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최=삼성언론재단‧한국언론학회‧한국기자협회
주제=정치 양극화와 언론
일시=2019년 6월 26일(수) 오후 7시~9시
장소=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
강연=제임스 기어리(Jame Geary) 하버드대 니먼재단 부소장
사회=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미국의 대학팀인 프린스턴(Princeton)과 다트머스(Dartmouth)의 미식축구 경기가 있었다. 1951년 11월 23일이었다. 이날 프린스턴 간판이던 리처드 카즈마이어 선수는 코뼈 골절, 뇌진탕 등 부상을 입었다. 다트머스 선수 중 한 명은 다리가 부러졌다.

양 팀은 상대가 불필요하게 거칠었다며 문제를 제기했고, 이 분쟁은 캠퍼스를 뒤덮었다. 하버드대 니먼재단의 제임스 기어리(James Geary) 부소장이 6월 26일 삼성언론재단 강연회에서 소개한 일화다.

“이렇게 역겨운 스포츠를 본 적이 없다. 두 팀 모두 잘못했지만 책임은 다트머스에게 있다.” “시즌 동안 다트머스 선수들은 몇 차례의 가벼운 뇌진탕은 말할 것도 없고 약 10건의 코뼈 골절과 얼굴 부상을 입었다. 이만한 부상은 지금껏 어떤 경기 연습에서도 없었다.”

경기가 끝나고 두 대학의 학생신문인 데일리 프린스턴(Daily Princeton)과 다트머스(Dartmouth)가 위와 같이 보도했다.

사회과학자인 알버트 하스토프(Albert Hastorf)와 해들리 캔트릴(Hadley Cantril)은 두 대학 학생에게 경기 영상을 보여주고 부상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는지 말해달라고 했다.

프린스턴 학생들은 다트머스팀이 반칙을 두 배 더 했다고 봤다. 다트머스 학생들은 반대로 생각했다. 다트머스 학생 중 3분의 1이 거친 플레이를 시작한 점에 다트머스 책임이 있다고 느꼈지만, 대다수는 양쪽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 제임스 기어리 부소장의 모습(출처=삼성언론재단)

기어리 부소장은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1951년 프린스턴-다트머스 경기에서 하스토프와 캔트릴이 관찰한 내용을 경험한다고 했다. 다른 가치관이나 신념을 가진 사람이 같은 사건에서 완전히 다른 사실을 본다는 뜻이다.

이런 현상은 전 세계 곳곳에서 나타난다. 사실 인식의 이중화(Dueling fact perceptions). 반대의견을 가진 사람이 특정 사실에 대해 상반된 생각을 하는 경향을 일컫는다.

모건 마리에타(Mogan Marietta)와 데이비드 베이커(David Baker)가 저서 ‘하나의 국가, 두 개의 현실’(One Nation, Two Realities)에서 이름 붙였다. 그들은 사실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 경험적 증거와도 상관없이 이미 가졌던 핵심적 가치와 신념에 의해 좌우된다고 했다.

사실을 파악하고 검토한 다음에 의견을 형성하지 않고 자신의 가치관과 부합하는 사실을 찾는 경향이 있으며, 그것이 그들이 믿는 내용이라고 한다. 상반된 사실인식이 양극화된 정치인식을 가져오지 않고, 양극화된 정치인식이 상반된 사실인식을 가져온다는 뜻이다.

기어리 부소장은 사실인식의 이중화로 인해 사회적·정치적 폐해가 심각하다고 말한다. 양극화된 정치인식은 더 심화된 사실인식의 이중화로 이어져 반대의견을 가진 이들을 경멸하고 시민담론에서 벗어나게 한다.

시민담론으로부터의 이탈은 더 큰 정치적 양극화로, 정치적 양극화는 정부와 언론에 대한 신뢰의 손실로 이어진다. 이러한 손실은 사실과 가치의 차이를 더욱 모호하게 만든다.

기어리 부소장은 언론이 정치적 양극화를 부추기고, 사실인식의 이중화를 더욱 심화시킨다고 했다. 비영리 미디어 분석기관(Media Matters for America)은 트럼프 대통령이 올리는 트위터를 언론이 반박하기보다는 계속해서 확대‧재생산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배경이나 맥락을 비롯한 여러 가지 설명, 혹은 팩트 체크를 하지 않고 똑같은 인용구를 계속 헤드라인으로 다루고, 이런 관행이 상반된 사실인식으로 심화된다고 한다. 기어리 부소장은 이렇게 말한다.

“더욱 큰 우려는 가장 부정확한 신념을 가진 사람이 가장 큰 자신감을 갖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즉 반대의 사실이 있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치적으로 가장 지식이 많은 사람이 더욱 양극화된 사실인식을 하는 경향도 있다.”

기어리 부소장은 ‘대통령이 말하는 모든 것’이 보도대상이 된다는 언론의 주장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고 했다.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거짓 발언이나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발언을 계속해서 보도하고 팩트 체크를 하지 않는 일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것”이라고 묘사했다.

▲ 삼성언론재단 강연장

극단적 시각, 가짜‧허위정보가 범람하는 작금의 환경에서 언론이 취할 전략은 ‘전략적 침묵’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진짜 중요한 목소리’가 더 잘 들리도록 하는 데 힘을 쏟을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점에서 ‘대화 저널리즘’이 각광받게 됐다고 기어리 부소장은 말했다. 편집국과 지역사회의 의견이 서로 달라도 함께 모여서 토론하는 과정을 말한다.

그러면서 ‘스페이스십 미디어(Spaceship Media)’를 소개했다. 지역사회의 이해당사자와 언론인이 모여 다양한 사실을 바탕으로 토론하는 곳이다. 예를 들어 미네소타주의 농업 현안, 미국 총기 규제, 샌프란시스코의 주택 가격 문제에 대해 논의를 했다.

‘더 매니(The Many)’ 프로젝트도 소개했다. 비공개 페이스북 그룹을 통해 미국 전역의 여성이 정치‧사회‧문화 등 이슈에 대해 상반된 의견을 공유하는 장이다. 개개인의 생각이나 특정 이슈에 대한 입장 변화를 꾀하지 않고, 사실을 바탕으로 존중감을 가지고 토론을 한다.

기어리 부소장은 “저널리스트와 저널리즘은 재정적‧정치적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비관하기 쉽다. 하지만 대화 저널리즘을 실천하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전통적으로 했던 탐사보도 등을 활용해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어리 부소장은 또 “저널리스트가 사실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바로 세우면, 이를 근간으로 시민담론과 민주주의를 지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 도자기인 ‘달 항아리’를 언급했다.

우윳빛 순백색의 달 항아리는 처음에는 상당히 단순한 외관에 특색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다른 시각, 다른 사실을 갖고 바라보게 된다고 했다.

우선 워낙 커서 만들기가 어렵기 때문에 2개로 나눠야 한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또 백토에 수분이 많아서 활활 타던 가마의 불이 꺼지거나 항아리가 휘는 경향이 있다. 달 항아리가 완전하게 둥근 모양을 하지 않는 이유다. 항상 불완전성을 지닌다는 말이다.

기어리 부소장은 “이런 불완전함이 달 항아리가 갖는 아름다움의 정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달 항아리 사진을 보여주며 더욱 자세하게 묘사했다.

“지금 화면에 보이듯, 달 항아리는 약간 비대칭이다. 2개로 나눠진 부분이 가마 속에서 구워지며 합쳐진다. 이 과정에서 약간의 이음새가 희미하게 보인다. 직접 만져보면 이음새를 잘 느낄 수 있다. 피부에 있는 주름처럼 느껴진다.”

달 항아리처럼, 2개의 양분된 사회를 연결하는 이음부 역할. 공통된 사실을 제공해 양분된 사회를 한 데 어우러지게 하는 일. 기어리 부소장이 생각하는 저널리즘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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