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중독자는 범죄자이면서 질환자다. 언론은 누가 마약을 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 고통 받는 중독자의 삶에는 주목하지 않는 편이다.

한국일보 특별취재팀의 ‘대한민국 마약리포트-한국이 위험하다’는 중독자의 삶을 조명하고 정책전환이 필요하다는 화두를 던졌다. 왜 마약을 시작했고, 왜 끊지 못하며, 교도소 생활과 그 이후의 삶은 어떤 모습인지를 8부작 시리즈에 담았다.

▲ 한국일보 마약리포트 첫 기사(출처=한국일보)

특별취재팀은 5명이다. 강철원 팀장과 안아람 손현성 김현빈 박재현 기자. 검찰과 법원을 담당하는 법조팀이다. 그날그날 발생기사 처리에 정신없는 출입처에서 시리즈를 내기는 만만치 않다. 긴 호흡의 시간투자와 역할분담이 필요했다.

손현성 기자는 마약중독자를 만나는 등 현장취재에 집중했다. “인터뷰를 하는 데만 약 한 달을 썼다. 출입처 기자에게는 흔치 않은 일이다. 기존 보도와 차별화되는 기획을 위한 부장과 팀장의 배려가 있었다.”

박재현 기자(현 SBS)는 인천의 중독자 재활공동체에서 지내며 2주간 30여 명을 만났다. 찜질받을 같이 가고, 이삿짐센터에서 같이 일을 했다. 이런 식으로 100명에 가까운 마약 중독자와 가족, 지인을 만났다.

마약은 기자들도 생소한 분야다. 체험하기 어려워서다. 취재팀은 왜 끊기 힘든지를 알려고 중독자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다. 약물을 끊은 지 10년 된 사람, 치료 전문가, 마약을 하는 사람, 끊고 싶어 하는 사람.

마약의 세계를 가장 잘 아는 이는 중독자였다. 기자들은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중독의 실상을 전하려 했다. “추자현이 필로폰 맞아서 환각상태가 되는 연기를 잘했더라”는 말을 들으면 영화를 보는 식이다.
 
또 전국 교도소 20곳의 재소자 3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언론사로는 처음이었다. 마약류를 처음 접한 나이에서부터 출소 후 힘든 점 등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일본의 재활시설을 방문하는 등 해외취재도 다녀왔다.
 
“올해 81세 권 아무개인 나는 아비 시선에서 딸의 잃어버린 10년을 세상에 알리려 한다. 스무 살에 처음 꽂은 주황색 약 작대기(필로폰 주사기)를 서른 살까지 끼고 살며 처참하게 망가진 내 딸. 세상은 범죄자라지만 곁에서 지켜본 내 눈에는 약을 도저히 못 끊어내는 병을 앓는 환자가 분명했다. 그 얘기를 하고 싶다.”

손현성 기자는 마약 중독자와 가족의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가장 잘 전달할지를 며칠 동안 고민했다고 한다. 자극적인 이야기에서 벗어나 정책의 미흡함과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버지 시선에서 기사를 전개한 이유다.

80대 취재원 권 씨는 마약에 빠진 딸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숨어 살던 존재다. 붙잡아 놓으면 더 강하게 뛰쳐나가는 중독자의 특성 때문에 딸을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던 심정. 투약-재판-투약의 회전문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기사 마지막에는 권 씨가 취재에 응한 이유가 나온다. “누구든지 걸릴 수 있는 병이 마약 중독이다. 정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마약 의존자들이 문제가 있더라도, 편견이 없을 수는 없더라도, 사람답게 살 기회를 줬으면.”
 
독자 최남용 씨는 “참 슬픈 이야기다. 중독자들을 처벌만 할 게 아니라 재발 방지를 위해 근본적인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함께 안고 가야할 문제다”라는 의견을 남겼다.

마약투약은 범죄이지만 치료와 재활이 필요한 질환이기도 하다. 부정적 인식 때문에 치료의 필요성은 주목받지 못했다. 취재팀은 이 점을 이야기하며 취재원을 설득했다.

실명 취재는 어느 때보다 어려웠다. 재활 후 사회복귀를 희망하기에 당사자가 괜찮다고 해도 가족과 친척은 많이 반대했다.

정부가 지정한 중독치료 전문병원 중에서 제대로 역할을 하는 의료기관은 두 곳뿐이었다. 수익성과 예산문제 때문이었다.

취재팀은 마약사범 연락처가 빼곡히 적힌 노트를 입수했다. 판매자, 알선자, 교부자, 중독자 이름이 나왔다. 교도소에서 마약사범이 마약 전문가가 되고, 출소했다가 다시 중독에 빠지는 현실을 드러냈다.

▲ 특별취재팀의 기자상 수상모습(출처=한국일보 손현성 기자)

2018년 1월부터 나온 마약리포트는 이달의 기자상과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의 공로상을 받았다. 한국기자협회 심사위원회는 “마약 문제를 질병으로 인식하는 시각 전환을 시도했고, 마약 보도가 내포하기 쉬운 선정성을 잘 극복했다”고 평가했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의 이정삼 중독재활센터팀장은 “마약의 위험성을 국민에게 환기하는 역할을 했다. 동시에 중독자가 건강한 사회인으로 돌아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춰 얘기했다”고 선정배경을 밝혔다.

아쉬움을 묻자 손현성 기자는 “취재를 하면 할수록 더 깊게 들어가 보고 싶었다. 대마나 함정수사를 좀 더 다루고 싶었다”고 말했다.

마약 중독자의 재활을 돕는 단체 ‘소망을나누는사람들’의 김낭희 사무국장은 “마약중독자에 대한 관심을 키울 수 있는 기사라 좋았다. 치료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도 다뤘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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