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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과 인간 (15) 한강 위의 기억
김효숙 기자 | 승인 2019.03.31 20:08

 

출근길의 다리 위, 기몽서 씨(58) 앞에 먼지 자욱이 일었다. 강북에서 강남으로 건너가던 중이었다. 앞에 가던 덤프트럭에서 나오는 줄로 생각하고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엄청난 굉음이 울렸다.

기절했다가 깨어났더니 운전석 창문으로 물이 출렁거렸다. 깨진 유리 틈으로 교각이 보였다. 조수석 문을 밀어 겨우 나왔다. 다리에서 튀어나온 철근에 앞바퀴가 걸려서 한강에 완전히 빠지지 않았다.

허리가 잘린 다리, 자신을 내려 보는 사람들, 물에 빠진 차량, 찌그러진 버스. 그때서야 상황이 이해됐다. 다리가 무너졌고, 자신은 한강에 떠있다! 기 씨는 성수대교 붕괴사고에서 극적으로 살았다. 25주년이 됐지만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인터넷에서 그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찾았다. 답이 오지 않았다. 기 씨가 운영하는 지역모임 카페에 연락처가 나왔다. 그는 처음에 거절의사를 밝혔다. 유족에 상처가 될 수 있어서였다. 고민을 시간을 달라고 했다. 기획의도를 다시 설명했더니 수락했다.

기 씨는 1월 22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사고”라고 했다. 그는 함께 추락한 의경들과 다른 생존자를 구조했다. 어안이 벙벙했지만 물에 빠진 승용차에서 살려 달라는 소리를 들으니 가만있을 수 없었다. 의경들과 옷을 벗어서 밧줄처럼 엮어 강물로 던졌다.

숨을 돌리는데 16번 버스가 보였다. 승객이 나오도록 도왔다. 학생들이 춥다고 해서 양복을 벗어줬다. 전경들도 두꺼운 옷을 가져와 덮어줬다. “괜찮다. 금방 사람들이 올 것”이라며 여학생들을 다독였다.

기 씨는 전경들과 함께 구조했던 학생 중 상당수가 병원에서 숨졌음을 나중에 알았다. 어린 학생들에게 그는 미안했다. “바로 병원에 갔으면 살았을 텐데…”라는 생각에.

그는 1시간 40분 만에 현장에서 나왔다. 119가 아니라 동부건설의 바지선 끄는 배를 탔다. 사람들을 구조하고 혼자 배를 타고 나와 앰뷸런스로 병원에 갔다.

▲성수대교 생존자 기몽서 씨(출처=채널A)

기 씨는 3개월 동안 입원치료를 받았다. 추락할 때의 충격으로 7번과 8번 척추를 크게 다쳤다. 지금도 잠을 4시간 이상 못 잔다. 오래 누우면 허리가 아파 잠에서 깬다.

더 심각한 문제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다. 지금도 높은 곳과 다리 위를 가지 못한다. 어쩔 수 없이 지날 때는 눈을 감는다.

광주에 사는 그는 몇 해 전, 세미나에 참석하려고 서울로 올라와 지하철을 탔다. 동작대교 위에서 신호대기로 멈춘 순간,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당장 뛰어내려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의경이던 이경재 씨(45)도 비슷하다. 2014년 10월 21일 JTBC ‘뉴스룸’ 인터뷰에서 이 씨는 “다리 가운데 차가 멈췄을 때는 반대편으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의 공포를 느낀다”고 말했다. 대형 쇼핑몰이 무너질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혼자 뛰쳐나왔다.

▲트라우마를 다룬 뉴스(출처=한국언론진흥재단)

당시는 트라우마라는 단어가 흔치 않은 시절이었다. 기자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빅카인즈를 통해 검색했더니 성수대교 사고가 발생했던 1994년부터 2002년까지 트라우마를 언급한 뉴스가 거의 없거나 한 자리였다. 이 숫자는 세월호가 침몰한 2014년 급증했다.

국가법령정보센터를 보니 2016년이 돼서야 재난구호법 제4조 ‘구호의 종류’에 ‘심리회복의 지원’이라는 항목이 추가됐다. 세월호 전까지 트라우마 치료나 상담 지원을 받기 힘든 환경이었던 셈이다.

정부는 대형재난을 당한 피해자의 심리치료를 지원하기 위해 국가트라우마센터를 작년 4월 만들었다. 치료를 받는 기간은 최장 1년이다. 센터추진단의 심민영 팀장은 “10년, 20년 전 사고로 오는 분의 숫자는 미미하다”고 했다.

기 씨는 퇴원하자마자 생존수영을 배웠다. 물에 대한 공포증을 이기고 싶었다. 일상으로 복귀한 뒤 1년 정도는 차를 몰지 못했다. 생업 때문에 운전을 하면서 차에 구명조끼를 뒀다. 어른용 2개, 어린이용 1개. 아내와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다. 지금 집에도 구명조끼가 있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이 씨 역시 트라우마를 안고 산다. 집은 1층이나 2층에서만 고른다. 그는 “심리치료나 상담은 들어보지 못했다. 어떻게든 잊으려고 노력했지만 혼자선 이겨낼 수 없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런 심리를 심 팀장은 트라우마의 대표적인 증상이라고 설명했다. 예민함, 악몽, 부정적 생각, 회피 증상. 사고와 관련된 사람, 장소, 물건을 피하는 건 회피증상에 속한다고 했다.

“트라우마 치료를 안 받아도 어느 정도는 스스로 회복할 수 있지만 후유증은 남는다. 사고를 당한 누구나 겪는 과정이므로 자신에게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게 중요하다.”

기 씨에게 생긴 가장 큰 변화는 가치관. 늑장 구조를 기억하면서 사람을 못 믿게 됐고 어떤 곳이든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다. 어디를 가도 탈출경로부터 찾는다.

죄책감은 남모를 고통이다. 기 씨가 강물과 버스에서 끌어 낸 사람만 열댓 명. 그러나 나머지 대부분은 목숨을 잃었다. 조금만 더 구조가 빨랐더라면 어린 학생들이 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기 씨는 성수대교 재개통식, 사고 10주기, 20주기 행사에 참석해 희생자의 넋을 기렸다. 인터뷰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유가족을 걱정했다. 자신은 다행히 살았지만 누군가는 가족을 잃었다는 생각에 내내 조심스러웠다.

씨랜드 화재, 세월호 침몰. 사회 부조리가 낳은 참사가 반복되는 모습을 보며 기 씨는 답답함을 호소했다. 조짐이 있었는데 미리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기 씨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정보기술(IT) 사업을 하는 중인데 사회를 컴퓨터가 사람처럼 생각하고 배우는 ‘딥 러닝’에 비유했다.

“학습 과정에서 희생이 따르지 않겠어요. 다만 그 과정에서 양심에 따라 용기를 내고 생명을 구하는 개인이 있어야 해요. 생명을 소중히 하는 시민의식이 자리 잡는 데는 시간이 걸릴 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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