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최=삼성언론재단·한국기자협회
주제=저널리스트와 역사의식
일시=2019년 3월 27일(수) 오후 7시~8시 30분
장소=한국프레스센터 18층 외신기자클럽
강연=김준길 서울대 경제연구소 연구원

 

서울대 경제연구소의 김준길 연구원(79)은 고등학교 때 아놀드 토인비의 책을 접했다. 인류 문명이 도전과 응전의 결과라는 말을 가슴 깊이 받아들였다. 그는 대학 졸업 후 기자로 15년, 정부 공보관으로 11년을 보내고 미국에서 2년간 한국 역사책을 썼다.

김 연구원을 3월 27일 한국프레스센터의 삼성언론재단 강연회에서 봤다. 제목은 ‘저널리스트와 역사의식’이었다.

▲김준길 연구원이 외신기자클럽에서 강연하는 모습

“서울신문에서 1962년 기자생활을 시작했는데 중국의 마오쩌둥에 관심이 많았어요. 도쿄 통신원한테 ‘중국의 붉은 별’(에드거 스노 지음)을 구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때는 금서였죠.”

조선일보 외신부로 1966년 옮겼을 때는 중국 문화대혁명을 보도하려고 일본신문을 읽었다. 항공사가 보내는 일본신문을 기다렸다가 받아서 오후에 기사를 썼다. 중국의 일본 특파원들이 취재원을 어디에서 구하는지 궁금했다. 나중에 대자보가 취재원임을 알았다.

“대자보가 무엇인가? 연구를 좀 했습니다. 옛날 비적이 벽에 선언문을 붙인데서 착안해서 마오쩌둥이 만든, 공산당 고급간부와 하위당원의 의사소통 수단이었어요. 그걸 알고 ‘대자보의 정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썼죠.”

신문사를 떠났을 때, 주 프랑스 공보관 제의를 받았다. 정부 관리가 된다는 상상은 해본 적 없었다. 파리에 갈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수락했다. 르몽드, AFP, 리베라시옹 등 프랑스 언론사의 기자와 교류했다.

주미 한국대사관 공보공사로 일하는 기간에는 관심사가 같은 두 인물을 만났다. 돈 오버도퍼(Don Oberdorfer)와 셀리그 해리먼(Selig S. Harriman). 모두 워싱턴포스트의 도쿄특파원 출신이다.

해리먼은 북한에 관심을 갖고 평양을 자주 다녔는데 나중에는 ‘친북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았다. 오버도퍼는 해리먼보다 한국에 더 잘 알려졌다. 6·25전쟁에 참전했던 경력이 있고 ‘두 개의 한국’이라는 책을 냈다.

김 연구원은 두 사람이 “단순한 신문기자가 아니었으며, 한국문제를 굉장히 역사적인 시각에서 다뤘다”고 평가했다.

공보공사를 그만두고 미국에서 출간한 책이 ‘한국의 역사(The History of Korea)’다. 기자와 공보관으로서 26년간 세계 속의 한국을 바라보면서 세계가 한국역사에 얼마나 무지한가를 느끼면서 책을 쓰기로 했다. 도입부 제목은 ‘한국에 대한 오해(Misperception of Korea).’

‘한국역사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한국역사를 말할 때 우리는 한국문명의 기원을 포함해야 한다. 한국이란 정체성이 생기기 이전의 역사를 뜻한다. 즉 한국의 역사는 현재 한국의 지리적 경계에 갇혀서는 안 된다. 중국 북부와 만주, 한반도, 일본 열도까지 우리 시야를 확장해야 한다.’
(How, then, do we approach Korean history? When we say Korean history, we have to include the origins of Korean civilization before Korea as an identity had even been created. In other words, Korean history should not be geographically limited to the boundaries of modern-day Korea. We should extend the scope of our perspective up from northern China, Manchuria, and the Korean peninsula and down to the Japanese archipelago.)

강연 후 약 40분간 질문이 이어졌다. 참석자가 한국 언론과 외국 언론의 차이를 묻자 그는 르몽드를 예로 들었다.

“처음 읽는 사람을 독자로 상정하므로 기사가 매우 길다. 하노이 정상회담을 보도한다면 과거 남북회담의 역사부터 짚어주는 식이다. 중요한 내용은 반복해서 전하다보니 기사가 길어진다. 한국 신문도 지면이 늘었지만 이렇게 쓰지 않는다.”

북한과의 대치상황이 남한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됐다는 김 연구원의 지적을 어느 참석자가 언급했다. 김 연구관은 “분단이 되니 남한은 반도(peninsula)가 아니라 섬(island)이 됐다. 변화된 조건을 무역을 통해 극복했다”고 설명했다.

언론의 한일관계 보도와 관련한 질문에는 “역사를 잊을 게 아니라, 더 밝혀서 진실을 봐야 한다. 그러려면 일본 사람을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1988년 한국에 언론노조가 시작되려고 할 때, 일본의 언론노조는 어떤가 알아봤다. 가깝게 지내던 마이니치신문의 기자에게 전화했다. 대충 할 줄 알았는데 샅샅이 모아서 언론노조 현황을 자세히 알려줬다. 이 사람들을 준비 없이 대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한국역사에 대한 책을 내고 미국과 필리핀에서 방문교수로 일하다가 2017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좀 더 학술적인 책을 쓰기 위해서다. 1945년 이후의 한국 정치경제사를 다룰 계획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자는 항상 역사 앞에 서 있다. 민족주의자(nationalist)의 시각에 몰두하기보다 글로벌리스트(globalist)의 시각을 갖자. 변화하는 세계 속의 한국을 어떻게 기록할지 고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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