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 앞에는 베토벤 아저씨라 불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분칠이라도 한 듯 창백한 얼굴에 목덜미까지 내려오는 덥수룩한 머리, 검정색 겨울 양복에 서류 가방. 항상 정문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서 있습니다. 사람들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얼른 고개를 숙이고, 손에 든 서류 가방으로 얼굴을 가립니다.

그 아저씨를 처음 본 사람들은 보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고, 두 번 이상 본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합니다. 궁금은 하면서도 차마 말은 못 거는 상황이었죠. 어떤 이는 자기가 말을 걸면 주머니에서 황산이라도 꺼내 부어 버릴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모 방송국에서는 그 아저씨를 취재하기 위해 3일을 쫓아 다녔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매달 '나름대로의' 특종에 대한 부담감을 안고 사는 DEW에게 베토벤 아저씨는 도전해 볼 만한 인물이었습니다. 저 아저씨를 취재해 싣기만 하면 접속률이 엄청 오를거야. DEW는 만장일치로 그 아저씨를 취재하기로 하고 계획을 짰습니다. 우선 며칠간은 아저씨를 관찰하기로 했습니다. 하루의 스케줄을 체크하고, 즐겨 찾는 식당에도 따라 갔습니다. 정문 앞 닭꼬치 장수를 통해 아저씨에 대한 정보도 알아 낼 수 있었습니다. 고전문학을 전공한 엘리트에 며칠에 한 번 웃는 얼굴로 닭꼬치를 두 개씩 사 간다는 얘기는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이제 말을 거는 문제만 남아 있었죠. 계획은 거창했으나 막상 고양이 목에 방울 걸 사람이 없었습니다. 편집장의 권한으로 우리 중 가장 분위기 있는 한 후배를 지목했습니다. 미인계를 이용하는거야.

처음 후배가 말을 건넸을 때 아저씨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왜, 왜 그러시죠?"라고 더듬더듬 물었습니다. 그저 당신과 얘기를 나눠 보고 싶다며 설명하는 후배의 말을 아저씨는 무신경하게 듣고만 있었습니다. 며칠을 찾아가 말을 건 덕분인지 두 사람은 이제 '대화'하는 사이로 발전했습니다. 물론 후배가 말을 하면 아저씨는 네, 아니오의 대답만 했지요. 서로의 핸드폰 번호-아저씨가 PCS를 사용한다는 사실에 우리는 얼마나 흥분했는지 모릅니다-를 교환한 후 정식으로 인터뷰 날짜를 잡았습니다.

인터뷰 전날, 잔뜩 부풀어 있는 후배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학교 앞의 그 사람'이라 자신을 소개한 아저씨는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후배에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모략한다. 나와 만났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말라. 내일 만나지 말기로 하자.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던 아저씨는 "나를 제발 그냥 내버려 두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아저씨의 절규를 '정신병자의 중얼거림'으로 넘길 수만은 없었습니다. 다른 이에겐 개방되어 있는 학교 출입이 학생들의 신고로 아저씨에겐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저 기분 나쁘다는 게 이유였죠. 얼마 전 체육대학 여자 화장실에 남자가 있었다는 소문은 꼬리를 물어 베토벤 아저씨를 범인으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수위 아저씨에게 그 얘기를 하는 학생들은 직접 봤냐는 물음에 친구의 친구가 봤대요라고 답할 뿐이었죠.

그저 가만히 있고 싶은 사람을 우리가 너무 많이 괴롭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지 차림새가 특이하다는 이유만으로 말입니다. 정신 이상자라 우리 마음대로 규정짓고, 뭔가 재미있는 사연이 있을거라 상상하며 아저씨를 대했습니다. 철저히 '괜찮은 취재감'으로만 말이죠. 설마 저 사람이 인터넷을 할까라는 생각에 몰래 사진을 찍어 실으려 하기도 했습니다.

약자에게 군림하고픈 강자의 심리가 우리 마음 속에 있었나 봅니다. 우리는 첨단 매체를 다루는 웹진 기자들이고, 당신은 건드려 보면 재미있을 것 같은 정신병자다. 비가 내리는 오늘도 검은 우산을 쓰고 학교 앞에 와 있는 아저씨를 보자 '좀머씨'의 대사가 떠올랐습니다.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나를 좀 제발, 제발 그냥……!

 

박내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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