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구 한국외국어대 정문 근처의 다세대주택. 3층 건물의 좁은 복도를 따라 방이 이어졌다. 기자가 8월 1일 찾아가서 복도를 걸었지만 소화기는 없었다. 방 안도 마찬가지. 5세대가 있는 건물에 소화기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근처 원룸 5곳을 돌아다녔는데 복도에 소화기를 설치한 건물은 2곳이었다. 취재를 하며 점검한 대학가는 이렇게 화재 무방비 지대였다.

현행법상 원룸 같은 공동주택에는 소화기와 단독경보형 감지기를 설치해야 한다. 소화기는 세대별로 그리고 층별로 1개 이상, 감지기는 방이나 거실 등 구획된 실마다 필요한다.

하지만 처벌조항이 없어서 잘 지키지 않는다. 대학가에 많은 4층 이하의 주택은 소방점검 의무대상이 아닌 점도 문제다. 원룸은 개인 주거공간이라 강제로 점검하기가 어렵다.

▲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의 주택가. 공동주택 상당수가 소화기를 갖추지 않았다.


사정이 이러니 대학생 일부는 소화기의 중요성을 실감하지 못한다. 윤다빈 씨는 소화기가 없는 공동주택에서 5년째 자취를 하는 중이다. 공동주택에 소화기를 설치해야 한다는 규정은 몰랐다.

윤 씨는 “소화기가 없다는 게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성동구의 대학가에서 지내는 이민지 씨는 “소화기를 비치하지 않은 원룸이 워낙 많아서 별생각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 씨는 21세대가 지내는 공동주택에 살지만 어디에도 소화기는 없었다.

대학가 식당은 원룸만큼이나 화재에 취약하다. 지난 5월 한국외국어대 유학생 2명이 원룸에서 화재로 숨졌다. 최초 신고자였던 학생은 소화기를 찾으려고 주변 식당을 돌아다녔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는 글을 대학 커뮤니티에 올렸다.

“화재를 신고하고 무슨 조치라도 취해야 할 것 같아서 식당을 돌아다니며 소화기를 찾았는데 소화기가 비치된 곳이 하나도 없어서 결국 편의점 소화기를 들고 와서 경찰관을 도왔다.”

▲ 식당에 소화기가 없음을 지적한 대학 커뮤니티 글

기자가 8월 1일 한국외대 근처의 식당 10곳을 돌아다녔더니 소화기는 5곳에만 보였다. 식당 같은 곳에 꼭 필요한 K급 소화기를 보유한 음식점은 하나도 없었다. K급 소화기는 일반적인 분말소화기보다 식용유로 인한 화재진압에 특히 유용하다.

다른 대학가 역시 사정이 비슷했다. 기자가 8월 9일 찾은 경기 수원의 경기대 주변. 식당 15곳 중 4곳에 소화기가 없었다. K급 소화기를 설치된 식당은 1곳이었다.
 
법적으로 33㎡ 이상의 다중이용업소는 소화기를 비치해야 한다. 어기면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정부는 2017년 6월 화재안전기준을 개정하면서 신축 음식점은 K급 소화기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했다.

하지만 K급 소화기는커녕 일반 소화기도 없는 식당을 대학가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학가에는 작고 영세한 식당이 많기 때문이다. 소방서는 음식점을 정기적으로 점검하지만 작은 식당까지 살피지는 못한다.

숭실사이버대 이창우 교수(소방방재학과)는 “소방당국이 주택과 식당의 소방시설을 모두 점검하기에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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