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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수인의 만화 이야기] 어설픈 뒤집기의 씁쓸함… 이미라의 「남성해방 대작전」
DEW | 승인 1999.07.01 00:00

남자와 여자가 뒤바뀐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았을 법한 가정이다. 성적정체성(gender identity)에 대한 진지한 질문일 수도 있고, 한 번 바꿔 보면 재미있겠다는 단순한 호기심일 수도 있다. 남녀의 성별이 뒤집히면서 일어나는 소동은 흔히 코미디 영화의 소재가 되어 왔다. <스위치>나 <체인지> 등이 그렇다. 하지만 이런 영화 속에서의 뒤집기가 개인적인 차원(가까운 남녀가 1:1로 바뀌는 등)에 머물렀다면, 이미라의 만화 「남성해방 대작전」에서는 '통째로 뒤집기'를 시도한다.

주인공 '정수하'는 중3 졸업반으로 고입 연합고사에서 떨어진다. 낙심하여 '아아~ 그저 다른 세계로 사라져버리고 싶다!'고 마음속으로 외치는 순간 얼빵한 미소년 '가네샤'가 수하를 쫓아온다. 가네샤는 소년 같은 외모의 수하에게 여존남비(女尊男卑)의 나라 '파라제국'에서 남성 해방군으로 함께 싸우자는 제의를 한다. "넌 내가 이 나라에 와서 발견한 그 누구보다도 강해 보이는 남자애니까!"라는 이유로…. 파라제국은 잔인한 여자 황제 '마하 파라'와 씩씩한 여자 장군들, 그리고 예쁜 남자 노예를 탐하는 여자 호색가들이 득세하는 땅이다. 마침내 여자들의 압제에 견디다 못한 남자들이 비밀결사 '라하르시타'를 결성한다. 얼떨결에 끌려온 수하는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을 감추면서 라하르시타의 일원이 된다. 파라제국으로 건너오기 전에 수하는 '여인의 천국이라… (중략) 내가 항상 꿈꾸던 그런 세상인지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남자들은 전부 노예로 매매되고 목숨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우리 나라 조선시대보다 가혹한' 현실을 겪고 나서 마음을 바꾼다. 과연 수하와 라하르시타는 파라제국의 남성들을 해방시킬 수 있을 것인가?

「남성해방 대작전」은 서울문화사의 격주간지 『윙크』에서 연재된 뒤 단행본으로 4권까지 발간되었고, 1부의 완결 이후 연재가 중단되었다. 최근 시공사로 자리를 옮겨 5권이 출간되었는데, 2부에서는 황제의 애첩 가네샤의 어린 시절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남성 해방으로의 길은 아직 멀기만 하다(총 3부내지 4부 예정). 이 작품은 '어드벤처 코믹 로망'을 표방하고 있다. 작가는 "아주 가볍고 재미있게" 이 이야기를 구상하면서 마법과 신화가 뒤섞인 가공의 세계를 창조했다고 한다. 한편, "우리 조선시대의 여성의 수난사를 다소 우회적으로, 그러면서도 조금은 희화시켜 그린 부분도 군데군데 나타날 것이니까 그냥 우습게만 보지 말아 주기를" 당부한다(단행본 1권 작가의 말 참조).

그러나 페미니즘의 색채를 띄고 있는 듯한 이 작품은 수많은 여성 독자들에게 오히려 비난을 받았다. (독자들의 불만은 팬레터의 형식으로 작가 본인에게 직접 전달되기도 했나 보다. 당시 『윙크』에 실린 마감후기에 보면 작가가 독자들의 비난에 크게 상처 입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자 작가는 이 만화가 페미니즘을 지향하고 있는 건 결코 아니며, 그저 재미있게 보아 달라고 항변했다. 어찌 보면 이 만화에는 여성 팬들을 위한 철저한 서비스 정신이 엿보인다. 경국지색(傾國之色) 가네샤를 비롯하여 무수히 등장하는 속칭 '꽃미남(중성적인 미모를 지닌 남자들을 가리키는 속어)'들이 화려한 눈요깃감을 제공한다. 그러나 독자들은 이러한 뒤집기에서 뭔가 씁쓸함을 느낀다.

가상의 아마존 왕국 파라제국은 고대 그리스나 로마 시대로 퇴보한 듯한 문화를 보유하고 있다. 황제는 독재자에다 잔혹하기 그지없고, 남자들은 고대의 노예처럼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한다. 이 세계를 뒤집으면서 그 성적 불평등의 강도를 한층 높인 것이다. 이성이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포악한 여성들 밑에서 신음하는 불쌍한 남성들을 빨리 해방시켜주자고 나설 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득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이유는 "도대체. 왜.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당하고만. 사는가?"에 대한 이유 제시가 미비하기 때문이다. 치밀한 구성에 근거한 납득할 만한 설정이 아니라, 다 생략하고 뛰어넘어서 '이 나라는 원래 이렇다'로 시작한다. 문득 어렸을 때 본 코미디가 생각난다. 결혼식장에서 남녀의 역할이 뒤바뀌어서 먼저 웨딩드레스를 입은 '씩씩한' 신부가 '당당하게' 입장하면, 부케를 든 '다소곳한' 신랑이 '수줍어하며' 뒤를 따랐다. 실소를 자아낼 수밖에 없는 설정이다. 이런 식의 뒤집기는 어색할 따름이다. 이미라의 작품을 보면 당시의 어색함이 살아난다.

「남성해방 대작전」은 현실보다 과장된 화법을 이용한다. 20세기의 여성들은 적어도 이 작품 속의 남성들보다는 나은 위치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여성들의 '떵떵거림'에 통쾌해 하다가도 어느새 '기죽어 사는' 남성들에게 동병상련을 느낀다. 그들의 비참한 현실이 일상 속에서 체감하는 작은 억눌림들이 계속해서 쌓여온 무게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쉬움이 남는다. 왜 여성이 다스리는 세상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진 못할까? 지배적인 성만 여성으로 바뀌었을 뿐 파라제국은 현실세계의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기왕이면 여성이 다스려서 뭔가 나아진 세상을 그릴 순 없었을까? 한 개인의 창작품에서 잘못된 현실에 대한 대안을 요구하는 것은 억지일 지도 모르지만….

비슷한 설정으로 쓰여진 게르드 브라튼베르그의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은 좋은 비교대상이 될 것이다. 이 책은 급진적 여성주의(Radical Feminism)의 맥락에서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 성 차이에 대한 통설을 뒤집는다. 여성이 지배세력인 이갈리아에서는 출산의 가치가 드높여지고, 자연에 천착한 농업이나 어업이 주된 산업이다. 원래 여성(woman)이라는 단어에서 'wo'는 '아니다'를 의미한다. 즉, 여성은 '남성이 아닌 존재'로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은 '움(wom)'과 '맨움(manwom)'을 설정해 놓았다. 그래서 남성(맨움)들이 여성(움)의 부산물이 되어 버린다. 말장난으로 치부될 수도 있겠지만 이 세계가 사소한 것들까지 얼마나 남성 위주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반면 남편과 아들에게 권위적으로 군림하는 여성의 모습에서는 「남성해방 대작전」과 같은 씁쓸함이 여전히 묻어난다.

로라 멀비는 「시각적 쾌락과 내러티브 영화」에서 대중영화에 나타나는 '남성적 응시 male gaze'에 주목한다. 남성 관객은, 남성 감독(카메라)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를 보면서 자아형성을 만족시키기 위해 남성 주인공(주목하는 자)에 자신의 응시를 고정시키며, 성적 충동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그 남자 주인공을 통해서 여주인공을 향한 응시(에로틱한 시선)를 고정시킨다는 것이다. 이를 뒤집으면 '여성적 응시 female gaze'로 인한 시각적인 쾌락 역시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대중매체에서 페미니즘을 구현하려면 시각 자체의 뒤집기가 선행되어야 한다. (조디 포스터의 「피고인」을 보면 주인공이 강간당하는 순간 카메라가 뒤집히면서 '위에 올라탄' 남성들의 야비한 표정을 쫓는다. 다른 영화들이 강간 장면에서조차 벌거벗은 여체를 탐하는 데 비해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만화에서의 시선 뒤집기는 과연 가능한 것인가? 이미라의 「남성해방 대작전」은 이른바 '순정만화'에 속한다. 순정만화(적절한 명칭은 아니지만 일단 대중적으로 통용되는 개념이기 때문에 사용한다)는 대개 '여성의,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만화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순정만화 = 페미니즘 만화는 아니다. 주로 여성이 그리고 여성이 읽는 만화에서조차 남성적 응시가 포착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공유하는 만화문화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여성스러움(feminity)보다 여성주의(feminism)를 천명하는 만화의 탄생을 기다려봄직 하다. 「남성해방 대작전」에 대한 실망은 지나치게 앞서간 독자들의 의식과 현실 사이의 간극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장편 환타지 「남성해방 대작전」은 이제 막 1부가 마무리된 상태이다. 사실 몇몇 억지스러운 설정에만 눈을 질끈 감으면 만화 자체가 주는 재미는 쏠쏠하다. 여중고생들에게 큰 인기를 끄는 요인인 '꽃미남 퍼레이드'와 신화적인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험, 뒤바뀐 남녀의 역할에서 오는 황당함(예쁘게 콧수염을 기르고 아기를 돌보는 남자 등), 양념처럼 등장하는 남녀간의 사랑…. 게다가 현실보다 우월한 입장에서 남자들을 내려다보는데서 오는 카타르시스도 어느 정도 즐겨볼 만하다. 아직 결말까지 절반 이상이 남아 있는 이 작품이 과연 어떠한 마무리를 보여줄 것인가? 작품이 진행되는 동안 제기된 여성 독자들의 항의는 어떤 식으로 반영될 것인가? 중견작가 이미라의 역량에 기대를 걸어보고 싶다.

노수인 moongsil@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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