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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과 인간 (21) 나, 세월호, 우리 ① 기억
정리=이서현 기자 | 승인 2019.04.16 23:00

 

권예인=나는 중학교 3학년이었다. 후배들은 하루 전날, 수련회와 수학여행을 떠났다. 학교는 조용하고 어두웠다. 그래서인지 유난히 흐렸던 날로 기억한다. 수업 중에 속보를 들었다. 옥상에서 제발 바람이 그쳤으면 하는 마음을 나눴다. 오늘은 수업을 일찍 마친 교수님께서 함께 기억하는 하루가 되길 바란다는 말씀을 전했다. 답답한 마음과 달리 하늘은 청명하기만 하다. 이제야 바람이 불지 않는다.
 
김세령=잊지 않겠습니다. 다섯 번째 이 글을 쓰며 회의감이 들었다. 무엇을 잊지 말아야 할까. 5년의 시간이 기억하겠다는 다짐을 반복하게 했지만 동시에 무딘 마음을 만들었다. 나는 정말 잊지 않았는가? 자식을 잃은 부모의 아픔을. 사고에 안일하게 대처했던 무책임한 나라를. 그리고 사고 뒤에 숨겨진 진실이 있음을. 오늘은 잊지 않겠다는 다짐으로만 끝나지 않겠다는 마음을 보탠다.

김수아=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서울시청 광장과 가까웠다. 노란색 천막이 가득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메시지를 적어 노란색 종이에 붙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응원이었다. 과연 다른 사고가 발생하면 정부가 빠르게 대처할 수 있을지 확신하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세월호를 모두가 기억해야 한다. 지금도 나보다 더 큰 슬픔을 느낄 분들을 위해 언제나 기억하겠다고 다시 다짐한다.

김재연=엄마는 “저기에 너희들이 있었다고 생각하면 너무 무섭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국민들은 이 사건을 기억하자며 노란 리본을 만들었고 노란 팔찌를 하고 다녔다. 5년이 흘렀다. 많은 사람이 담담해진 듯하다. SNS에 ‘#remember140416’을 올리면 ‘개념 있는 사람’이 된다. 세월호는 그렇게 하나의 소재, 사람을 판단하는 수단으로 변한 걸지 모르겠다. 세월호는 바다 속에서 시간이 멈췄다. 시간이 멈춘 그들, 그들의 세월을 앗아간 이들을 기억하자.

김혜연=등교할 때와 하교할 때의 세상은 너무나도 달랐다. 16살의 나는 휴대폰을 선생님께 제출해야 했기에 학교를 마친 뒤에야 소식을 접했다. 수많은 오보가 오가면서 우리는 울고 웃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끝내 웃지 못했다. 모든 과정을 지켜본 우리는 증인이다. 희생자의 친구, 가족, 이웃, 무엇보다도 증인으로서 세월호를 기억하고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지켜봐야 한다.

원보하=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교실에서 친구들과 수학여행 얘기를 나누며 설렘으로 들떴다. 친구가 세월호 내용을 말하며 울기 시작했다. 그때의 무력감과 죄책감이 지금까지 여전하다. 성인이 되고 나는 해마다 모금과 서명운동에 동참한다. 2019년 4월 16일, 오늘에는 성남 야탑역 광장에 마련된 시민 분향소에 다녀왔다. 방명록에 서명하고 헌화하면서 다짐했다. 사회가 개선되도록 실천하는 어른이 되겠다고.

▲성남 야탑역 광장의 시민 분향소. 노란 리본과 서명용지를 갖다 놓았다

이다현=세월호라는 제주행 선박이 침몰 중이고 구조 작업이 한창이라는 기사가 올라왔다. 당연히 모두 구조되리라 생각했고, 별로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래서 금세 다른 일에 관심을 돌리고 잠시 잊었다. 다음 날, 학교에서 접한 소식은 큰 충격을 줬다. 작은 사고가 아니라, 상상이상의 희생을 초래했다. 어제의 가벼움이 죄책감으로 다가왔다. 영원히 기억하는 일이 작은 사과가 됐으면 좋겠다.

이서현=친구와 함께 최근 경복궁을 방문했다. 북적이는 인파 사이로 어깨와 가방의 노란 나비가 눈에 띄었다. 광화문 광장에서부터 이어진 기억문화제의 열기였다. 5주기를 맞아 전국 곳곳에서 추모가 이어진다. 시간이 흘러 언젠가는 이 또한 희미해질 수 있다. 그러나 추모 글을 올리고 가방에 노란 리본을 달지 않아도, 수없이 많은 사람이 계속해서 그들을 기억하고 애도하리라 믿는다.

이연우=그날은 어쩐 일이지 학교수업이 일찍 끝났다. 집에 도착하니 긴급속보가 흘러나왔다. 전원 구조됐다는 뉴스가 나왔다. 엄마도 나도 걱정을 한시름 덜었다. 뉴스를 계속 보던 중, 모두 구조됐다는 내용이 오보로 밝혀졌다. 아직도 잊지 못한다. 구조됐다는 소식에 자기 아이인지 확인하려고 뛰어오고는 실망하던 어머니의 모습. 어쩌면 우리와 같이 대학 캠퍼스를 거닐고 있을 학생들이다.

이윤지=집으로 돌아오니 엄마는 뉴스를 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 후로도 한참을 안타까워하시며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엄마와 나는 학생들이 모두 돌아오면 꼭 찾아가 위로하자고 했다. 하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16살 중학생은 21살 대학생이 됐다. 시간이 멈춘 그들과는 달리 내 시간은 지금도 바쁘게 흘러간다. 찾아가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나를 후회하며 오늘도 나는 그들을 기억한다.

이한나=세월호에 탑승한 전원이 구출 됐다고 했다. 우리는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오후가 되자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배는 자꾸 가라앉았고, 구조는 더뎠다. 지켜보는 내 마음이 타들어갔다. 세월호에는 나와 같은 18살의 학생들이 탑승했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위해서였다. 나는 이미 수학여행을 다녀왔던 터라 더욱 안타까웠다. 봄이 오고 날씨가 따뜻해지면 그때 일이 떠오른다. 그 친구들도 봄날의 캠퍼스를 걷고 싶었을 텐데.

이희영=평소처럼 휴대폰으로 뉴스를 확인했다. 소식은 빠르게 퍼졌다. 햇살이 드는데도 교실은 어두웠다. 안산에 사는 친구가 있었다. 지금 자기 동네 분위기가 초상집과 다름없다고 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곳, 나보다 한 살 많은 학생들의 이야기였다. 단어로 온전히 옮길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그때의 모든 감정을 기억한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잊어서는 안 되는 그때를 기억한다.

전문선=안산이 집인 친구가 옆 반이었다. 가까운 이웃이 단원고에 다니는데 연락이 잘 닿지 않는다며 발만 동동 굴렀다. 아무런 위로도 할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은 “이제 지겹다. 이정도면 됐다. 언제까지 추모하느냐”고 한다. 희생자를 기억하고 추모함에 있어 끝이 있을까? 이정도면 됐다는 말이 남겨진 이들에게는 비수가 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순수하게 기억하고 추모하는 자세다.

주영은=수업이 끝나고 휴대폰을 받았다. “얘들아, 휴대폰 켜봐. 빨리.” 반장의 말을 듣고 모두가 휴대폰을 켰을 때, 교실은 조용해졌다. 시험 기간이었지만 연필을 잡지 못했다. 뉴스를 보면서 서성이다 플래너 한편에 ‘20140416 잊지 않을게’라고 메모했다. 5년 전에는 국민 모두가 함께였다. 많은 국민이 지금도 다짐을 지킨다. 그러나 함께 추모했던 시간과 기억이 점차 희미해지는 듯해서 가슴이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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