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책이 모든 책장에 빼곡했다. 세 벽으로 모자라 가게 앞까지 가득했다. 1평 남짓한 내부는 책으로 이루어진 우주 같았다. 이런 작은 가게가 청계천을 따라 이어진다. 서울 중구 동대문평화시장 1층의 헌책방거리 풍경이다.

거리 초입의 대원서점은 아동서적과 시리즈물을 주로 다룬다. 15년 전쯤 유행한 ‘무서운 게 딱 좋아’ 시리즈가 이제는 헌책이 됐다. 손대원 씨는 40년 넘게 운영하면서 자녀를 키웠다.

하지만 최근 들어 매출이 확연히 줄었다. 독자가 전자책과 스마트폰에 더 친숙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방문객의 대다수가 초등학생 이하의 어린이 혹은 중년 이상의 어르신이라고 말했다.

서울 중구청에 따르면 1970년대 전성기에는 200개 이상의 헌책방이 여기에 있었다. 현재는 20여 곳만 남았다. 그마저도 하나씩 사라지는 중이다.

▲ 헌책방거리의 모습

민중서림 주인 송기호 씨(74)는 이달 말에 또 한 곳이 문을 닫는다고 했다. 그는 남편과 함께 56년간 헌책방을 운영했다. 과거에는 전문적으로 다루는 장르가 있었지만 요즘은 장사가 안돼서 다양한 서적을 판매한다.

취재진이 관상학 책에 관심을 보이자 송 씨는 기다리라며 안으로 들어갔다. 상태가 더 좋은 책을 가져왔다. 1000권도 넘는 책 사이에서 어떻게 바로 찾았느냐고 물었더니 “내 손으로 사고 정리했는데 그것도 모를까 그럼”하며 웃었다.

두 달 전에는 중년 여성이 ‘로버트 생활영어’를 찾았다. 과거 인기를 끈 회화교재. 1962년에 처음 출판되고 3편까지 나왔지만 절판됐다. 여성은 큰 기대를 하지 않다가 송 씨가 금방 꺼내오자 깜짝 놀라며 고마워했다고 한다.

그가 구석에서 또 다른 묶음 하나를 꺼내 보여줬다. 한문으로 쓴 불교경전이었다. 누군가의 정갈한 글씨가 돋보였다. 책 주인이 여자이지 않았을까, 시험에 합격하고서 팔았을까. 송 씨는 헌책방을 운영하며 다양한 손님을 만날 수 있어 즐겁다고 덧붙였다.

▲ 서점내부

이해연 씨(41)는 8년 만에 청계천 헌책방거리를 찾았다. 개역한글성경을 찾아다닌 추억이 떠올랐다. 그는 헌책의 매력으로 편안함을 꼽았다. 원하는 책을 구하려고 발품을 파는 과정이 보물찾기와 같다. 다른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며 읽었을지 상상하는 즐거움도 있다.
 
청계천 헌책방거리는 긴 세월의 발자취를 담았다. 헌책뿐 아니라 오가는 대화에서도 정이 느껴진다.

동화마을에서 1994년도 내셔널지오그래픽 잡지 2권을 고르자 주인 이기운 씨는 1000원을 깎아줬다. 독서량이 줄고 온라인 중고서점이 등장하며 헌책방에서 젊은 층을 보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주인들은 학생인 취재진을 따뜻하게 반겼다.
 
연세대 동아리 인액터스는 헌책방거리를 살리기 위해 ‘설레어함’ 사업을 2014년 추진했다. 설레어함은 헌책방 주인이 선정한 책으로 구성된 박스다. 헌책 3권, 감사카드, 소개카드, 책갈피 형식의 책 교환권이 들어있다. 개당 1만 5000원에 판다.

인액터스의 30기 정혜인 팀장(24)은 “사장님들이 책 하나하나를 다루시는 방법에 놀랐다”고 말했다. 책을 들여올 때부터 소비자에게 전달될 때까지 정말 꼼꼼히 검수한다고 설명했다.

프로젝트는 올해 초 마무리했지만 밍키서림과는 관계를 유지한다. 주인 채오식 씨는 오랜 시간 노력한 학생들에게 고마워서 사업을 이어받았다. 모든 책은 직접 선별한다. 20년 동안 가게를 운영하며 습득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다.

한편 서울시도 3월 ‘서울책보고’를 개관하며 헌책방 활성화에 나섰다. 서울 송파구 잠실철교 아래 443평 창고를 개조해서 헌책방 21곳의 도서 약 12만 권을 위탁 판매한다. 서점의 선정과 배치를 존중한다. 헌책방 문화를 있는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서다.

헌책방은 단순히 오래된 책을 사고파는 장소가 아니다. 누군가 남긴 흔적이 전해지는 곳이다. 구하기 어려운 책을 시중보다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도 있다. 시간 내서 들러보면 당신에게 꼭 맞는 책을 추천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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