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80년생이다. 80년대 민주화에 대한 요구의 거센 물결을 체험적으로 알지는 못한다. 다만 80년대를 치열히 고민하고 그 시대의 아픔을 함께 했던 80년대 학번 세대들을 386이라 부른다고는 알고 있다. 그런데 「조선일보」에 화요일마다 실리는 '한국의 주력 386 세대'를 보면 내가 생각하는 386세대와 약간 다른 점들이 있었다.

그럼 386세대는 정확히 누구를 지칭하는 말인가? 우선「조선일보」와 「월간 말」의 386세대에 대한 정의를 살펴보자.

이들은 신군부 정권 아래 대학에 들어와 억압적 분위기 속에서 대학을 보낸 좌절과 상실의 세대입니다. 동시에 6·29, 올림픽 등을 거치며 민주화-초고속 성장의 성취감도 맛 본 세대입니다. 
                                  -「조선일보」의 '한국의 주력 386 세대' 1회 (99.3.2)

386 세대의 선정 기준 
1) 80~89학번까지 예외를 두지 않는다. (고졸은 나이로 환산한다) 
2) 학생운동을 했고 
3) 지금도 개혁적이며 
4) 해당분야에서 일정한 능력을 검증 받았으며 
5) 21C에도 그 분야를 리드할 만한 촉망받는 기대주를 제 1순위로 한다. 
6) 학생운동을 하지 않았으나, 3, 4, 5가 충족되는 인사를 제 2순위로 한다. 
7) 보수적이지만 4, 5가 충족되는 인사를 제 3순위로 한다 

                                   -「월간 말」 5월 호 '21C 한국의 희망 386 리더 1000'

보수 우익을 대표한다는 「조선일보」와 진보적 성향의 잡지「월간 말」의 정의가 크게 다르지 않다. 「조선일보」는 이렇게 정의 내린 386세대에 관해서 6월 말 현재 17회에 걸쳐 연재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이 시리즈는 처음의 정의와는 너무도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 시리즈에서 다루는 인물들은 386세대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시작부터 잘못된 「조선일보」의 '한국의 주력 386세대'를 살펴보자.

 

 


 좌절과 상실의 세대? 도대체 진짜 좌절하고 상실한 사람은 어디로 간 것입니까?

'한국의 주력 386세대'는 386세대를 "좌절과 상실의 세대"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러나 이 시리즈가 17회에 걸쳐 다룬 각 분야의 인물 중에 정말 좌절하고 상실했던 사람은 몇이나 됐던가?

1) 오렌지족이 '좌절'과 '상실'을? 

3월 2일자 첫 회에서는 386세대의 개략적인 소개를 하며 친절히 오렌지족의 유래까지도 알려주고 있다.

놀 때 놀고, 공부할 때 공부한다. 기성 체제를 맹렬히 거부하는 운동권 문화를 멀리한 채, 다른 한 쪽에는 독특한 향락문화가 존재했다. 80년대 초, 서울 강남역 뉴욕제과 뒤 '월드 팝스'나 '스튜디오80', 무교동 '코파카바나'등은 당시 '날라리'로 학우들에게 비난받던 향락족들이 출입한 대표적 디스코텍이었다.

향락문화에 젖어있던 오렌지족들이 정말 좌절하고 상실한 이들인가? 첫 회부터 386세대의 본질을 흐리는 기사를 싣고 있다. 이 시리즈의 필자는 386세대의 정의만 그럴싸하게 내려놓고 진정한 386세대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30대들의 문화를 얘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한국의 주력 386세대'는 공정하게도 오렌지족의 항변을 같이 실어 놓았다.

"택시, 심지어 좌석버스를 타고 등교하면 죄인 취급을 받았다. 말이 되는 일인가? 모든 집단과 마찬가지로 오렌지에게도 부정적인 얼굴이 있었다. 하지만 어설픈 진보, 어설픈 보수보다는 차라리 어설픈 오렌지가 더 나았다."

물론 우리는 물질에 대한 평가만으로 그들을 단죄하면 안 된다. 택시나 좌석버스를 타고 등교하는 이들이 물질만능주의의 가치관을 캠퍼스에 심은 것을 단죄하자는 것이다. 오렌지족들이 과연 진정한 386세대인가?

2) 이찬진과 김영선이 정계에 진출한 386세대입니까?

 '한국의 주력 386세대' 4월 6일자는 정계에 진출한 386세대들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여기서 386세대를 진정으로 좌절과 상실의 세대라고 생각하는지 의심되는 부분이 또 나온다.

운동권은 아니지만, 시민단체 활동과 TV출연을 계기로 전국구 배지를 단 한나라당 김영선(39. 서울대 법대 81학번) 의원은 튀는 패션과 날카로운 문제제기로 함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찬진(34. 서울대 전자계산학과 85학번) 전 '한글과 컴퓨터' 사장은 전국구로 정치 판에 뛰어들었다가 스스로 떠난 케이스.

김영선 의원과 이찬진 사장이 얼마나 그 시대를 고민했으며 얼마만큼 좌절과 상실을 극복했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다. 이 시리즈는 두 사람에 대해 말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다. 좌절과 상실의 세대인 386세대는 공동체적이며, 정치 의식의 성장으로 80년대라는 시대의 특수성을 함께 고민했던 세대가 아니었던가? '한국의 주력 386세대'는 김영선 의원이 튀는 패션으로 화제가 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춰야 했나? 게다가 이찬진 사장의 경우에는 그가 시대의 아픔을 공유했다는 것을 입증하지도 않은 채 간략하게 한 줄로 말해 버렸다. 이 시리즈는 386세대를 한 명이라도 더 발굴해 내어 양으로 승부하자는 것일까?

3) '미시족'은 무엇에 대해 "좌절"하고 "상실"했나?

'한국의 주력 386세대'는 386세대의 여성들을 간단히 '미시족'이라 정의 내리고 있다. 6월 8일자에서 그려진 '미시족'의 모습을 살펴보자.

" '미시족'이 된다는 것은 남편에 대한 내조와 양육 등 가정에서 할 일을 충실히 한다는 것이 기본에 깔려 있어야 한다." 
" '돌 던지던' 손으로 이젠 가족의 밥을 따뜻하게 만드는 여인들" 
"자신들을 '미시족'이라는 새로운 옷으로 치장하는 부지런한 세대" 
" '1인 다역' 슈퍼우먼 386주부" 
" '미시족'은 구매력이 크고, 여성들간 유행을 선도하는 경향이 강해"

'한국의 주력 386세대'는 '미시족'이라는 용어가 "처녀를 닮은 외모, 가사 및 사회 일에 두루 통달한 원더우먼 같은 외형적이고 허구적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여성계의 지적도 싣고 있다. 386세대들은 광주의 비극을 통해 분노했고 꿈을 접었고 인생을 바꿨다. 그런데 386세대의 여성들은 사회적 기반이 잡히면서 부지런히 큰 구매력을 행사하며 유행이나 선도하고 고분고분 남편 내조만 하고 있는 것일까? '미시족'들은 돌 던지던 손으로 가족의 밥을 따뜻하게 만들면서 자신들의 좌절과 상실은 까맣게 잊어버린 것일까? 386세대의 여성들이 지금도 이 시대를 치열히 고민하며 사회의 곳곳에서 작은 개혁을 이뤄내고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유행을 선도하고 구매력이 큰 '미시족'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게 이 시리즈의 기획 의도에 합당한 것일까? 정말 이들은 6월 22일자에 보도된 대로 드라마 '애인'을 보며 내 얘기인양 즐거워했을까?  "요즘 기혼자들 애인 없으면 바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386세대들일지 의문이다.

4) 민주화에 대한 요구는 중요하지 않은 것인가? 

학생 운동을 한 사람만이 386세대라는 것은 아니다. 그 시대의 모순을 시위 현장에서든 고시실에서든 공장에서든 함께 고민하고 각자의 분야에서 진보적 모습을 보인 사람이면 386세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80년대 민주화의 요구는 386세대들의 화두가 아니었을까?  '한국의 주력 386세대'에 나온 인물들의 인터뷰를 살펴보자. 

"데모하고, 이념 써클서 세미나하던 80년대 대학 시절 기억이요? 386 창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지."
                                       - 4월 27일자. 벤처 비즈니스를 하는 386 사장

"민주화에 대한 요구도 굳건한 국방 위에서 가능했던 게 아닐까" 
                                       - 5월 4일자. 80년대 ROTC출신 장교

민주화에 대한 요구의 한 방편이었던 학생 운동에 대한 기억을 방해가 될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한국의 주력'이라 말하고 있다. 학생 운동을 치열하게 했던 이들은 자신의 성공과는 전혀 무관한, 나중에 방해가 될 뿐인 그런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바보였을까? 민주화를 요구했던 사람들을 굳건한 국방을 이루는데 방해가 된다고 하여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잡아들여야 했던 것은 어떻게 설명이 될까?

조선일보는 30대이고, 60년대에 태어났지만, 80년대 학번은 아닌 박노해가 내린 386세대의 정의와 그가 386세대에게 주는 시를 보며 '한국의 주력 386 세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정의감과 도덕성에 바탕한 '가치 자원'을 지닌 세대, 사회와 인간을 거시적으로 보는 논리에 익숙한 '지적 자원'을 지닌 세대, 뜻을 모아 더불어 일하는 조직 경험과 목숨 건 용기로 전 존재를 투신한 체험, 소수의 진리가 결국 승리하는 역사를 겪어본 '경험 자원'을 갖춘 세대이다. 
 
 

   

 진달래


                    박노해

겨울을 뚫고 왔다. 
우리는 봄의 전위

꽃샘 추위에 얼어 떨어져도 
봄날 철쭉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 외로운 겨울 산천에 
봄불 내주고 시들기 위해 왔다.

나 온 몸으로 겨울 표적되어 
오직 쓰러지기 위해 붉게 왔다.

내 등뒤에 꽃 피어 오는 
너를 위하여.
 

 송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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