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경동시장은 저녁 찬거리를 사러 나온 시민으로 붐볐다. 점포 곳곳에 제로페이 스티커가 눈에 띄었다. 시장 안쪽의 ‘돼지상회’도 마찬가지. 하지만 기자가 지켜본 1시간 동안 제로페이를 사용하는 시민은 아무도 없었다.

‘돼지상회’를 찾은 소진복 씨(73)는 호박과 가지를 구입하면서 현금을 냈다. 제로페이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제로페이 같은 건 모른다. 시장에서는 현금만 받는다”고 말했다. 옆에서 고구마를 사던 중년 여성도 현금으로 계산하면서 제로페이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일부 소비자는 제로페이를 알지만 실제로 이용하지는 않았다. 8월 9일 낮 12시, 서울 여의나루 지하의 ‘희정식당’에서 직장인 김기현 씨(29)는 점심값을 카드로 결제했다. 제로페이를 알지만 신용카드가 편하다고 했다.

핸드폰의 간편결제서비스에 익숙한 소비자도 제로페이를 외면한다. 주부 최옥민 씨(55)는 이날 오후 2시 서울 서대문구의 식당에서 삼성페이로 계산했다. 제로페이를 새로 배워서 이용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 서울 경동시장 ‘돼지상회’의 제로페이 스티커

제로페이는 소상공인을 도우려고 정부와 서울시, 은행과 민간 간편결제사업자가 함께 만든 서비스다. 소비자가 매장의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스캔하고 금액을 입력하면 결제된다. 소비자와 판매자 사이의 계좌 간 이체이므로 카드 수수료가 생기지 않아 판매자에게 이득이다.

제로페이는 소비자뿐 아니라 판매자에게도 불편하다. 7월 30일 방문한 서울지하철 4호선의 혜화역. 송현식당에서 주인 이재윤 씨(71)는 오히려 제로페이 결제방법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4개월 전에 제로페이 가맹점으로 등록했지만 지금까지 한번만 이용했다.

이 씨는 “신용카드가 제일 편하다”고 말했다. 그는 핸드폰에 제로페이 판매자용 앱도 깔지 않았다. 제로페이를 이용하면 카드 수수료가 면제된다는 사실을 이 씨는 이날 처음 알았다.
 
기술적인 한계도 장애물이다. 서울 마포구의 카페 ‘프리마떼’ 주인 이호영 씨(48)는 포스기와 연동되지 않는 점을 지적했다. 대부분의 식당은 계산부터 재무관리까지 포스기를 사용한다. 하지만 제로페이는 포스기에 등록되지 않아 핸드폰으로 금액을 찍어야 결제가 된다.

기자가 제로페이 결제를 요청하자 이 씨는 액수를 직접 계산해 말로 알려줬다. 이 씨는 “바쁠 때 일일이 계산하려면 번거롭다. 매출 집계에 제로페이 매출이 포함되지 않는 점도 문제”라고 말했다.
 
제로페이 이용률이 오르지 않자 정부는 프랜차이즈로 눈을 돌렸다. 프랜차이즈는 많은 가맹점을 거느리므로 본사와 계약만 성공하면 이용률을 단번에 높일 수 있다. 실제로 지난 7월 다이소가 제로페이 도입을 약속하면서 가맹점이 880개나 늘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6월 기준으로 전국의 제로페이 결제는 하루 평균 8945건이다. CU와 GS25 등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5월부터 제로페이 단말기 결제를 시작하여 가맹점이 26만 2000개를 넘은 점을 고려하면 이용률이 낮은 편이다.

서울 영등포구의 ‘희정식당’ 계산대에는 제로페이 스티커가 보이지 않았다. 주인 김상식 씨(68)는 “제로페이를 쓰지 않다 보니 스티커도 QR코드도 없어졌다”고 말했다. 소비자가 찾지 않으니 소상공인도 쓰지 않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셈이다.

정부는 계속 가맹점 늘리기에 주력한다. 중소벤처기업부는 7월 8일 GS25와 세븐일레븐 등 37개 프랜차이즈 본사와 만나 제로페이 가맹점 등록을 약속받았다. 또 1억 3000만 원을 들여서 ‘엔젤’이라는 대학생 홍보단을 조직할 예정이다.

중소벤처기업부의 김선영 팀장(간편결제추진 사업단)은 “프랜차이즈를 포함해 소상공인이 원하면 계속해서 제로페이 가맹점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청 장일진 주무관(제로페이 추진사업단)은 “제로페이의 최우선 대상이 소상공인이라는 사실은 변함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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