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1월, 동해에서는 50년 만에 북한으로 향하는 금강산 뱃길이 열렸다. 들뜬 감동도 잠시, 올해 6월에는 북한측에서 남한 관광객을 억류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보다 조금 앞서 북측의 도발로 벌어졌던 서해 교전 사태는 '남한측의 군사력 우위'를 확인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급작스럽게 일어나고 마무리된 이번 사건은 신문과 방송을 통해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동쪽과 서쪽에서 동시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혼란스럽다. 북한의 현실에 대해 하나의 결론을 짓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매체인,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접하게 되는 교과서에서는 북한의 모습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어떤 결론을 내리고 있을까.

초등학교 5, 6학년, 중학교 2, 3학년의 도덕책과 고등학교의 윤리책의 목적은 무엇일까. 머리말을 살펴보면 도덕 교과서는 학생들이 "도덕적으로 훌륭한 삶을 살아가는 데 요구되는 도덕적 요소들이 무엇인지를 찾고 확인(중학교)"하며 "한국인으로서 가져야 할 올바른 윤리의식과 바람직한 이념적 시각을 확립(고등학교)"하도록 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다. 각각의 단원은 인간과 윤리, 민주사회와 도덕, 윤리 사상의 흐름과 특징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대개 마지막 단원에서는 "민족의 통일 문제와 북한의 현실", "통일의 과제와 전망" 등의 제목으로 북한과 통일을 다룬다.

북한의 현실과 통일 문제가 도덕책에서 다루어진다? 북한은 도덕적이며 윤리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할 대상인가. 새삼 낯설게 느껴진다. 교육부의 교육과정 정책담당과 이우용 연구사는 "도덕은 현실적인 지식을 공부하는 사회 과목과 달리 정의적인 영역을 다룬다"고 말한다. 그러면 우리에게 북한은 실체적인 영역이 아닌, 정의적인 영역에서 다루어져야 할 문제인가하는 의문이 든다. 북한과 통일은 도덕보다는 사회, 정치 등의 과목에서 다루어져야 할, 엄연한 '우리 민족의 현실'에 대한 문제이다.

도덕적으로 살아야 한다, 북한아!
중학교 3학년 도덕 교과서의 컬러 화보는 '북한의 도발'이라는 제목과 함께 바다 속에서 떠오르고 있는 잠수함 사진을 싣고 있다. 도덕적이지 못한 행위를 저지른 북한을 질타하기 위한 저의가 돋보인다. '북한의 도발'이라는 제목에서는 먼저 건드린 쪽이 누구인가를 명확히 해두는 신중함도 아울러 읽을 수 있다. 통일 단원 전반에 걸쳐 강조하고 있는 '민족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우리의 노력과 다짐'은 머리 속에 새겨지는 사진의 이미지에 묻혀 그 의미가 바래고 만다.

6.25 단원에서도 북한에 대한 일방적인 공격은 명백히 드러난다. 북한은 1950년 6월 25일, 비겁하게도 모두가 잠들어 있는 새벽녘에 남한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교과서는 다소 선정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이 한 가지 '사실'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6.25 전쟁의 원인이 북한에게만 있을까? 당시의 국제 정세를 살펴보면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한국 전쟁에 무시할 수 없는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남한도 민족 간의 전쟁에 대해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도덕 교과서는 남한이 먼저 전쟁을 일으켰다면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되었을 리 없다는 점, 25일에는 대부분의 군인이 모내기 휴가 또는 일요일 외출로 자리를 비웠다는 사실 등을 열거하며 "북한의 명백한 남침증거"를 강조할 뿐이다. 전쟁이 일어나게 된 배경에 대한 다양한 시선과  깊이있는 분석은 찾아보기 힘들다.

남한 국민, 북한 주민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북한의 정식 명칭이다. 이 이름은 전 학년의 도덕 교과서에 걸쳐 단 한 번, 북한 정부의 수립 과정을 설명할 때 등장한다. 도덕책에서 북한은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 '북한'이라는 집단에 불과하다.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국민'들은 단지 그 곳에 살고 있는 '북한 (거)주민', 또는 우리가 긍휼히 여겨야 할 '북한 동포'일 뿐이다. "북한에 대한 편견이나 무관심, 또는 단순한 동정심과 같은 태도로부터 벗어나야" 할 첫 번째 주체인 교과서는 아직 통일을 향해 갈 길이 멀다.

교과서는 통일을 위한 중요한 전제로 "북한 주민들의 생활상과 생각을 이해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각오와 노력(고등학교)", 그리고 "그들의 삶의 모습과 의식부터 바르게 알 것(중학교 2학년)"을 들고 있다. 폐쇄 사회인 북한의 모습을 바르게 이해하려는 노력은 개인의 힘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교과서에서는 학생들에게 북한의 현실을 제대로, 바르게 보여주고 있는가? 8년 여에 걸쳐 배우는 도덕 과목에서 북한의 현실을 다루고 있는 단원은 중학교 2학년 도덕책의 소단원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이 소단원에서는 북한의 정치 현실, 경제 현실, 사회 현실, 교육과 문화 등이 소개된다. 그러나 이를 통해 "북한 사람들의 생활상이나 생각을 이해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기에는 지나치게 이데올로기적이다. 정치 현실은 물론이요, 경제 현실, 사회 현실에서도 북한의 독재적인 스타일만을 거듭 강조할 뿐이다. 100%에 이르는 투표율과 찬성률, '주체 사상'과 '우리식 사회주의'의 일방적 주입, 사상 통제 등이 이야기된다. 북한 사람들이 자신의 현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다. 교육과 문화 부분도 마찬가지. 정작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북한의 교육제도, 교육 목표, 종교 탄압 정책 등을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교과서에는 한계가 있다. 차라리 남북의 창, 통일 전망대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북한의 현실을 (교과서보다) 더 잘 알 수 있다"라고 이우용 연구사는 말한다. 북한의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교과서보다 TV 프로그램, 귀순자들의 에세이가 더 가치를 가진다는 것일까?

10여 년 전에도 중학교 2학년 교과서에 실려 있던 '싱싱하게 자라는 텃밭의 채소와 잎이 누렇게 마른 협동 농장의 채소' 이야기는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다. 북한의 국유화 정책을 비판하려는 의도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5~6년마다 교과서 개정을 거치면서도 북한의 몇 년 전 풍경을 그대로 싣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은 변하지 않는단 말인가.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은 이미 옛말이다.

 조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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