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최=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
주제=북핵과 김정은의 속셈
일시=2019년 6월 24일(월) 오후 2시 30분
장소=한국프레스센터 20층 내셔널프레스클럽
발제=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
질의=하태원(채널 A 기자) 신석호(동아일보 기자)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과 21세기평화연구소가 북한의 핵협상 전략을 분석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강연은 박근혜 정부시절에 대통령 안보전략 비서관을 지낸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이 맡았다.
전 전 원장은 강연을 시작하며 ‘광인 이론’을 소개했다. 닉슨 미국 대통령이 1968년 베트남 전쟁을 종결시키기 위해 핵무기 발사 버튼을 기꺼이 누를 수 있다며 호찌민의 굴복을 유도한 데서 유래했다.
화가 나면 비이성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인물임을 상대에게 각인시켜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협상을 이끄는 전략이다. 김정은이 집권을 시작하고 전례 없던 행보를 보이자 학계에서는 김정은의 행동을 광인 이론으로 설명했다.
뉴욕타임스는 김정은을 “대단히 계산적이고 이성적인 결정을 내리는 광인 이론의 실천가”로 평가하는 칼럼을 2016년 실었다. 무자비하고 비도덕적인 이미지를 구축하고 전쟁불사 의지를 표명해 약소국의 위치에서 강대국을 전략적으로 상대한다는 내용이다.
전 전 원장은 이에 동의하며 김정은의 사고방식을 한국이나 미국의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자유민주주의의 관점에서는 무모해 보이는 정책이라도 합리적인 결정과정을 거쳤으므로 김정은을 단순한 광인으로만 치부하면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위의 그래프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빈도를 보여준다. 김일성이 함경북도 무수단리에서, 김정일이 강원 북단 원산과 무수단리에서 간헐적으로 실험을 했지만 김정은은 횟수와 장소를 동시에 늘렸다.
전 전 원장은 “미사일 발사의 빈도만 보더라도 누가 더 도발적이고 위험한 인물인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핵실험도 마찬가지다. 김정일은 17년 집권 동안 두 번을 했다. 김정은은 8년 만에 네 차례 해서 핵무기를 결국 완성시켰다.
전 전 원장은 핵 문제에 있어서 3대를 걸쳐 내려오는 북한의 발언과 전략에 상당한 일관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김정은은 집권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헌법을 개정했다. 2012년 4월 개정 헌법에 ‘김정일 동지께서는 우리 조국을 불패의 정치사상강국, 핵보유국, 무적의 군사강국으로 전편시키셨다’고 언급하며 북한이 핵보유국이라고 못을 박았다.
1년 뒤 2013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 2차 전원 회의에서는 경제개발과 핵무기개발을 병행하겠다는 병진노선을 제시했다. 하지만 ‘인민 생활을 높이기 위한 투쟁은 강력한 군사력, 핵 무력에 의해 담보되어야 성과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며 핵무기 개발이 우선임을 명시했다.
작년 4월 제3차 전원 회의에서 김정은은 새로운 전략적 노선을 제시하며 경제개발에 몰두할 시기라고 언급했다. 국내 전문가들과 언론은 이를 북한의 핵 포기 선언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2013년 약속대로 핵무기 개발을 완성했기에 경제개발로 초점을 옮겼을 뿐이다. 북한의 의도와 전략 분석에 혼선이 생기는 이유가 “북한이 핵 보유 의지를 간과하거나 우리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기 때문”이라고 전 전 원장은 지적했다.
‘북한의 용어혼란 전술에 말려들어선 안 된다’는 교훈을 얻을 때가 됐다고도 말했다. 작년 3월 정부 특사로 평양을 방문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 목표는 선대의 유훈이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정은의 발언이 핵동결이나 핵확산 방지가 아니라 완전한 비핵화를 뜻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서훈 국가정보원장은 “그게 아니라면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 김 위원장이 처음으로 직접 비핵화를 약속했다는 것에 의미를 둬야 한다”고 답변했다.
전 전 원장은 북한의 비핵화와 한미의 비핵화는 의미가 다르다고 했다. 북한은 1990년대 초부터 ‘조선반도의 비핵화 지대’를 주장했다. 당장은 핵 개발을 포기하지 않되 미국의 조치에 상응해 단계적으로 비핵화를 고려하겠다는 뜻이다.
반면 한국은 비핵화를 핵무기의 실험, 제조, 생산, 도입, 처리, 저장, 배치, 사용의 전면 금지로 명명했다. 한국은 애초에 핵무기 실험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에 일방적인 핵 포기를 요구한 셈이다.
1991년 12월 말 북한이 ‘비핵화 지대’라는 말을 버리고 한국이 제시한 비핵화안을 모두 수용해 판문점에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체결했다. 하지만 불리한 상황을 모면하려고 상대의견을 따라 서명하고 재협상을 할 때 말을 번복하는 방식은 북한의 오랜 전략이다.
공동선언을 체결한 이듬해, 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실무협상이 있었다. 북한은 이행합의서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전부터 북한이 주장한 조선반도 비핵화지대의 내용과 동일했다. 이때부터 북한은 비핵화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실질적으로는 핵 실험을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북한행보로 볼 때 “2018년 6월 싱가포르 공동선언의 방향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명확하다”고 전 전 원장은 말했다. 협상을 체결하고 시간을 끌다가 상대국 행정부가 바뀌면 합의를 파기하고 단계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하는 ‘살라미 전술’을 사용한다는 뜻.
전 전 원장은 “북한의 핵 개발을 외교협상으로 포기시킬 수 있다고 기대하다가 북한은 핵무기를 완성했고 우리는 무방비상태로 남아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미국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서부해안이 위협받자 북한의 요구를 최대한 들어줘야 하는 상황이 됐다.
핵은 핵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게 전 전 원장의 생각이다. 상대가 우리에게 핵을 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상호 확증 파괴를 전제로 했을 때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
1991년부터 지금까지 한국의 대통령이 7번 바뀌고 미국의 대통령이 5번 바뀔 동안 북한과의 핵 협상은 한국에 아주 불리한 상황으로 바뀌었다. 전 전 원장은 “이해와 대화를 전제로 하는 협상방향에 대해 국가, 사회적 차원에서 엄밀한 진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강력한 군사력이 아름답고 우아한 외교를 하는 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모를 것’이라는 조지 케넌의 말을 인용했다. 힘을 가져야 비로소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협상을 이끌 수 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