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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과 인간 (22) 나, 세월호, 우리 ② 슬픔
정리=왕단 기자 | 승인 2019.04.16 23:01

 

교루=벌써 5년이 지났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5년이 지났지만 어제 벌어진 일처럼 눈앞에 선하다. 어린 학생들이 사고로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지금은 뭘 하고 있을까. 나처럼 중간시험을 고민할까. 기회가 생기면 꼭 학생들에게 “무서워하지 말아요. 곧 누군가가 와서 구할 거에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손을 잡고 “이제 우리 집에 가자”고 말하고 싶었다. 물론 이런 기회는 오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배말한=오늘은 세월호 5주기다. 다시 생각하면 너무 슬프고 안타깝다. 시간이 지났지만 어제 일 같다.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떠났는데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학생들의 마지막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우리 꼭 살 수 있다. 우리 꼭 나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찢어지는 듯 했다. 살았다면 지금은 부모 곁에서 행복하게 살겠지. 우리처럼 대학생을 하고 있겠지.

서영희=사고가 일어나던 당시에 한국 정부의 구조속도 등 대응이 말도 안 되게 느렸다. 돌발상황에서의 대응력이 부족했다고 본다. 왜 민간인이 구조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가? 모든 승객이 탈출할 시간이 분명히 많았는데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이 나오면서 피해가 커졌다. 이런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정부가 더욱 반성을 하고, 예방방안을 명확하게 발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왕단=나는 당시 중국에 있었다. 처음에 뉴스를 보고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저런 일이? 현실이 아니겠지? 주변의 소중한 친구들이 나를 두고 놀러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듯 했다. 한참 동안 우울했다. 시간이 좀 지나고 슬픔을 잊었다. 한국에 오니 슬픔이 마음의 깊은 곳에서 다시 올라왔다. 사진에서 활짝 웃는 친구들이 지금은 세상에 살아있지 않다. 길을 걷는데 눈물이 나왔다. 나는 제 3자인데도 이렇게 슬프고 힘들다. 가족을 잃은 유가족은 어떨까.

왕탁루=선체가 기울어졌을 때 탈출할 시간이 있었지만 선내방송에서는 제자리에 머물러 있으라고 했다. 그리고는 선장이 먼저 구명정에 올라탔다. 당시 동영상을 보면 학생들은 구명조끼를 서로 양보하고, 움직이지 말자고 했다. 가족은 안타깝게 구조를 기다렸으니 허사였다. 잔잔한 바다에서 세월호가 침몰했다. 국민이, 어린 학생들이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던 상황은 너무 절망적이었다.
 ※ 한국대학에 다니는 중국학생의 글과 생각을 다듬은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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