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이솝 우화 한 토막.
소들이 모여서 회의를 했다. 백정을 죽이자는 것이다. 모두 날카롭게 뿔을 갈고 그를 죽이려는데 늙은 소가 말한다. "그를 죽인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는 우리를 아프지 않게 죽이는 기술자다. 그를 죽이면 어떤 서투른 놈이 다시 우리를 잡게 되고 그 때에 우리는 더 고통스럽게 죽어야 한다. 사람들이 쇠고기 먹는 습관을 고쳐야지 백정 한 사람 죽인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이 우화를 들었을 때 우리가 늙은 소와 관련해 탄복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점에서다. 첫째는 현상의 본질을 날카롭게 통찰하는 식견. 둘째는 설득 방식이다. 늙은 소는 그들의 생활과 사건이 어떤 연계를 가지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설득에 성공한다. 다시 말해 자신의 주장을 상대방의 머리 속에 그려줌으로써 삶에 연결되는 결론의 고리를 찾아주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남민전 사건을 기억하는가? '북괴의 적화 통일 혁명 노선에 따라... 대한민국을 전복하고 사회주의 국가건설을 꾀했던 반국가 단체' (79년 10월 10일자 조선일보 1면)인 이른바 남조선 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 사건. 당시 76명의 대학생, 전직 언론인, 대학교수, 회사원 등이 연루된 사상 최대규모의 무장간첩조직 사건이었다. 이 때 '조직원 1명을... 북괴에 보냈고 1명을 유럽에 파견하는 등 해외활동을 벌여왔던...' (79년 10월 17일자 조선일보 14면)것으로 알려진 이 간첩사건에서 유럽에 파견되었던 그 조직원(그들 말에 의하면)이 지난 6월 14일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홍세화.
그는 위험한 인물이다. 단순히 그의 경력 때문만은 아니다. 얼마 전 모 시사잡지와의 인터뷰에서 "기회가 주어지면 사회주의 운동을 다시 하고 싶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런 의심은 그의 신간「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를 읽으면서 더 확실해진다.

그는 책의 서문에서 한국사회를 '온통 탁류가 흐르고 있는 사회'로 규정한다. 술자리에서처럼 프랑스의 이모저모를 그야말로 들을 맛나게 서술한다. 글을 읽다 보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탁류가 흐르는 한국 사회의 모습에도 눈을 뜨게 된다. 예를 들어보자.

그는 '사회 정의는 질서에 우선한다'는 명제를 끄집어내며 95년 파리에서 있었던 공공부문 총파업을 언급한다. 당시 파리의 시민들은 그것을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방어적 파업'으로 보고 노조를 지지했다. 2주가 넘도록 공공 교통이 마비된 상황을 파리 시민들은 견디어 낸다. '지금 불편하다고 파업에 반대한다면 그 반대의 목소리가 자신한테도 돌아온다는 것'을 그들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상반기에 있었던 한국의 '지하철 노조 파업' 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 사회를 통해 본 한국은 '국가 경쟁력이 사회 정의보다 우선시되는' 사회라는 그의 지적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결국 그는 문화 비평에세이를 통해 한국 사회를 꿰뚫어 보는 시선을 우리에게도 전가시키고 있는 것이다. 딱딱한 사설이나 직설적인 주장이 아니라서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다.

이쯤 되면 우리는 그의 사상을 검증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자신을 '감성적인 사회주의자'라고 얘기하는 것 외에 '똘레랑스'라는 프랑스적 가치관을 자주 말한다. '똘레랑스'를 이해하기 위해선 4년 전 출간된 또 다른 책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를 읽어보면 된다.
 
똘레랑스란 첫째로,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의 정치적 ·종교적 의견의 자유에 대한 존중'을 뜻합니다. … '당신의 정치적 ·종교적 신념과 행동이 존중받기를 바란다면 우선 남의 정치적·종교적 신념과 행동을 존중하라' 바로 이것이 똘레랑스의 출발점입니다. 따라서 똘레랑스는 당신의 생각과 행동만이 옳다는 독선의 논리로부터 스스로 벗어나길 요구하고, 당신의 정치적 이념이나 종교적 믿음을 남에게 강제하는 행위를 반대합니다.

그는 한국 사회의 경직성을 똘레랑스에 빗대어 꼬집는다. 이 경직성과 배타성이야말로 20년 전 그가 망명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오늘날 학생운동이 위기를 맞게 된 이유도 우리 사회의 '레드 컴플렉스'와 같은 엥똘레랑스적 가치관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것을 극복하지 않고는 실은 아무 것도 이루어낼 수 없다는 점을 그는 간파하고 있다.     

그가 시도하고 있는 가치관의 변혁으로부터 시작하는 운동은 늙은 소의 지혜를 연상시킨다.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과 설득방식을 그는 둘 다 갖추고 있다. 그런 그가 20년간 보았던 '한국 사회라는 숲' 안으로 들어왔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면 지나친 기대일까? 홍세화가 위험한 것은 그가 지식이 아닌 지혜를 갖춘 인물이라는 데 있다.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갔다가 오히려 잡아 먹히는 운동가들, 지식인들을 우리는 숱하게 보아 왔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우리네 옛말이 그를 통해 검증되기를 기대한다. 이 땅의 호랑이들은 위험한 그를 주의하라. 그는 이미 먼저 띄워 보낸 두 권의 책을 통해 젊은 소들을 설득했으니 말이다.    
           

김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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