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간판이 보였다. ‘만화’라고 쓰여 있었다. 건물입구로 들어서자 손가락 크기의 거미가 눈에 띄었다. 천장은 회색빛 거미줄로 가득했다. 거미에서 눈을 떼니 ‘창전사’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경기 이천시 창전동의 만화방. 1989년부터 30년째 이 자리를 지킨다.

지하로 내려가니 벽면을 둘러싼 책장이 보였다. 만화책이 빼곡했다. 그런데도 공간이 모자란 듯, 소파 위에 만화책이 가득했다. 그곳에서 만화방을 운영하는 이근호 씨(65)를 만났다.

이 씨는 22평짜리 만화방을 50평 정도 되는 이곳으로 30년 전에 옮겼다. 손님이 많아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해서였다. 2층까지 있는데도 앉을 자리가 부족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만화방이 잘 됐어요. 우리 가게가 너무 잘 되니까 주변에다가 사람들이 만홧가게를 많이 차렸어. 이천에만 30개가 있었는데 지금은 한 개도 없어요.”

▲ 창전사 내부

만화방은 1960년대 초에 등장했다. TV가 보편적이지 않던 시절이라 만화는 어린이에게 오락거리이자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1970~80년대에는 <공포의 외인구단> 등 인기작품이 등장하면서 독자층이 넓어졌다.

만화잡지가 나온 1990년대부터 만화방 입지가 좁아졌다. 인터넷이 등장한 뒤에는 웹툰의 영향으로 만화방이 ‘멸종위기’ 상태가 됐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따르면 1970년대 1만 8000여개이던 만화방이 2017년에 744개뿐이다.

창전사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6~7년 전, 주변에 만화방 세 곳이 생기면서다. “옛날에는 주변에 (만화방이) 열 개가 생겼어도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세 개가 생기니까 흔들리더라고.”

이 씨는 수입이 아예 없을 정도로 힘겨웠다고 회상했다. 유독 만화책을 좋아하던 아내를 위해 시작한 일이었기에 애정이 남달랐지만, 그는 처음으로 가게를 접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반 년 정도가 지나자 새로 생긴 가게가 하나둘씩 문을 닫았다. 큰 고비를 넘겼지만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한 번 떨어진 매출은 다시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한 달 평균 300만~400만 원, 많으면 600만 원을 넘던 수입이 요즘은 200만 원을 넘지 못한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운영할 수 있었던 이유를 묻자 이 씨는 손님을 꼽았다. “어쩌다 오는 분들이 ‘그대로네요. 옛날하고 똑같네요’라고 한 마디 하면 나는 너무 좋지.”

▲ 창전사의 이근호 씨

가끔씩 오래된 만화방에 간다는 오승혁 씨는 아들과 함께 창전사를 찾는다. 그는 “(사장님께서) 컴퓨터를 이용하지 않고 일일이 노트에 기록하는 모습을 보니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이동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오 씨처럼 추억을 찾기 위해 가끔 오는 손님이 있지만 자주 찾는 단골도 있다. 주기적으로 나오는 신간 만화를 보기 위해서다. 이 씨는 이런 손님을 위해 “신간을 거의 다 산다”고 말했다.

하지만 살 수 있는 책은 점점 줄어든다. 일반 만화작가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연세가 많이 드셔서 안 쓴다고 그래요. 그래서 지금 7명에서 8명 정도의 작가 작품이 와요. 길어야 5년 정도? 책이 이제는 안 나올 것 같아요.”

이 씨는 만화방과 작가가 상생할 수밖에 없다고 얘기했다. 새 만화책이 나와야 만화방이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이용철 문화진흥팀장은 만화책이 감소해 만화방이 줄고, 종이만화를 소비하던 독자는 만화방이 사라져 온라인으로 간다며 예전 같은 만화방은 소멸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나 하나 남았어요. 내가 안 되면 다 없어질 거 아니야. 이천시에서 해주면 이 책들 다 기증하고, 시민이 와서 보게끔 하고 싶어요. 만화 박물관, 시의 만화방. 그러면 돈 하나 안 받고 기증할 거야.” 이 씨가 오늘도 웃으며 손님을 맞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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