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 지식과 지혜
지식과 지혜 <58> 평화연구소 콜로키움
김희량 기자 | 승인 2019.05.26 23:02

 

주최=한양대 평화연구소 콜로키움
주제=현대 일본과 어두운 유산 만들기: 전쟁유적보존운동을 중심으로
일시=2019년 5월 23일(목) 오후 4시
장소=한양대 사회과학관 415호
발표=한정선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질의=홍용표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일본인은 전쟁유적을 어떻게 보존할까. 한양대 평화연구소가 5월 26일 주최한 제73차 콜로키움에서 한정선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가 ‘현대 일본과 어두운 유산 만들기’를 주제로 발표했다. 한 교수는 일본 현대사 분야의 역사학자다.

‘어두운 유산’은 한 교수의 연구용어다. 의도적으로 야기된 고통 또는 죽음과 연관된 유적을 의미한다. 많은 경우 전쟁유적을 일컫는다.

일본에서는 전쟁유족보존네트워크가 1997년 생겼다. 전쟁체험 세대가 사라지는 상황에서 유적을 보존하기 위해서였다. 전쟁유적을 문화재로 지정받게 하려는 목표를 세웠다.
 
한 교수는 도쿄의 이치가야 박물관 보존에 관한 기사를 읽으면서 연구를 시작했다. 이곳은 1930년대 육군사관학교 본부로 사용되며 ‘1호관’으로 불렸다.

아시아태평양전쟁 중에는 대본영이라는, 전쟁수행의 중추기관이었다. 패전 이후에 책임을 묻는 도쿄재판(극동국제군사재판)이 열렸다. 보존목소리가 1990년대 후반, 좌우익에서 나왔다.

진보단체인 ‘시민의 모임’은 일본의 침략전쟁을 증명하는 장소이므로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전군인 중심의 우익단체는 전통과 애국심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이유는 달랐으나 보존하자는 입장은 일치했다. 정부는 보존하기로 한다.

▲ 평화연구소 제73차 콜로키움 모습(출처=한양대 평화연구소)

또 다른 어두운 유산은 지하호다. 일본은 본토가 공습당하자 1944년 지하호를 만든다. 그중 하나가 나가노현 마츠시로 지하호다. 면적이 33,000m² 규모로 천황피신 용도로도 사용됐다.

학생과 교사들이 1986년 방과 후 활동으로 지역사를 공부하다 지하호를 알게 됐다. 건설주체와 목적을 추적하다가 강제동원 문제도 알게 됐다. 학생들이 조사에 나서고 인터뷰를 한 뒤에 문화재로 인정해달라고 나가노현에 요청했다. 아직까지 등록되지는 못했다.
  
다른 하나는 조선인 희생자를 추모하자는 운동이다. 군인출신의 일본인이 ‘가해자로서의 죗값을 치루기 위해’ 주도했다. 어디서, 누가, 어떻게 동원됐는지를 조사했지만 1명밖에 파악이 안 됐다. 추모비가 생겼는데 설립모금 일부를 당시 지하호 건설회사로부터 받아 논란이 됐다.
 
한 교수는 이런 운동이 가능했던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선 지역 내 유적이 존재했다. 시민들이 가해자로서의 일본에 대한 인식을 공유했다. 열린 지역사회, 교육과 재일조선인의 노력이 있었다.”

지금은 이런 노력이 쇠퇴하는 중이다. 한 교수는 차세대 활동가 양성실패, 일본에서 노동운동의 전반적인 약세화, 재일조선인 사회의 분화를 원인으로 꼽았다. 이어 유적보존 운동을 지속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했다.

“피해자의 증언과 활동이 이어져야 한다. 경직된 한일 관계가 힘든 점이지만 시민사회 차원에서의 국제연대가 필요하다.”

이날 참석한 홍용표 한양대 교수는 “가해자, 피해자로서의 담론 이외에 일본국민이 국가에 의한 피해자라는 담론이 있는지 궁금하다”고 질의했다.
  
한 교수에 따르면 승리할 수 없는 전쟁에 속임을 당했다는 생각이 일본인에게 있다고 한다. 일본 민간인도 전쟁에 동원됐다. 공습을 당한 오카야마, 원폭피해를 입은 히로시마 등에 피해의식이 있다.

피해자 의식이 전쟁유적의 등재로 이어지기도 했다. 오키나와 하에바루 육군병원 지하호가 그렇다. 일본에서는 전쟁을 기억하는 구술사 운동이 1970년대 민간중심으로 전개됐다.

국가를 지키기 위해 오키나와인들이 마지막까지 싸웠다는 게 일본의 국가중심 서술이었다. 오키나와인들은 “사실이 아니다. 마지막까지 국가는 우리를 희생시켰고 고통을 줬다”며 저항했다.

이런 연장선에서 지하호를 기억하자는 활동이 이어졌다. 결국 하에바로 지하호는 전쟁유적이면서 지방정부가 문화재로 등재한 첫 사례가 됐다.
 
마무리 발언에서 한 교수는 “일본에서 다양한 사회운동이 일어나는데 경직된 한일관계로 인해 일부만 한국사회에 전달된다. 이 움직임이 어떤 배경에서 발생하는지를 냉철하게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11-1 이화여자대학교  |  대표전화 : 02-3277-2267  |  팩스 : 02-3277-2908
발행인·편집인 : 이재경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경
Copyright © 2013~2019 스토리오브서울.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