맞추려면 맞춤 정장을 했어야 됐지. 근데 지금은 기성복이 색깔, 사이즈 등 다양하게 나오잖아. 조금 길면 수선하면 되니….”

사회 초년생인 신민경 씨(24)는 “누가 요즘 비싼데 맞춤정장을 해요. 몸에 조금 안 맞으면 수선해서 입으면 돼요”라며 맞춤정장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성균관대 4학년 박건우 씨(27)는 “맞춤 양복이 너무 비싸서 50만원 대 양복을 부모님과 백화점에 가서 구매했다”고 말했다. 기성양복의 색깔, 사이즈, 디자인이 다양해서 원하는 스타일로 샀다며 만족스러워 했다.

최 씨는 “기성복을 더 찾는 상황에서 양복점의 경쟁력이 이제는 단골손님 유치에 있다”며 자신의 가게에도 단골손님이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맞춤 양복의 진가가 드러나므로 손님이 입소문을 낸다고 했다. 테이블에 단골손님의 명함이 가득했다.

▲ 사비로 양복점의 단골이 남긴 명함

뉴욕 테일러 역시 단골이 손님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사장 박완용 씨(57)는 이곳을 운영하며 33년 동안 이태원에서 지냈다.

양복의 역사를 취재하러 왔다고 하자 그는 장부와 사진을 보여줬다. 41대 미국 대통령을 지낸 조지 부시, 그리고 역대 한미연합사령관, 한국장교들.

많은 고객이 여기서 양복을 맞추면 계속 찾는다고 한다. 기성복과는 질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 뉴욕테일러 내부

. 박 씨의 몇몇 단골손님은 이메일을 통해 미국 호텔로 출장을 요청한다. 그는 “예전에는 젊은 사람, 나이든 사람은 물론 관광객이 많이 찾았으나 요즘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박 씨에 따르면 양복점 사정은 예전 같지 않다. 그는 1997년 말의 외환위기까지만 해도 한 달에 500벌, 많게는 600벌을 제작했다. 요즘은 한 달에 60벌 정도에 그친다.

양복사에게는 학력보다 실전감각이나 세일능력이 중요하다. 능력은 시작하고 나서 배우면 되지만 요즘 양복사가 되려는 청년은 흔치 않다. 성균관대 의상학과 이선우 씨(22)는 “저도 슈트가 매력 있는 옷이라고 생각하지만 직업으로 삼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중에 남자친구나 아버지 데리고 와야 해.” 기자가 인터뷰를 마치고 나가려고 하자 박 씨가 이렇게 말했다.

가게 안에 가득한 갖가지 색과 모양의 양복은 단순한 옷이 아니라 수십 년의 전통과 열정을 담은 정(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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