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성건동, 이혜숙 씨(62) 집의 장식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2016년 9월 12일이었다. 이 씨는 근처 편의점으로 곧바로 대피했다. 같은 동의 박무혁 군(11)도 진동을 느꼈다. 처음에는 층간소음으로 생각했다가 지진임을 알고 황성공원으로 대피했다.

이날 경주에는 규모 5.8의 지진이 일어났다. 기상청이 1978년 지진을 공식적으로 기록한 이후로는 가장 큰 규모다. 규모 5의 지진이 일어나면 그릇과 창문이 깨진다. 규모 6에서는 무거운 가구가 움직이며 벽의 석회가 떨어진다.

진앙은 경주시청과 약 9km 떨어진 곳이었지만 경주시민은 지진을 느낄 정도여서 공원과 운동장 같은 옥외 지진대피소로 대피했다. 당시 국민안전처 집계 결과, 인명 및 재산 피해는 9319건이다. 이후 2019년 1월까지 규모 2 정도의 여진이 수십 차례 발생했다.

양산단층이 지나기 때문에 경주에는 이전부터 지진이 자주 일어났다. 삼국사기에는 “779년 큰 지진으로 서라벌의 집이 무너지고 사람이 100여명 죽었다. 2년 전에도 두 차례 지진이 있었다”고 나온다.

기자는 지난 5월 4일, 5일 이틀에 걸쳐 경주 시내의 옥외지진대피소 21곳을 점검했다. 인구가 많은 황성동, 동천동, 성건동, 용강동에서 국민재난안전포털에 등록된 곳이었다.

현장을 봤더니 지진대피소 안팎에 위험물질이 방치된 곳은 7곳이었다. 용강동 대신어린이공원 옆에서는 5층 건물을 짓는 중이다. 철근을 포함한 건축자재가 고정되지 않고 여기 저기 놓여 있었다.

공원면적은 2200여㎡로 서울시청 광장의 5분의 1이 안 된다. 그네를 타던 김소희 양(11)은 “지진이 났을 때 이곳으로 왔다. 지금 당장 지진이 일어난다면 공사 현장 때문에 위험할 것 같다”고 말했다.

▲ 용강동 대신어린이공원. 나무판자와 벽돌 등 건축자재가 방치됐다.

황성공원에서는 조립식 경기장 관람석이 고정되지 않은 채 길목에 있었다. 관람석 높이는 2.5m다. 아랫부분에 바퀴가 달려있어 지진이 일어나면 관람석이 굴러다닐 가능성이 크다.

용강동 홈플러스 주차장의 쇼핑카트는 자물쇠가 모두 풀려 지진이 일어나면 수백 대가 주차장을 굴러다닐 수 있다. 용강동 제일침례교회 주차장. 고정 나사가 빠진 차단봉 하나를 살짝 건드리자 바로 넘어졌다.

일부 대피소는 들어가기가 힘들었다. 성건동 흥무초등학교는 정문을 성인 1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게 열어 놓았다. 문을 활짝 열려고 했더니 쇠사슬로 묶여 움직이지 않았다. 인파가 몰리면 운동장 진입시간이 길어진다.

후문은 전면 개방했지만 정문과 200m 떨어졌다. 이 학교의 교무행정사는 “주차문제 때문에 그렇게 한 것으로 안다. 대피소 개방이 문제가 된다면 열어놓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경상북도 각급학교 시설의 개방 및 이용에 관한 규칙’ 제 3조는 ‘학교교육에 지장이 없는 범위 안에서 주민이 학교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여야 한다’면서도 제 6조에서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학교시설의 관리 및 이용자의 안전을 고려하여 학교시설의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교문개방은 교장 권한이다.
 
서라벌여자중 정문 앞에는 고물상이 있다. 가전제품 수십 대가 정문과 5m도 안 되는 곳에 즐비하다. 주민이 이곳으로 대피할 때 가전제품이 무너지면 학교에 들어가기가 어렵다.

경주시 안전정책과 문경환 주무관은 “현장을 직접 점검하지는 않는다. 경주시는 옥외 지진대피소 앞에 표지판을 세우고 길을 안내한다”고 했다. 황성공원을 관리하는 경주시 도시공원과 한상희 주무관도 “공원 대피 장소 시설물은 경주시 시설관리공단에서 관리한다. 우리는 표지판 설치를 담당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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