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만화 주인공처럼 생겼다.”
순간 당황스럽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나? 칭찬인지 욕인지 언뜻 구분이 가질 않는다. 하지만 금새 웃고 만다. 레이면 어떻고 영심이면 어떤가?

우리는 꿈꾼다. 만화 속 인생을.
한번쯤은 밤을 잊은 채 만화책을 읽어 본 경험이 있다. 만화 주인공과 사랑에 빠져 보기도 한다. 환상에 대한 동경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화의 세계는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만화 주인공, 그들의 삶에도 희로애락이 녹아있고 선악이 공존한다.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누구나 만화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제일화재 손해 사정팀 소속의 이용태(27)씨. 그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 그는 보험금이 청구된 사안을 심사하여 보험금 지급 여부를 결정하는 일을 맡고 있다. 보험 조사원인 셈이다. 보험 조사원이라…. 마스터 키튼이 생각났다.

히라가 키튼. 영국 특수부대 교관 출신으로 고고학 연구가 인생의 목표인 대학 강사. 생존술과 고고학 두 전공을 살려 보험 조사원으로 활동 중. 키튼에게 보험 조사원이라는 직업은 고고학 연구비를 마련하기 위한 아르바이트일 뿐이다. 하지만 그는 천부적인 능력을 발휘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잃지 않는 여유와 자신감, 뛰어난 추리와 판단력, 민첩한 행동으로 보험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 키튼.

물론 이용태씨는 키튼 선생이 아니다. 그는 평범하다. 그의 평범함이 바로 만화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조건이다. 우리는 그 평범한 일상 속에서 울고 웃기 때문이다.

국문학을 전공한 이용태씨가 재일화재에 입사해 일을 배운지 1년 째 되던 무렵, 그는 한 통의 우편물을 받았다. 지난 1월 12일의 일이었다. 그 우편물은 손가락 상해를 입은 김동선(가명·42)씨의 보험금 청구 서류였다. 서류를 보낸 대전 지점은 그에게 이 청구 사례에 대한 조사를 의뢰했다.

1998년 8월 25일, 서울로 출장을 가고자 경부고속도로에 진입하여 옥천 휴게소에 들렀을 때 도움을 청하는 30대 여자의 차를 고쳐주었다. 고맙다는 답례로 술을 사겠다고 해 대전의 어느 술집에서 함께 술을 마시다 의식을 잃었다. 의식을 찾았을 때는 다음날인 26일 새벽 3시 경이었고 술집 부근의 길가에 버려져 있었다. 왼손의 손가락 4개가 잘린 채였다. 그리고 대전에 사는 안기석(가명)에게 연락해 그의 도움을 받아 병원으로 갔다.

사고 진술서를 읽던 이용태씨. 그는 어느새 신문지면을 요란하게 장식했던 문구를 떠올리고 있었다. '생계형 보험금 자작극'. 아버지가 아들의 손가락을 자른 사건, 슈퍼마켓 주인의 발목 절단 사건 등 보험금을 노린 일련의 사기 사건들이 이미 세상을 한바탕 떠들썩하게 한 뒤였다.

김씨가 보험금을 청구한 날짜를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98년 12월 9일. 사고를 당한지 4개월 가량이 지난 뒤였다. 역시나 싶었다. 다른 보험 회사에 김씨의 보험가입 여부를 문의했다.  그가 98년 4월 한 달 동안 가입한 보험만 8개. 삼성화재, 동부화재, 대한생명 등 모두 11개 보험사와 보험 계약이 체결되어 있었고 그가 지급 받을 보험금은 11억 1천여만원에 달했다.
 
보험 사기를 노리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사고가 발생한 후 수개월이 지나서야 보험 회사에 사고 사실을 통보한다. 많은 보험 계약을 맺고 있는 것 또한 그들의 특징이다.

김씨가 보험금을 노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은 확신으로 더욱 굳어졌다. 본격적인 조사에 나섰다. 김씨에 대한 조사를 하던 중 그가 97년 9월 재래농산사업을 부도내 현재 1억 8천여만원의 채무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가 병역을 면제 받았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무엇보다 김씨 본인에게 정확한 사고 경위를 들어야 했다. 1월 14일 충북 옥천에 있는 김씨의 자택을 방문했다. 김씨가 운영하는 재래 농산물 가공 공장 옆의 2층짜리 가건물. 그가 살고 있는 집이었다. 한눈에도 어려운 살림이었다. 그의 부인과 아직 어린 세 아이가 살고 있는 가건물 내부에는 냉기가 감돌고 있었다. 왼손을 붕대로 감고 있던 김씨는 42살의 나이에 비해 젊어 보였다. 길게 늘어뜨린 꽁지머리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모르겠는데요." "기억나지 않습니다." 대화 내내 그는 정확한 답변을 회피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김씨에게선 더 이상 얻을 것이 없었다.

다음날인 1월 15일, 김씨가 사고 당일 치료를 받았다던 대전 을지 병원을 찾아갔다. "8월 26일에 김동선씨가 왼쪽 4, 5번째 손가락이 잘려 응급실을 찾아왔었습니다. 나머지 2개는 과거에 이미 절단된 상태였구요." 담당 의사의 설명이었다. 병역 면제. 김씨가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불현듯 떠올랐다. 당장 병무청으로 달려갔다. 과거에 잘렸다는 2개의 손가락이 병역 면제의 사유였을지도 몰랐다. 병역 기록부를 살펴본 결과 병역 사유는 손가락 절단 때문이 아닌 전과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그 2개의 손가락은 언제 잘린 것인가? 옥천지구의 의료보험 조합을 방문했다. 김씨의 진료내역을 알기 위해서였다. 97년 7월 21일 손가락 압궤 손상(청산서울의원),  97년 7월 29일 좌측 2수지 끝부분 절단 치료(대전연합정형외과). 손가락 부상으로 인한 수 차례의 진료 기록이 그의 손가락 장애는 97년부터 시작되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97년 8월 김씨를 치료했던 옥천의 녹십자 의원에서 당시의 X-Ray 사진을 통해 왼손의 2, 3번째 손가락의 이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98년 7월경 김동선의 가족과 놀러 간 일이 있었는데 그 당시 그의 손은 정상이었다"는 안기석 -사고 당일 김씨를 병원에 데려다 주었다는-씨의 증언은 거짓임이 확실해졌다.

하지만 더 이상의 조사는 불가능해졌다. 김씨가 관계 기관에 보험사의 조사에 협조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증명을 발송했기 때문이었다. 많은 사실이 밝혀지긴 했지만 뚜렷한 물적 증거가 없는 상태였다. 보험 조사원에게는 수사권이 없었다. 마지막 방법으로 2월 5일 충북 옥천 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다. 그 때부터 경찰과의 합동 조사가 시작됐다.

그 후 4월 14일 모 일간지에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손가락 절단 40대, 보험금 노린 자작극 자백」

이 기사를 접한 이용태씨는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신문기사를 읽는 그의 표정을 그려본다.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내고는 조용히 돌아서는 키튼의 뒷모습이 먼저 떠올랐다. 그 뒷모습에서 사건을 해결한 후련함 보다는 안타까움을 느꼈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손가락 쯤은 아깝지 않다. 돈이라면 목숨과도 바꿀 수 있다. 벼랑 끝에 몰린 이 시대 가장들의 잘못된 선택. 씁쓸하다. 하지만 분명 그들의 행동이 동정으로 미화될 일은 아니다. 보험 사기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범죄 행위다. 보험 사기로 인해 발생하는 보험사의 피해는 선의의 가입자들이 떠맡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험금을 타기 위해 목숨까지 버리는 그들을 향해 마냥 비난의 목소리를 높일 수가 없다. 보험 가입자들의 자산인 회사 공금을 빼돌려 로비자금을 마련하고 해외에서 경비행기까지 몰며 호화생활을 한다는 D생명보험의 최 회장님이 계신데야.

아! 김동선씨의 구속 기사를 읽는 이용태씨의 표정이 이제야 그려졌다.
"김씨의 집에 찾아갔을 때 그 부인은 남편이 다친 사실도 모르고 있었어요." 부인을 걱정 하던 그의 표정이 생각났다. 키튼과 이용태씨의 닮은 점을 꼽으라면 바로 따뜻한 마음이 아닐까?
 
마스터 키튼, 다음 호가 기대된다.

 강혜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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