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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과 인간 (14) 꿈에서 만난 형
김채빈·한예나 기자 | 승인 2019.03.31 20:07

 

형은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사무실에 가려고 아침 일찍 나섰다. 그런데 출근하지 않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느낌이 안 좋았다. 뉴스를 보니 성수대교가 무너졌다. 1994년 10월 21일.

16번 버스에 탔던 김중식 씨를 동생 학윤 씨(53)는 다시 보지 못했다. 기자는 서울 성동구청 총무과를 통해 학윤 씨의 연락처를 얻으려고 했다. 그가 성수대교 유가족 대표라서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성동구청 관계자는 개인정보라서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인터뷰 요청을 전달이라도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학윤 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피해자가 계속 말해야 사회가 바뀔 테니 만나자고 했다. 그는 사고 이후 어떻게 살아왔을까. 

“며칠 전 꿈에서 형이 술 한 잔 하자면서 나오더라고요. 집안이 어려웠지만 오순도순 힘 합쳐서 살았으면 훨씬 더 값지고 보람찼을 거예요. 우리 가족이 무슨 잘못을 했을까. 다른 가족도 물론 똑같은 마음이겠지만요.”

형은 32세였다. 학윤 씨 가족에게는 가장이었다. 어머니에게는 듬직한 큰아들, 자신에게는 각별한 형, 여동생들에게는 든든한 오빠였다. 그날로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 느낌이 들었다.

학윤 씨는 사고 이후 트라우마를 극복하는데 10년이 걸렸다고 했다. 다른 사람은 각자 인생을 살며 앞으로 나아가는데 자신만 멈춘 듯 했다. 차를 타고 가다가 멈춰서 울 때가 많았다.

“운전하는데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르더라고요. 왜 하필 우리 가족에게 이런 일이…. 갓길에 차를 세우고 가슴을 두드리며 소리도 지르고요.”

주변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얘는 성수대교 유족’이라고 말했다. 보상을 얼마나 받았냐고 툭 던지듯 얘기하기도 했다. 잊었던 기억이 그때마다 되살아나는 기분. 말 못할 고통이었다. 누군가가 내 고통을 알아주기를 원하지 않았고, 알아주지도 않았다. 억울한 마음이 계속됐다.
 
그는 상처를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힘을 내자고 했다. 사람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친구, 전우회, 대학동문. 반가운 얼굴에게 먼저 다가갔다.

국내를 많이 돌아 다녔다. 산에 올라가고, 바다에서 낚시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여행이지만 당시에는 피신이었다. “사실 10년이라는 세월을 난 잃어버렸다고 생각해요. 의욕이 없었죠. 이런 상태로는 내가 어떻게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들었어요.”

이런 과정에서 다른 유족이 힘이 됐다. 처음 모일 때는 울음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10월이 다가오면 서로 불안해하는 모습이 보였다.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나아졌다. 이제는 서로 안부를 묻고 지낸다. 결혼식이 있으면 가서 자기 일처럼 축하한다. 학윤 씨는 좋은 일이 있으면 서로 기뻐해주는 사이가 됐다고 말했다.

▲김학윤 씨가 가족과 함께 위령제를 지내는 모습(출처=한국일보)

 

위령비는 성수대교 북단에 있다. 학윤 씨는 가면서 무단횡단을 했던 기억을 되짚었다. “꾸준히 말했는데도 (횡단보도를) 설치하는데 10년이나 걸렸다. 저기 건너다 사람 하나 또 죽으면 그제야 해결할 거냐고 항의했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이 2014년 취임하면서 횡단보도와 과속방지턱이 생겼다. 구청은 합동위령제를 유족에게 먼저 제안했다. 정 구청장은 “다시는 이런 대형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 유가족의 슬픔을 마음 속 깊이 위로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학윤 씨는 사고 이후 사람을 보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다고 했다. 대한민국에 사는 이름 모를 누군가도 가슴 속에 어떤 응어리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상처를 입은 사람을 이해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느낀다.

그는 계속되는 인재에 답답함을 드러냈다. 성수대교 사고를 계기로 대한민국이 안전 불감증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했다. 대형 참사는 여기서 그칠 것이라 생각했다.

“이제는 저희 사고 때 돌아가신 32명이라는 인원수가 적어 보이는 거죠. 삼풍백화점 붕괴, 세월호 침몰 같이 더 큰 사고가 생기니까요. 너무 큰 사건이 벌어지니까 작은 사건은 빛바랜 것처럼 감춰지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학윤 씨는 성수대교 사고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 얘기를 묻자 주먹을 꽉 쥐며 첫 통화 때의 말을 다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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