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의 날씨에도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 3번 출구 앞은 붐볐다. 2월 18일 오전 10시 11분. 조금 있다가 문자가 왔다. ‘죄송합니다. 10분 정도 늦겠습니다.’

근처 마로니에 공원을 거닐다가 약속장소로 향했다. 서울대 연건캠퍼스 후문에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인사를 건넸더니 “어떻게 알아봤어요?”라고 했다. SBS 조동찬 의학전문기자(45)와 그렇게 만났다.

카페에 들어갔다. 의사시절 이야기로 시작했다. 그는 기자가 되기 전까지 모교인 한양대병원의 신경외과 전문의로 일했다. 뇌출혈과 뇌종양으로, 또는 척추에 문제가 생긴 환자를 담당했다.

서른넷에 직업을 바꾼 이유를 물었다. “KBS 이충헌 의학전문기자를 뉴스에서 보고 ‘정신과 의사가 기자를? 나도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재미있겠다는 생각에 시작했는데 벌써 11년 차가 됐네요.”

주변에서는 모두 반대했다. 당시 미국에 있던 형은 전화로 “너 농담이지? 그냥 시험만 본거지?”라고 물어봤단다.

인생의 전환점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라는 책이었다. “지하철에서 내리는 것을 잊을 정도로, 재미있게 읽었어요. 얼마 있다가 처음 유럽 여행을 갔는데, 이탈리아 로마 다음에 프랑스 파리를 갔거든요. 파리에서 그림 하나에 빠졌죠.”

책 읽는 소녀를 그린 작품은 앙리 팡탱 라투르의 <The Reader>였다. 그는 파리에서 이틀을 오르세미술관 관람으로 보냈다. “제가 미술을 좋아하고, 예술에 감동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어요. 곧이어 이런 의문이 들었죠. 이걸 왜 지금까지 몰랐지?”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KBS의 ‘사랑이 꽃 피는 나무’라는, 의대생이 나오는 청춘 드라마를 봤다. 의사가 되는 건 그때부터 생각했다. 여행지에서 만난 미술작품을 통해 새로운 자신을 발견했다. SBS 전문기자 채용공고를 보고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서울 성동경찰서로 첫 취재를 나갔다. 아내를 토막 살해한 남편이 검거됐다. 2008년 9월이었다. 남편의 입을 열기 위해 의대에서 배운 면담기법을 썼다. “다른 기자들은 허탕치고 갔는데, 의사출신의 초짜 기자만 인터뷰를 따 냈다고 형사들이 많이 놀랐어요.”

2011년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 실마리는 그의 보도에서 시작됐다. “서울아산병원에 폐를 이식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독한 성인 9명이 있었어요. 질병관리본부는 통상적인 간질성 폐렴이라고 발표했고요.” 그는 하루 만에 이를 뒤엎고, 신종 폐질환이라는 사실을 알렸다.

▲ 조동찬 기자의 가습기 살균제 취재모습 (출처=SBS 8시 뉴스)

여기에는 인적 네트워크의 도움이 컸다. 간질성 폐렴에 대해 취재하려고 한양대병원을 찾았다. 모교 교수가 환자를 직접 치료하는 서울아산병원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전혀 새로운 질병’이라는 말이 나왔다.

서울아산병원으로 차를 몰고 갔다. 거기서 일하는 군의관 선배에게 연락을 했더니 교수를 연결시켜줬다. 결국 그해 11월, 신종 폐질환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피해자분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커요.” 이유를 물었다. “아직까지 사건이 해결된 게 아니잖아요. 제가 너무 신입 때 보도를 했어요. 지금이었다면 보다 빨리 실상을 알려 고통을 덜어드릴 수 있었을 텐데요.”

그는 의료계만 취재하지 않는다.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는 무엇이든 물어본다. “제가 잘 모르는 분야는 취재하기 싫을 때도 있어요.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모를까, 부담이 크더라고요.”

취재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하는 일은 늘 재미있다. 의학기사라고 해서 특별할 건 없다. 어떤 현상이나 사건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과학적 연결고리를 바탕으로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

태움 문화만 해도 무턱대고 찾아갔을 때, 실상을 말해줄 간호사를 섭외하기란 정말 어려웠다고 한다. 제보자가 나오기 전까지는 취재가 어렵다는 뜻이다.

유가족으로부터 입수한 진료기록을 바탕으로 2015년 10월 31일 가수 신해철 씨를 담당했던 병원의 의료과실 가능성을 제기했다. 또 서울대병원 의무기록을 단독 입수해 2016년 9월 27일에는 백남기 농민의 외인사 의혹을 보도했다.

“주변 사람과 부딪히면서 항상 치열하게 살아요. 예전의 의사 동료와도 그렇죠.” 의사가 의사답지 못한 행동을 하면 지적하는 게 옳다고 믿는다. 

동료 기자들과는 어려움이 없는지 궁금했다. “의사들만큼이나 기자들도 까칠하더군요. 하하.” 애당초 어울리기 쉽지 않다고 각오해서인지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단다. “저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동료들도 그렇게 생각하겠죠?”

그는 백남기 농민 보도로 민주언론상을 받았다. 의학전문기자로 일하는 10년 동안 한국방송대상 보도부문 개인상, 한국방송기자클럽상 올해의 뉴스부문 특별상, 보건복지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작년에 세상을 떠난 젊은 암환자 이야기로 대화가 이어졌다. 세브란스병원 소식지에서 우연히 사진을 봤는데 인터뷰 요청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죽는 순간은 누구나 외롭고 괴롭지만, 그래도 세상엔 고마워할 것이 많다는 것을 일깨워 준 친구예요.”

그는 어떻게 해야 의사와 환자 사이에 일상적으로 오가는 이야기를 진실하게 담을 수 있을까 고민한다. 글을 읽을 때는 주석을 확인하는 습관이 있다고 했다.

“취재 때문에 생긴 건 아니고, 주석을 보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게, 마치 또 다른 책처럼 느껴져요. 여러 권을 읽기보다는 차라리 한 권을 열 번 정독하는 게 낫습니다.”

작년 11월에는 세로토닌과 멜라토닌을 통해 수면과 불면의 메커니즘을 다룬 <지금 잘 자고 있습니까?>를 출간했다. “출판사에서 메일이 왔어요. 수면에 관한 제 기사를 책으로 발전시켜보자고 제안을 주셔서 하게 됐죠.” 다음에는 행복에 대해 써보고 싶어 한다.

“제가 처음 기자 생활을 시작할 때와 비교해 보면 의학전문기자 수가 확실히 늘긴 했어요. 100명도 넘을 것 같은데? 이 길을 먼저 걸으신 분들이 있어서, 지금의 제가 있는 거죠.”

자신만의 신념이 있냐고 물었다. 무엇이든 바뀔 수 있다는 거라고 답했다. 반드시 맞는 거라고 생각했던 게 틀릴 때가 있듯이, 절대적인 것은 없음을 매번 느낀다고 했다.

그는 17세기에 나온 뉴턴의 법칙이 행성, 빛의 운동, 그리고 전자의 운동에는 성립하지 않는다며 말을 이었다. 지금도 물리학도는 대학에서 1년 정도 뉴턴의 과학을 배운다고. 현대물리학의 기준으로도 뉴턴이 틀리지 않는다고.

“저랑 뉴턴을 동일시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현장을 전달함에 있어 태도나 방법이 뛰어나다면 시간이 지나 담고 있는 정보가 틀리더라도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고 봐요.”

뉴턴의 법칙처럼 시간이 지나도 가치를 잃지 않는 보도를 하고 싶다! 의학전문기자 조동찬에게서 의지와 겸손함이 느껴졌다.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