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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집회 3개월 취재기 ③ 여성
최다은·강수련 기자 | 승인 2019.06.02 20:36

 

행렬 근처를 서성이니까 누군가 말을 걸었다. 취재팀이 머뭇거리자 해치지 않는다며 웃었다. 40대 여성 두 명이었다. 마스크와 모자, 선글라스. 조카처럼 친근하게 대했다.

두 사람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네이버 카페를 통해 서로를 알고 집회에서 함께 다닌다. 이전에 친분이 없었지만 같은 생각을 공유한다는 이유로 연대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더 많은 여성 참가자에게 말을 걸었다. 누구는 응했고, 누구는 무시했다. 일민미술관 앞에서 만난 여성 3명은 기자가 다가가자 일행이 온다며 자리를 떠났다.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취재팀은 이렇게 3개월 동안 여성 참가자 30명 정도와 길고 짧은 대화를 나눴다.

동화면세점 앞, 짙은 선글라스 여성이 음료를 컵에 담아 나눠줬다. 김여원 씨(62). 태극기 집회의 스태프로 3년째 활동한다. 사람들이 무시하거나 훼방을 놓으면 힘들다고 했다.
 
김 씨는 유튜버라며 허락 없이 촬영하거나 시비를 거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집회 나오는걸)돈 받고 한다는 말이 제일 억울해.” 그는 자발적 후원자가 있을 뿐이며, 참가자 모두가 자비로 나온다고 강조했다.

일파만파애국자총연합(이하 일파만파)은 보수모임이다. 대한애국당, 6·25 유공자모임과 같은 정당 또는 특정 단체가 아니라 일반시민이 만들었다. 여성만 있는 카카오톡 단체방이 150여 개라고 했다. 가입요청을 받았지만 신상을 밝혀야 하므로 부담을 느껴 거절했다. 

▲ 일파만파의 카카오톡 단체방

“우리보고 꼰대니 틀딱이니 하는 거 알고 있어요.” 일파만파의 여성대표이자 사무총장 박도이 씨(67)는 부정적인 시선에도 동력을 잃지 않으려고 계속 집회를 한다고 말했다.

큰 변화를 기대하지 않지만 집권세력에게 견제의 목소리를 내겠다고 했다. 3년째 한주도 거르지 않고 나온다. 단체의 살림살이 전반을 담당하는데 가족도 뜻을 함께 한다고 했다.
 
누군가는 홀로, 누군가는 함께였다. 남편을 오래전 떠나보낸 김 모 씨(82)는 집회장 바깥에 혼자 서 있었다. 이북 출신으로 6·25 전쟁을 겪었다.

반공의식이 투철해서인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이 모두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전쟁을 안 겪어봐서 애들은 아무것도 몰라.” 그의 생각에 자녀들이 공감하지 못해 갈등이 잦다고 한다.

혼자였지만 적극 참여하고 대화하려는 여성도 있었다. 신 모 씨(63)가 그랬다. 집회를 위해 새벽부터 부산에서 올라왔다. 자기 몸의 2배는 되어 보이는 대형 태극기를 흔들었다. 지나가는 참가자와 대화하기도 했다.

취재팀 질문에도 적극적으로 대답했다. “사회가 어려우니까 20대 젊은이들은 자기 살길 찾기 너무 바빠. 세상일에 관심 둘 틈을 안 줘. 정치를 잘해야 하는데….”
 
교육계에 있어서인지 젊은이들과의 소통에 능숙했다. 대화중에 다른 할아버지들이 끼어들자 일침을 가했다. “저러니까 애들이 싫어하는 거야. 궁금해 하면 그때 알려주면 되지.”

조 모 씨와 정 모 씨는 종로구 조계종 방면으로 향하는 행진대열에 있었다. 50대였다. 집회에서 몇 번 만나 취재팀과 자연스럽게 얼굴을 익혔다. 조 씨는 특별히 지지하는 당이 없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나라가 잘못되는 것 같아 나온다고 했다.
 
“저는 박근혜 대통령을 싫어하는 편이었죠. 그런데 내란죄나 외환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대통령을 탄핵한 건 아니라고 봐요.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을 선출한 건 아니잖아요. 법치가 무너졌다는 것에 개탄해서 나온 거에요!”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부당하다고 했다. “법이 대통령도 맘대로 갖고 놀면 우리 같은 일개 시민들은 그냥 장난감이라는 얘기거든요?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들은 대통령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법치라는 기본과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여성 참가자 모습

일파만파 집회장 부스 앞에서 오이화 씨(60)를 만났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적극 반대했던 ‘엄마부대’다. 인천의 어린이집 원장이었는데 보육지원에 박했던 박근혜 정부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탄핵과정에서 언론을 보며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지난해부터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집회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한다. 주말에는 광화문에서, 평일에는 언론사와 검찰을 찾아다니며 항의집회를 한다고 했다. “남편은 이제 그만 좀 하라고 해요. 그래도 나라는 굴러간다고 말하는데, 그것 때문에 많이 싸워요.”
 
일부는 가족과 함께 나왔다. 집회를 보던 20대 남성에게 말을 붙이려는데 어머니 이인아 씨가 나타났다. 취재를 요청하자 “워마드(여성 커뮤니티)에서 활동하거나 여성인권에 관심 있는 거냐”며 의심했다. 아니라고 하자 자신에게 연락하라며 번호를 남기고 떠났다.
 
정필순 씨는 60대 여성으로 동네친구와 6개월째 참가했다. 학생 때부터 정치에 관심이 많아서 1년 전까지 두세 가지 신문을 구독했다. 지금은 모두 끊었다. 편파적인 보도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제는 자신이 구독하는 유튜브 채널에 후원한다고 했다. 

▲ 일파만파 집회장

전국우파시민연합의 오 모 씨(50대)는 하얀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하얀 모자를 썼다. 동화면세점 앞 사거리 신호등에서 구호를 외쳤다. “우리는 극우 아니에요. 우리가 할복하기를 하나요. 좌파에서 우리를 매도하기 위해서 프레임을 씌운 거예요.”

그는 대한애국당 창당부터 함께하다가 탈당했다. 자율적으로 집회를 하고 회계 투명성도 보장된 일파만파가 가장 자유롭다고 했다.

대화를 나누다가 수도권만이 아니라 부산과 대구에서 참가자가 올라왔음을 알았다. 이들은 해외에서도 뜻을 함께하는 이들이 있다고 했다

여성들은 자기 생각을 말하면서도 신분을 밝히는 걸 꺼렸다. 특히 취재 초기에는 실명을 알려주는 이가 거의 없었다. 언론에 대한 불신 때문인 듯했다. 일파만파 부스에서 실무를 담당하던 김여원 씨는 세 번째 만났을 때야 실명을 알려줬다. “제대로 좀 써줘.”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한 얼굴이 늘었다. 집회에 자주 나오는 노래에 익숙해졌을 때, 취재 역시 비교적 수월해졌다. 저널리즘스쿨 학생이라고 소개하면 “아~ 이화여대에서 나왔다고? 알지. 뭐가 궁금해?”라며 다가오는 사람이 생겼다.
 
처음에는 경계하다가 3개월째 취재한다니까 대화에 응하기도 했다. 강복종수 씨(71)가 그랬다. 광화문역 6번 출구 난간에다 천으로 리본을 묶을 때 말을 걸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애국하는 이야기 쓸 거 아니면 묻지도 마요.”

리본은 반공과 자유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겨울부터 계속 취재했다고 말하자 시선을 옮겼다. 목소리는 약간 격앙됐다. “대한민국 지키려고! (나와요) 우리 선조들이 목숨 바쳐 지킨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잘 먹고 잘살았는데 지금 문재인이가 빨갱이한테 못 넘겨줘서 환장하잖아.”

그는 평일에도 중요한 시위가 있으면 모두 참여하는 편이다. 자신들을 장기간 취재했다는 데 신뢰를 느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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