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이 기사는 이대학보 2019년 9월 23일자 3면(한·중 학생들의 조별과제···왜 채팅방에서 언성을 높였을까)을 보완한 내용이다. 취재팀은 국내 여러 대학의 사례를 모은 뒤에 이화여대를 중심으로 정리해 이대학보에 기고했다. 이어서 다른 대학교 실태를 반영하여 수정본을 완성했다.

“아, 팀플이 정말 죽을  것 같아요. 사실 회의내용도 잘 못 알아들어요.” 중국 하얼빈에서 온 이화여대 4학년 밍훼이 씨(24)는 팀 프로젝트 얘기를 꺼내며 울상을 지었다. 한국학생과 회의를 할 때는 입을 꾹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알아듣는 게 거의 없어서다.

대학 캠퍼스에서는 삼삼오오 둘러앉은 이들이 자주 보인다. 같은 수업을 듣는 학생끼리 모이는 경우가 많다. 조별과제를 하기 위해서다. 팀플이라고 부른다. 팀(team)과 프로젝트(project)를 합친 신조어.

팀플 경험이 있는 중국인 유학생 4명을 만났다. 이화여대 고려대 성균관대에 다닌다. 고려대와 성균관대는 유학생이 많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두 학교의 중국학생은 각각 1500명, 2300명을 넘는다. 이화여대의 중국학생은 800여 명으로 전체 유학생의 76%를 차지한다.

성균관대 푸위에 씨(23)는 산둥성에서 왔다. 팀플하면서 가장 싫은 건 카카오톡 회의다. 팀원이 많으면 직접 만나기 어려워 차선책으로 카카오톡 회의가 생겼다. 미리 정한 시간에 실시간으로 채팅을 한다.

푸위에 씨는 의견이 있어도 말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화제가 바뀌어서다. “이거(다른 학생 의견) 읽고 있다가 나중에 보니까 이미 서른 개 대화가 지나있어요.”

중국학생에게 한국학생의 대화 속도는 너무 빠르다. 팀원이 5명을 넘으면 의견을 내기가 더 힘들어진다. “우린 천천히 읽어야 하니까….” 그래서 가능하면 팀플 있는 수업 안 들어요.”

한국의 외국인 학생은 14만 명이다. 교육부 자료를 보면 지난해 중국학생은 6만8000명으로 전체의 48.2%를 차지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유학생활은 만만치가 않다. 가장 큰 요인은 부족한 한국어 능력으로 나타났다. 팀플 있는 수업을 꺼리는 이유다.

팀플은 한국학생에게도 골칫거리다. 한국 대학생은 한 학기에 평균 3.34개의 팀플을 한다. 2018년 ‘대학내일 20대연구소’가 대학생 500명을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5개 이상이라는 비율이 23.8%로 가장 많았다.

응답자의 62.8%는 수강신청 할 때 팀플의 유무를 고려한다고 답했다. 2012년 조사에 비해 약 33.5%p 늘었다. 대학수업에서의 팀플 비중과 그에 따른 학생의 부담이 늘었음을 말해준다.

밍훼이 씨는 단체대화방의 캡쳐 화면을 보여줬다. 그러면서 지난 학기 수업에서 한국학생과 갈등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대화창은 총, 칼 없는 전쟁터 같았다. 예의를 지켰지만 주고받은 대화에서 서로에게 받은 실망과 상처가 드러났다.

한국학생은 중국학생의 저조한 참여에 불만을 토로했다. 의견을 물어도 성의 없이 답변하거나 아예 대답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좋은 점수를 받으려면 한국학생끼리라도 열심히 해야 했다. 결국 대답을 하지 않은 중국학생은 제외할 수밖에 없었다.

팀원이 많아 카카오톡 회의시간을 늦은 밤으로 잡았지만 밍훼이씨는 참여할 수 없었다.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서다. 일이 끝난 뒤 확인하면 회의는 이미 끝나 있었다.

양해를 구하고 주제에 대해 의견을 미리 남기려고 했지만 그 마저도 못했다. ‘정치인 유튜브의 부작용’이라는 주제가 너무 어려웠다. 한국 정치인이 나오는 영상뿐이었다. 자막이 없어서 무슨 말을 하는지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번역기에 돌렸지만 이해하지 못했다.

▲한중 학생의 단체대화방 화면

이러니 팀플에서 배우는 90%가 사람에 대한 증오라는 소리까지 나온다.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유학생까지 신경을 쓰면 한국학생의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화여대 홍수민 씨는 “중국인이 있다고 성적에 더 메리트를 주는 건 없으니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경희대 김예슬 씨는 “같은 팀이던 중국인 학생의 발표대본도 써줬다. 주변을 보면 다들 부담스러워하거나 되도록 같이 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국학생의 걱정과 불만을 중국학생이 모르는 건 아니다. 푸위에 씨는 이번 학기에 팀플이 있는 수업을 하나도 신청하지 않았다. 한국학생도 별로 원하지 않으니 최대한 안 넣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에브리타임(학교 커뮤니티)에서 댓글 많이 봤어요. 이 수업 중국인 많다 듣지 마라, 팀플하면 한국인이 다 해야 되는 거 알고 신청해라…. 괜찮아요. 알고 있으니까 우리가 잘 못하는 거. 그래서 팀플 있는 수업 신청 안했어요.”

한국학생에게 부담이 되진 않을까 걱정도 많다.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게 팀플이라고 푸웨이 씨는 설명했다.

“제가 하겠다는 말을 못하겠어요. 책임지고 해야 하는데 제가 제 능력 알거든요. 내가 해서 만약에 우리 팀 점수 못 받으면 어떡해. 그게 제일 어려운 점이에요.”

한국학생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취재진이 물었다. 밍훼이 씨는 “상대방이 귀찮을까봐 따로 물어보지 못할 때가 있다”고 대답했다.

팀플이 많은 전공이 있다. 경영학이나 신문방송학이 대표적이다. 학생들은 팀을 꾸려 마케팅 전략을 짜거나 영상, 광고 등 콘텐츠를 제작해야 한다. 이렇다보니 팀플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다른 전공에서보다 더 클 수밖에 없다.

이화여대 이정민 교수(교육공학과)는 최근 연구를 보면 다양한 개인이 모인 팀에서 창의적인 성과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며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팀플은 미래인재역량인 협업과 커뮤니케이션 능력, 리더십이 모두 계발될 수 있는 교수학습법이다. 팀플 학습은 오리엔테이션과 적절한 과제제시가 매우 중요하므로 초기에 각자 맡은 역할을 분명히 하고 갈등 발생 시 해결법을 사전에 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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