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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그 후 (1) 인현동 화재 20년 ② 유족의 희망
김민정 기자 | 승인 2019.10.06 19:15

 

인현동 참사 유족회의 김폰삼 총무는 딸 김춘효 양을 잃었다. 유족회는 한 달에 한 번 만난다. 2000년 2월에 시작했다. 사는 이야기, 남에게 하지 못한 이야기를 나눈다. 이재원 유족회 회장은 같은 처지여서 마음 속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전했다.

김 총무는 모임에 매번 오는 사람은 15명 정도라고 했다. 더 많이 모이지 못해서 아쉬워한다. 그러면서 “잊어버리고 싶다고 잊어지나 그런 일이…”라며 말을 흐렸다.

장례를 치르고 김 총무는 일에 집중했다. 아내와도 함께 다녔다. 주위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보상금을 요구하며 장례를 미루다가 이제는 일하러 다니느냐는 분위기. 잊고 싶어서 일에 매달렸지만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았다.

그러던 중 아내는 병이 생겨 수술을 받았다. 부부는 충남 서산으로 이사했다. 좋은 공기를 쐬면서 낫기를 원했지만 아내는 2013년 세상을 떠났다. “집 명의도 다 (부인) 앞으로 해줬는데, 재미없게 됐지 뭐.” 김 씨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김 씨는 서산 집을 그대로 두고 인천으로 다시 이사했다. 지금은 일하는 사무실 위층에서 혼자 산다. 가끔씩 서산에 다녀온다. 딸과 아내를 보내니 재미있을 일이 없다고 말했다. 작은 딸 부부가 안겨준 손자 손녀의 사진을 보는 일이 유일한 낙이다.

유족회는 작년 11월부터 인천의 시민단체와 함께 참사 20주기 추모준비위원회(준비위) 활동을 시작했다. 인천시와 교육청이 참여하는 정식 추모위원회를 원하지만 아직 인천시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준비위는 크게 두 가지를 추진하는 중이다. 하나는 참사와 관련한 자료열람을 요청, 다른 하나는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에 정식 추모공간 마련이다.

▲ 인현동 화재참사 추모비. 왼쪽의 작은 비석은 유족이 세운 비석

김 총무는 자료를 모아서 정리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료를 바탕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는 일을 막을 수 있어서다.

과거에 대한 기억과 반성도 필요하다. 유족회가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에 정식 추모공간을 요청하는 이유다. 김 총무는 “정말 작은 공간이면 된다”고 말했다. 희생자 유품, 사진, 자료를 모아 전시하기를 원한다.

회관은 인현동 화재참사를 계기로 설립됐다. 문화생활을 위한 공간이 부족해서 학생들을 위험한 장소로 몰아넣었다는 지적이 나와서다. 인천시교육청이 만든 문화회관은 2004년 10월 문을 열었다. 안에는 공연장, 보컬‧댄스 연습실, 보드게임실, 체력단련실이 있다.

▲ 유족이 위령비 옆에 세운 희생자 비석

유족은 회관에 위령비가 있는지 일반인이 잘 모르고, 참사에 대해서는 더더욱 모른다고 안타까워했다. 위령비가 주차장 옆에 있어 추모제를 하기 조차 쉽지 않다고 했다.
 
김윤신 씨는 같은 해의 씨랜드 화재에 대해 말했다. 1999년 6월 30일, 경기 화성의 씨랜드 청소년수련원에서 불이 나서 유치원생을 비롯한 23명이 숨졌다. 김 씨는 당시 모두가 아파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있으면 안 된다고 했지만 4개월 만에 인현동 화재가 발생했다고 했다.
  
김 씨는 인재가 발생했을 때 정부가 잘못을 감추지 말고,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이 잘못인지를 밝혀야 인재를 줄일 수 있어서다. “역사는 감춘다고 감춰지는 게 아니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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