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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와 기사 (1) 동아일보 신예기(新禮記)팀 ① 의식을 바꿨다
백승연 기자 | 승인 2019.03.24 23:00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논의가 멈춘, 무언가가 있었다. 예법(禮法)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새로운 예법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
 
늘 그랬으니 제사를 지내고 며느리는 전을 부쳤다. 자세한 심정을 몰라서 난임 부부에게 의도하지 않은 상처를 줬다. 생각한 적이 없어서 퇴사매너가 뭐냐며 스트레스를 받았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느꼈다.
 
창간 98주년을 앞둔 작년 2월, 동아일보 기자 8명이 이런 고민을 특별기획에서 풀기로 했다. 예를 익히고 실천하기 위한 ‘예기(禮記)’처럼, 이 시대에 필요한 공감능력과 상호배려를 위한 ‘신(新)예기’의 탄생배경이다.
 
<새로 쓰는 우리 예절 新禮記> 시리즈는 31부작이다. 지난해 3월 30일부터 9월 17일까지 연재됐다. 시리즈는 올해 <신예기 2019>로 새롭게 출발했다.
 
기획
 
이달의 기자상 공적설명서에 따르면, 취재팀은 세대·남녀·갑을·인종을 넘어 한번쯤 입장 바꿔 생각할 일상의 단면이 있다고 봤다. 어느 누구도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문제라고 느껴도 정답을 말하기 힘든 애매모호함 때문이었다. 공론화를 통해 대안을 고민하기로 했다.
 
기자들은 누구나 고민했을 법한 질문을 던졌다. 죽은 조상 기리다 산 자식 싸움난다는 명절 제사, 정말 조상이 반길까? 손님 받고 부의금 계산하다 끝난다는 한국 장례, 우리 가는 마지막 길의 최선의 모습일까? 친할머니 장례에는 휴가를 주는데 왜 외할머니 장례에는 안 줄까?
 
어색한 친인척 호칭, 국제커플이나 재혼·이혼가정, 난임 부부를 대하는 법, 장모와 사위 간의 갈등 같은 문제도 시리즈에 담았다. 여름철 복장과 추석얘기는 시기에 맞춰 다뤘다. 호텔투숙, 퇴사매너, 기부 등 새로운 트렌드를 포함시켰다.
 
방향을 정하고 주제를 정하기까지 한 달이 걸렸다. 구체적인 아이템을 고르려고 브레인스토밍 등 회의를 10여 차례 했다. 기자 전원이 출입처의 평시업무와 병행하니 쉽지 않았다.
 
취재팀을 이끈 임우선 기자(정책사회부 교육팀장)에 따르면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 기자경험이 어느 정도 있으면서 재기발랄하고 소속 부서도 다른 기자들이 모이면 3시간이 그냥 흘렀다.
 
예법은 경험이나 가치관에 따라 다르게 보는 소재였다. 갑론을박이 계속 오간 이유다. 임 기자는 “우리끼리 모여서 회의하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일상에서 생생하게 부딪히는 문제들이었기 때문”이라고 회상했다.
 
사회부에서 차출된 이지훈 기자는 아이디어가 생명인 기획이었다고 했다. 제사 형식, 호칭 등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통념에 반기를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회의가 잦아질 수밖에 없던 이유 중 하나다.
 
기사
 
첫 기사는 조상의 편지형식으로 나왔다. 제목은 ‘제사, 뭣이 중헌디?… 치킨도 괜찮여 가족이 화목해야지’다. 제사를 26년째 지내는 맏며느리의 하소연으로 시작한다. 명절 차례에 기일 제사를 4대까지 지내는 집안이다.
 
무릎수술을 하고도 차례상을 차렸는데 여자는 빠지라는 어른의 말에 상처 입은 경험을 들려준다. “남편 집안 뼈대를 세우느라 제 뼈는 녹아내렸습니다.” 종부의 마음을 짧은 문장에 담았다.
 
하늘나라 시증조모가 맏며느리에게 쓴 가상의 편지가 뒤를 이었다. “니가 내가 사는 신줏단지를 하도 째려봐싸서 니 꿈속을 빌려 너에게 편지를 쓴다”며 운을 뗀다.
 
며느리들만 고생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고 위로하면서 제사에 대한 잘못된 지식, 제사를 지내는 집안의 고리타분함, 남녀차별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요즘에는 간단히 제사를 지내는 집이 있다고, 명절에 여행을 가도 된다고 ‘새로운 제사문화’를 제안했다.
 
“지난 추석 때 젊은이들이 ‘제사를 없애자’믄서 청와대에 6121명이나 청원을 했다지? 오죽하믄 자손들이 나라님께 청원을 다 혔겄냐.” 가상의 편지는 세상의 변화를 사실로 전한다. 편지와 함께 퀴즈도 실었다. 제사의 모순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 신예기의 첫 기사 (출처=동아일보)
일상의 문제를 다루는 만큼, 쉽게 읽히도록 하려고 편지형식을 택했다. 자신 혹은 주변 누군가는 분명 겪었을 이야기, 특히 불편하거나 곤란했던 경험을 재미있게 풀려고 했다.
 
임우선 기자는 “약 1년 동안 끌고 가야 하는 기획이었기에 8명의 기자들이 쓰는 기사의 톤(tone)을 맞추는 게 중요했다”고 말했다.
 
난임 부부에 대한 예절(17회)을 다룰 때는 전문의가 조언하는 형식을 사용했다. 취재내용을 최대한 쉽고 압축적으로 전하기 위해서였다.
 
제사 관련 퀴즈처럼 휴대폰에 저장하고 볼 만한 도표나 인포그래픽도 신경을 썼다. 아이를 대하는 ‘애(kids)티켓’ 7계명(9회), 직장인이 알아둬야 할 여름철 복장 예절(21회)이 대표적이다. 특히 복장예절에서는 주변에 신경 쓰지 않는 사례를 그림으로 보여줬다.
 
▲ 부적절한 복장으로 제시한 그림 (출처=동아일보 2018년 7월 9일)
신문기사에 온라인 콘텐츠를 결합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기사를 압축, 재구성한 애니메이션 영상을 올렸다. 이런 애니메이션은 후반부로 갈수록 독자의 큰 호응을 얻어 편당 조회가 최고 22만 건을 넘었다.
 
취재팀은 애(kids)티켓, 장례(葬禮) 희망 등 입에 착 붙으면서 의미 있는 용어를 사용하려고 했다. 애(kids)티켓은 남의 아이가 아무리 예뻐도 함부로 만지지 않는 예의범절을, 장례 희망은 남겨질 자녀를 위해 미리 생각할 장례절차를 뜻한다.
 
신조어는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대구의 맘카페 회원은 “요즘 애(kids)티켓이라는 말이 생겼더라. 어른들도 제발 좀 존경받을 수 있는 행동과 언행을 하시기를 바란다”는 글을 올렸다.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남의 아이를 함부로 만지는 어른을 겨냥한 내용이다.
 
취재
 
시리즈를 읽으면 질문이 떠오른다. “사연 속 인물은 누구일까?”  기자들은 두 가지 방법으로 사례를 모았다. 해당 분야의 취재원에게서 듣거나, 기자 개인의 인맥을 활용했다.
 
예를 들어 난임 부부(17회)와 기부문화(28회)를 다룰 때는 난임 부부 전문의나 기부단체 직원을 취재했다.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기는 곤란해서 기자의 친척이나 친구로부터 구체적 사례를 모았다.
 
예법을 오래 고민한 학자와 전문가의 도움이 큰 힘이 됐다. 공적설명서를 보면 기자들은 ▲최대한 많은 전문가 취재를 통해 예법의 근원과 변천사를 알고 ▲사례 취재를 통해 현재와의 간극을 파악했고 ▲사회적 갈등을 줄일 수 있는 전문가 조언 및 대안적 사례 취재를 통해 미래를 제안하는 데 힘썼다.
 
취재팀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고서인 ‘예기’ 전편을 완역한 성균관대 정병섭 초빙교수를 회사로 초청해 예법의 본질을 공부했다. 첫 기사를 위해 기자 3명이 제사 관련 전문가 10여명을 만나고 서적 10여권을 읽었다.
 
또 장례예법을 다루려고 장례문화 변천 및 일제에 의한 왜곡, 수의문화, 준비된 죽음의 의미, 해외 장례문화에 밝은 대학, 시민단체, 대학병원 및 중소 장례식장 등 현장 관계자를 두루 만났다.
 
휴가철 숙소사용 에티켓(24회)을 취재할 때는 기자가 특급호텔 청소부로 하루 동안 일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청소부 복장을 하고 일하면서 호텔을 이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치우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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