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3종 멀티 릴레이가 벌어질 '록 스톡 앤 투 스모킹 배럴스(이하 LS&TSB)' 운동장. 중계차 나와라 오버. 네, 이 곳에서는 대마초, 현금, 고가의 장총 등 세 종류의 바톤을 놓고 총 8개 참가팀이 치열한 경합을 벌일 예정입니다.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되는 이 릴레이에서 최종 승리는 마지막까지 바톤을 쥔 주자에게 돌아간다고 합니다.

먼저 출전팀들 각각의 표정이 궁금한데, 한 번 불러 볼까요? 엔트리 넘버∼

No.1 쌍도끼 해리와 심복 배리 
도박은 사기일 망정 도박 빚은 처절하게 받아낸다.
요즘 군침 흘리고 있는 것? 에디 부친의 Bar와 골동품 장총 두 정.
☞청춘도 아닌 것이 자기가 놓은 덫에 자기가 걸린다.

No.2 에디, 톰, 소우프, 베이컨 사총사 
까딱하다가 손가락이 날아간다고 생각하면 아찔하지만 사시미 칼과 구식 장총으로 무장하니 '저수지의 개들'도 안 무섭다.
☞어쨌거나 본 릴레이의 주전 선수들.

No.3 Dog와 졸'개'들
자, 현금이 어디 있지? 안 불면 수단과 방법 안 가리고 괴롭혀 주지, 크크. 옆집 놈들이라고 봐줄 줄 알고?
☞'이스트랜드 개(Eastland Dog)'인 주제에 '저수지의 개들(Reservoir Dogs)'행세한다. 이봐, 니들은 '타란티노'가 아닌 '가이 리치' 감독 영화에 출연 중이라고.

No.4 얼빵한 대마초파 
우리는 풀(대마草)을 키우는 사람들이라 마음도 여리고, 무기라고는 맞으면 따끔한 공기총뿐인데… (이렇게 많은 돈을 빼돌리는지 레이는 모를거야)
☞항상 풀에 취해 있거나 풀이 죽어서 산다.

No.5 흑인 레이와 덩치들 
이게 죽으려고! 나한테서 훔친 물건을 도로 나에게 팔려 들어?
☞웬만하면 건드리고 싶지 않은 놈들.

No.6 북부 촌뜨기 2인조 갱
어리숙해 보여도 무시는 금물! 본의 아닌 너 죽고 나 죽자의 장본인들.
☞알고 보니 해리의 고용인.

No.7 크리스 부자- 크리스와 크리스 주니어
주니어, 욕 같은 건 배우지 말라 그랬지!
사업 자금만 마련하면 맹자 어머니를 따라서 이 바닥을 얼른 떠버려야지 원.
☞역시 해리가 고용한 해결사.

No.8 장물 거래의 큰 손 '닉'
내가 무슨 짓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빠지면 진행이 안되지.
☞촌뜨기들과 톰 사이에서 장총을, 에디와 레이 사이에서 대마초를 매개해주는 기능성 인물.

그럼 준비됐나요? 레디∼땅!

-전반 레이스
먼저 <대마초 파>가, <레이>에게서 빼돌린 대마초와 그것을 판 현금을 쥐고 선두로 나섭니다. 이 때 바짝 따라 붙은 dog 일당이 과격한 태클을 시도하는군요. dog일당, 결국 바톤을 몽땅 빼앗아 달려나갑니다. 하지만 얼마 못 가서 미리 잠복해있던 <에디외 사총사>에게 딴지가 걸려 넘어지는군요. 쿠쿡. 그 와중에 튀어 오른 두개의 바톤은 모두 에디팀의 차지!

한편, 얼떨결에 세 번째 바톤인 구식 장총 두 정을 들고 뛰던 <촌뜨기 2인조>가 게임 규칙도 모르고 돈 몇 푼에 바톤을 <닉>에게 넘깁니다. 역시 뭘 모르는 닉은 장총을 단돈 700달러로 <에디 팀>에게 바톤 터치! 바톤 세 개를 모두 차지한 에디팀의 환호성에 귀가 따끔따끔!

-후반 레이스
그 동안 원기를 회복한 dog 일당이 방심하고 있던 에디팀의 바톤들을 몽땅 회수해서 다시 선두로 나서는군요. 그러나 회심의 미소도 잠시 뿐. 갑자기 들이닥친 <흑인 레이팀>과의 총격전으로 양팀 모두 전멸되면서 사이 좋게 탈락해 버리네요! 결국 첫 번째 바톤 '대마초'는 그것을 직접 키워낸 대마초 파에게 어부지리로 돌아가네요.

한편, 간신히 혼자 살아남은 dog는 '현금'과 '장총'을 지닌 채 외로운 선두자리를 지키려고 마지막 스퍼트를 내지만, 준비된 해결사 크리스에게 몽땅 빼앗기고 마는군요. 크리스는 다시 그것을 온전히 의뢰인 해리에게 바톤 터치! 그런데 지금까지 부지런히 장총을 쫓아 해리의 가게까지 온 <2인조 갱>이 고용인도 못 알아보고 목숨을 건 거사를 감행합니다! 쌍도끼 대 쌍권총의 대결. 결과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시체만 가득한 해리의 가게를 찾아온 에디와 톰은 현금이 든 가방과 장총을 들고 유유히 빠져나가려 하지만…

그럼 최후의 승자는?

두 시간 가까이 펼쳐진 이 릴레이의 결말은 말로는 설명하기 힘들거니와 하고 싶지도 않다. 두 번 봐도 후회하지 않을 정도이니 직접 확인하시길!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난 원인을 떠올려 보는 것도 결말을 예측해 볼 수 있는 한가지 힌트! 영화의 도입부 내내 소개한 20명이 넘는 인물들은 마치 릴레이 경기처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건들을 벌이고 또 다시 수습하기 위해 좌충우돌 천방지축. 언뜻 산만해 보이는 스토리 라인이 실제로는 치밀하게 짜인 순환 플롯이라던데. 끝을 보지 않고는 절대 극장 문을 못 나서게 만드는 강력한 매력과 재미가 물오른 황도의 달콤함처럼 배어 있다.

이번엔 플롯을 빼고 보자!

E여대 행사의 일환으로 열린 시사회에서 보름 먼저 <LS&TSB>와 만난 내가 줄거리를 초월해서 관람할 수 있었던(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이유인즉, 무지막지한 '무자막' 상영!

외국인 관객의 얄미운 웃음소리가 터져 나올 때마다 심란함을 느꼈지만, 영국식 영어로 읊조리는 랩을 배경음악 삼아 특유의 영상미와 음악을 즐겼던 영화라고 한다면? 특히,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인물이 직접 겪고 느끼는 세계를 생생하게 표현한 부분이 인상적으로 남는다. 시간의 흐름조차 엿가락처럼 휘고 자르며 왜곡하는 현란한 카메라 워크. 마약 중독자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을 그린 <트레인스포팅>이 떠오른다. <LS&TSB>에서 도박으로 빚까지 진 에디를 둘러싸고 모든 화면들은 일제히 덜컹거리며 흔들리지만 실제로 비틀거리는 것은 에디 하나뿐. 등장인물이 바짝 긴장해서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는 순간에는 영화 속 모든 소리도 일순 잠잠해지며 꿀꺽하는 관객의 침 넘기는 소리만 극장에 울린다.

 김재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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