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의 통인시장은 일회용기에 떡볶이와 닭강정을 담아 돌아다니는 방문객으로 붐볐다. 과일과 생선을 쌓아놓고 파는 일반 시장과 달리 이곳에서는 작게 포장된 물품이 유난히 많았다. 방문객은 현금이 아니라 ‘구멍 뚫린 동전’을 내고 분식과 과일을 샀다.

통인시장은 2012년 ‘엽전도시락’ 제도를 도입했다. 방문객은 5000원 상당의 엽전 10개를 구매하고 음식과 교환하면 된다.

엽전이라는 전통적 소재에 힘입어 젊은 방문객뿐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이 붐비는 효과를 거뒀다. 통인시장에 ‘제2의 전성기’를 부른 ‘통인시장커뮤니티주식회사’는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 행정안전부가 선정한 ‘우수마을기업’에 올랐다.

엽전도시락 혜택을 통인시장의 모든 점포가 받는 것은 아니다. 76개 점포 가운데 24개만 가맹점이 됐다. 시장상인회에 따르면 분식 반찬 음료 등 먹거리 점포에는 가맹자격이 주지만 야채 정육 의류 같은 점포는 제외된다.

비가맹점인 신발가게를 운영하는 연태순 씨(63)는 엽전도시락으로 인한 불편함을 토로했다. “통인시장은 시장이지 음식점이 아니다. 먹거리만 찾는 관광객 때문에 통로가 붐벼서 손님이 우리 가게 앞에서 신발을 고르기가 불편해졌다.”

▲ 엽전도시락 운영시간이 끝난 뒤의 통인시장

떡집 주인 김휘자 씨(63)에 따르면 엽전도시락 제도가 생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장 분위기가 바뀌었다. 김 씨는 지금의 통인시장을 ‘떴따방’이라고 표현했다.

“시장은 저녁에도 불을 밝히고 활기를 띠어야 하는데, 지금의 통인시장은 엽전도시락 시간이 끝나기 무섭게 문을 닫아버리니 나 같아도 저녁에 이곳을 찾지 않을 거다.”

김 씨 말처럼 엽전도시락 운영시간이 끝나는 오후 4시가 되자 매장을 정리하는 점포가 하나둘 생겼다. 해가 완전히 떨어진 오후 7시 30분 무렵에 불을 밝힌 점포는 10곳이 되지 않았다.

엽전도시락을 이용하는 방문객이 비가맹점에 들르는 모습은 드물었다. 어느 대학생은 “엽전으로 구매할 수 있는 먹거리를 찾아다니고 있다. 엽전으로 야채를 살 수는 없다”고 했다.

비가맹점은 엽전도시락의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임대료만 올라서 울상이다. 떡집을 운영하는 김휘자 씨는 “2014년 이후로 가맹점이든 비가맹점이든 모두 임대료가 올랐다. 지금은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지경”이라고 말했다.

▲ 김영란 씨가 판매한 엽전을 실에 꿰는 모습

통인시장 상인회는 비가맹점을 도울 방안을 모색했다. 대표적인 예가 20% 룰이다. 엽전도시락 가맹점은 상품에 필요한 재료총액의 20%를 통인시장의 가게에서 구매해야 한다.

상인회 박상화 팀장은 “매주 엽전도시락 가맹점의 재료구입 영수증을 점검하여 20% 룰을 지키지 않는 점포에는 엽전을 현금으로 바꿔주는 것을 제한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20% 룰은 상인회의 좋은 취지와 달리 상생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맹점은 통인시장에 있는 식자재 점포의 판매단가를 부담스럽게 여기고, 비가맹점은 수익증가를 체감하지 못한다.

2001년부터 반찬가게를 하는 김영란 씨(64)는 판매한 엽전을 실에 꿰어 분류하면서 고충을 토로했다. “엽전 수익 1000원당 20%의 운영기금과 3%의 세금을 떼면 700원 남짓 남는데, 통인시장 가게의 식재료가 싼 편이 아니어서 큰 이득을 보지는 못한다.”

주말 방문객이 최다 1200명에 이르는 상황을 유지하려면 엽전도시락을 활성화할 수밖에 없다고 상인회는 생각한다. 박상화 팀장은 “통인시장 전체 상황이 별로 좋지 않은 점이 가장 큰 문제다. 500원인 엽전도시락의 (액면)가격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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