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마다 강의 자료를 지정도서나 참고도서로 정해 모아놓는다. 학기 초가 되면 학생들이 앞 다퉈 대학도서관을 찾는 이유다.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김수연 씨(21)는 도서관을 찾지 않는다. 앞이 아예 보이지 않는 전맹(全盲) 시각장애인. 흰 종이와 검은 글씨를 구별할 수 없어 일반도서를 읽지 못한다. 이번학기에 김 씨는 수업을 따라 가기 위해서 교재 3권 및 수업 자료들을 대체자료로 만들어야 한다.

대체자료는 일반 도서를 장애인이 이용하도록 만든 자료다. 보통 두꺼운 종이에 6개의 점이 찍힌 점자책을 생각한다. 이외에도 ▲텍스트를 음성으로 바꾼 녹음자료 ▲컴퓨터를 활용해 점자나 음성으로 변환하는 전자자료 ▲글자크기를 키운 대활자본이 있다.

아주대 사학과 박인범 씨(25)는 전맹 시각장애인. 그는 “점자책이 크고 무거워서 전자 자료를 이용해 공부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점자도서 (출처=Braille Bookstore 홈페이지)

보건복지부의 ‘2017년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25세 이상 장애인 중 대학에 다니는 비율은 15.2%다. 2011년(11.8%)보다 늘었고 2014년(15.3%)과 비슷하다. 문제는 대체자료 부족으로 학업에 어려움을 느낀다는 점이다.

상당수 대학도서관은 시각장애 학생을 위한 대체자료를 갖추지 못했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의 2016년 연구자료(도서관 발전방향 수립을 위한 대학도서관의 역할)를 보면 설문조사에 참여한 대학도서관 106곳 중에서 대체도서를 소장한 곳은 26곳(24.5%)이다.

대체자료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곳은 국립장애인도서관이다.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강성길 씨(26)는 강의교재를 대부분 이곳에 맡긴다. 신청이 학기 초에 몰려 모든 자료를 학기 전에 받기는 힘들다.

정기애 국립장애인도서관장은 “강의교재로 제작된 부분은 바로 제공하지만 나머지는 인력과 예산문제로 원하는 시간에 다 맞추기 힘들다”고 말했다. 박인범 씨는 학교와 양해각서(MOU)를 맺은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에 신청한다.

▲대체자료를 제작하는 국립장애인도서관 (출처=국립장애인도서관 홈페이지)

대체자료 제작에 개인이 비용을 부담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박인범 씨는 “대체자료 제작에 맡길 교재를 도서관에서 빌리는 것보다 직접 사서 보내는 게 마음이 편하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책 없이 수업을 듣는 기간이 길다는 점이다. 김수연 씨는 “강의계획서에 발췌된 부분만 해도 양이 많기에 부분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다. 완성된 자료를 언제 받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강성길 씨는 “개강 한 달 전에 신청하면 중간고사 전에는 받아 보고, 개강 때 신청하면 보통 학기 절반이 지난 이후에 받는다”고 말했다.

대학은 장애학생지원센터를 통해 대체자료 제작을 지원한다. 센터는 2008년 제정된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의 31조 편의제공 조항에 따라 설치됐다. 학습 도우미가 교재를 스캔하거나 타이핑해서 제공한다.
 
그러나 인력이 부족해 대체자료를 제작하고 관리하는데 어려움이 적지 않다. 교육부에 따르면 센터를 설치한 197개 대학 중에서 전담인력을 배치한 곳은 77곳이다.

성균관대 장애학생지원센터의 강은선 씨는 “하버드나 컬럼비아 등 해외대학에서는 장애학생이 많은 만큼 센터직원이 20~30명이고 대체자료를 체계적으로 제작·관리한다. 국내대학에서는 직원이 1명이거나 겸직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신라대 서혜란 교수(문헌정보학과)는 2015년 논문(시각장애대학생을 위한 대체자료 지원체계에 관한 연구)에서 “대학 간 ‘장애학생 교육·학습 지원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장애학습지원센터와 대학도서관을 연계해 대체자료를 종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장애학생을 위한 대학의 문턱은 낮아지는 중이지만 학습 환경은 충분하지 못하다. 김수연 씨는 “자료를 찾기 위해 검색하고 도서관에 전화하는 일은 우리 몫이다. 학교 차원에서 이런 부분을 지원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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