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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와 기사 (5) TV조선, 게이트 문을 열다
김송이 기자 | 승인 2019.04.21 22:02

 

TV조선 기자들은 스스로를 ‘펭귄팀’이라고 불렀다.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기사를 처음 보도하며 언론의 ‘퍼스트 펭귄’ 역할을 했다는 의미다.
 
퍼스트 펭귄은 먹잇감과 천적이 공존하는 바다에 용기를 내서 먼저 뛰어드는 펭귄을 말한다. 팀 이름대로 TV조선은 한국 언론 중 처음으로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을 보도했다.
      
외부에서는 펭귄팀의 첫 기사를 <미르재단 500억 모금, 안종범 수석 지원>으로 본다. 그러나 펭귄팀에서는 <김종 차관, 박태환 올림픽 출전 포기 종용>을 첫 기사로 꼽는다.
 
“김종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박태환 선수의 올림픽 출전 포기를 대놓고 협박할 정도의 무소불위 힘을 갖게 된 배경에 대해 궁금증을 증폭시킨 후, 그 배후에 최순실이 있다는 것을 드러낼 목적이었다.” 이진동 전 TV조선 사회부장의 저서 <이대로 시작되었다>에 나온다.

펭귄팀은 2016년 6월 10일 처음 생겼다. 목적지는 정해진 상태였다. 최순실 씨가 박근혜 정권의 비선실세임을 시청자에게 보여주는 연결고리를 만드는 일. 단서를 찾아 범인을 특정해 나가는 통상의 기획취재와 반대다. 일종의 ‘역취재 방식’이다. 

비선실세의 존재를 이 전 부장은 2014년부터 알았다. 2008년 국회의원 출마 당시 자신의 캠프에서 일하던 이현정 씨를 통해 고영태 씨를 만나면서다.

고 씨는 “집에 어떤 여자가 들어와서 현금과 명품시계를 가져갔는데 경찰에 신고해도 덮어버릴 것”이라며 이진동 당시 사회부장을 찾았다. 고 씨가 말한 어떤 여자는 최순실 씨였다.

펭귄팀이 생기기 전까지는 이진동 당시 부장이 취재했다. 그는 고 씨의 의상실에 폐쇄회로(CC) TV를 설치하라고 했다. 최 씨와 관련된 고 씨의 말을 입증하기 위해서다.

이진동 당시 사회부장은 2개월 뒤, 고 씨를 통해 CCTV 영상을 입수했다. 최 씨가 박근혜 대통령 의상비를 자기 지갑에서 꺼내는 영상을 확보했다.

▲TV조선이 단독보도한 의상실 기사. 최순실 씨의 얼굴이 기사에 처음 나왔다. (출처=TV조선)

펭귄팀 보도는 ‘문화계 차은택 카르텔’(8월 16일) 이후에 두 달 가량 중단됐다. 의상실 영상은 JTBC가 태블릿PC를 보도한 다음날(2017년 10월 25일) 방송됐다. 추가 취재가 필요했고, 내부 압력이 있어서다. 10월 18일에야 <최순실, 미르재단 전 사무총장 회유> 기사로 이어나갔다.
   
양승목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미르‧K 스포츠재단을 보도할 때 내부 반대에도 끝까지 밀고나가 JTBC 태블릿 PC 이전에 CCTV 영상을 보도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전했다.
 
박석운 전 민주언론시민연합회 공동대표는 “물꼬를 튼 건 TV조선일지 몰라도 사건을 확장시킨 건 한겨레고, JTBC가 스모킹 건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청와대 압력으로 보도를 멈춘 건 권력에 항복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이진동 당시 사회부장은 펭귄팀 결성 직전인 2016년 5월까지 비밀리에 취재했다. 기밀자료인 대통령 해외순방 일정이 최순실 씨 손에 들어가고, 최 씨 추천으로 청와대 행정관 및 장관이 임명되고, 미르‧K 스포츠 재단의 배후에 최 씨가 있다는 기사가 나갔다.

펭귄팀이 겪은 어려움 중 하나는 관련 인물과 자료가 방대했다는 점이다. 2016년 9월, 펭귄팀에 합류한 하누리 기자(현 KBS)는 “처음 3일 동안은 관련자 기사와 기사화 되지 못한 자료를 읽으면서 내용을 파악했다. 녹취만 수 백 페이지였다”고 말했다.
 
자료를 읽으면서 주제를 정하고 보도순서를 설계했다. 초기 멤버인 서주민 기자는 “코끼리 꼬리부터 더듬어가야 했다. 우리가 보는 진실을 시청자가 느낄 수 있게 기사를 구성하는 걸 끊임없이 고민해야 했다”고 밝혔다.

부서협업은 필수였다. 의상실 CCTV 영상은 한 달 치인데 각 기자에게 일정량씩 할당했다. 이영선 행정관 같은 청와대 인물은 정치부 기자를 통해 정체를 파악했다. 영상에 나오는 박근혜  대통령의 옷이 늘품체조 영상 속의 옷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확인했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은 박영수 특검이 주요 증거자료로 활용했다. 펭귄팀이 최초로 입수한 자료다. 조사(助詞)를 제외하면 모두 한자. 현재 사용하는 한자와 다른 간체자였다. 하누리 기자가 수첩내용을 정리했지만 해석을 두고 부장들이 토론을 해야 했다.

하누리 기자는 “기자가 아닌 편집팀 직원도 과거 보도 영상 속 대통령 의상과 CCTV에 등장하는 의상을 비교하는 데 도움을 줬다. 본래 방송은 협업하는 시스템이지만 국정농단 당시에는 협업의 진수를 맛 봤다”고 회상했다.

서주민 기자는 취재의 또 다른 어려움으로 ‘나홀로 보도’를 꼽았다. “TV조선 혼자 미친 짓 하다가 끝날 거 같다는 두려움이 컸다.” 게이트의 문을 열었지만, 초기에 TV조선과 함께 보도하는 언론은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다른 언론사가 다 받아 적을 줄 알았던 김영한 비망록은 3곳만이 보도했다. 그러나 타사 기자로부터 언론 탄압과 관련한 문의가 쏟아졌다고 한다.
  

▲하누리(왼쪽) 서주민 기자가 이달의 기자상 시상식에서 사진을 찍었다. (출처= 하누리 기자)

‘나 홀로 보도’의 두려움은 경험에서 비롯됐다. 두 기자는 2013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성접대 의혹을 단독 보도해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다. 서 기자는 “타 언론이 지적하지 않고 TV조선 혼자 보도하니 검찰도 만만하게 봤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TV조선의 보도 중반부터는 대부분의 언론이 국정농단 기사를 썼다. JTBC의 태블릿 PC와 한겨레의 ‘K 스포츠 재단 이사장은 최순실의 단골 마사지 센터장’이라는 보도가 대표적이다.

최순실 게이트의 물꼬를 튼 공로를 인정받아 펭귄팀은 2016년 한국기자상 대상과 관훈언론상(권력감시 부문)을 받았다.

관훈언론상을 심사했던 양승목 서울대 교수는 “TV조선은 국정농단 사건을 최초로, 그것도 굉장히 깊게, 여러 차례 보도했다. 조선미디어그룹에 대한 청와대의 압력과 다른 언론사들이 따라오지 않던 어려운 상황 속에서 힘든 싸움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TV조선이 없었다면 최순실 게이트가 시작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누리 기자는 “정의라고하면 거창하지만, 모든 언론이 진실을 찾기 위해 다 같이 달려들었던 적이 그동안 거의 없었다. 한복판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고 회상했다.

서주민 기자도 “초기와 달리 진영에 상관없이 모든 언론이 관련 보도를 하는 것을 보며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길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하나의 사안에 대해 언론이 함께 보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양승목 교수는 “최초 보도 이후 언론이 함께 권력을 비판하지 않으면 사건은 묻히게 된다. 우리나라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도 언론이 권력에 함께 대항에 얻을 수 있던 성과”라고 했다.
  
펭귄팀은 ‘직무유기만은 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취재에 임했다고 한다. 의혹과 관련된 증거를 확보했는데, 알면서도 추가 취재와 보도를 하지 않으면 직무유기라는 말이다. 하누리 기자가 부장에게서 세뇌 당할 만큼 들었다고 한다.
  
목표는 같았지만 기자 개개인의 마음가짐은 조금씩 달랐다. 하누리 기자는 “사건의 실마리를 알게 됐을 때,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깊게 취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2013년 정윤회 문건이 보도되면서 최순실 씨의 실체를 드러내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서주민 기자는 진영논리에 치우지지 말아야 한다고 계속 생각했다. 그가 일하는 매체가 보수언론이라서 더욱 그랬다. TV조선이 저런 기사도 쓴다는 생각이 들만큼, 외부와 기자 스스로의 선입견을 항상 극복하고 싶었다고 한다.

“자유로운 탐구가 곧 과학의 목적이다. 어떤 가설이든, 그것이 아무리 이상하더라고 그 가설이 지니는 장점을 잘 따져야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생각을 억압하는 일은 종교나 정치에서는 흔히 있을지 모르겠지만, 진리를 추구하는 이들이 취할 태도는 결코 아니다.”

그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속 문구다. 칼 세이건의 말. 서 기자는 언론이 취해야 할 태도가 과학자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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