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최선열

뉴스의 사회학에서 뉴스는 남성용 "소프 오페라"(soap opera)로 인식되어 왔다. 질투, 음모, 폭로, 권력, 사랑, 출세 등의 흥미 진진한 주제를 실타래를 뽑듯 계속 이어가는 소프 오페라가 전형적인 여성 장르임을 빗대어, 남성 장르인 뉴스도 배우가 연기만 하지 않았을 뿐 그 내용은 연속극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불장난을 미국 언론이 얼마나 오랫동안 선정적으로 보도했는가를 보면 뉴스가 소프 오페라가 아니라고 부정하기는 힘든 것 같다.


지난 한 달은 우리나라에서도 소프 오페라의 진수를 장르를 뛰어 넘어 뉴스에서 맛볼 수 있었다. <청춘의 덫>이라는 연속극이 인기절정에서 맥빠지게 끝나고 난 뒤 허탈해진 여성시청자들은 물론 평소 연속극을 폄하하면서 자부심을 가지고 뉴스를 쫓던 남성들까지도 <권력의 덫>이라는  소프 오페라에 심취되었었다. 사실 <권력의 덫>의 스크립트는 신문들이 써 주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우리 신문들이 짧은 기간동안에 그 많은 기사들을 게릴라성 소나기처럼 퍼부은 적은 많지 않다.) 나는 정말 믿을 수 없었다. 이야기 구조도 소프 오페라의 전형이지만, 우선 등장인물, 장소, 모임의 이름부터가 걸작을 예감할 수 없을 정도로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특이했다. 배정숙, 연정희, 이형자, 정리정, 라스포사, 나나 부띠크, 앙드레 김 살롱, 낮은 울타리회…. 김수현 같은 대단한 극작가가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과연 이런 절묘한 이름들을 지어낼 수 있을까? 소프 오페라에 자주 나오는 병원 장면, 들것에 실려가는 여인, (기자들을 따돌리기 위해) 대역을 맡은 마네킹 같은 여인, 호피 코트(나중에 중고품으로 밝혀져 극적 반전까지 완벽하게 해내지 않았는가), 그리고 김태정이라는 무사와 같은 모습의 남자 주인공. 


권력의 덫에 걸린 이 여인들의 소행이 일탈로 정의된 이상 언론은 겁날게 없었다.(일탈영역에서는 객관성이고 공정성이고 하는 고상한 원칙은 지켜지지 않는 게 언론의 관행이다.) 온 국민이 한참 소프 오페라의 절정을 즐기고 있을 때 서해바다에서 벌어진 작은 전쟁으로 <권력의 덫> 제 1화-옷 로비 이야기는 일단 막을 내린다. 마치 <청춘의 덫>이 맥빠지게 끝난 것처럼.


서해바다에 평화가 돌아오자 또 다시 소프 오페라가 온 국민을 사로잡는다.  배우장관 손 숙을 주연으로 한 <권력의 덫> 제 2화-손 숙의 "이중생활". 그녀 역시 완벽한 소프 오페라의 주인공이었다. 일단 장관이라는 핵심적인 공적 영역에 진입하는데 있어서 여성이라는 사실 자체만으로 우리 언론에서는 일탈로 규정된다.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철저한 자기관리로 배우로서의 명성은 물론 권력의 연줄망에까지 닿게 된 여성. 게다가 청순하고, 여성적이며, 지적인 외모조건까지 갖춘 여성의 배우와 장관으로서의 "이중생활"은 소프 오페라와 일탈뉴스 거리로는 안성맞춤이었다. 취임 당시부터 자격시비의 불씨를 안았던 배우 손 숙은 배우와 장관의 이중적 정체성을 극복하지 못하고(아니 우리사회가 그럴 시간을 주지 않았다) 짧은 소프 오페라의 주인공이 된다.


공적영역을 주로 다루기 때문에 뉴스에는 여성들이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단 일탈영역에서만 예외이다. 그러다 보니 여성들은 주로 일탈보도에 등장하게 되고 결국 부정적인 여성 이미지만 생산하게 되는 것이다. 이 두건의 일탈보도를 접하면서 나는 언론학자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 크게 두 가지 문제가 마음에 걸렸다.

첫째는 언론이 이 사건들을 왜 소프 오페라 대본작성 수준에 그쳤냐는 것이다. 사실 '옷 로비' 의혹 사건은 그 여인들의 일탈 행위보도로 그칠 일이 아니다. 우리사회의 권력집단들 내에서 공적영역에서 권력을 가진 남자들의 부인들이 사적영역에서 공적영역과 똑같은 권력체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군대가 그렇고, 공무원사회가 그렇고, 기업들이 그렇다. 공적영역에서의 권력체계가 이와 같이 사적영역에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타파해야 할 권력남용이며 권력강화 기제인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권력강화 기제가 여성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림자 내조"가 실제로는 '그림자 권력'이 되게 만든 장본인들은 바로 권력을 실제로 가진 사람들이 아닌가. 부인들의 '내조'로 강화된 권력체계가 기능적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러한 이중적 권력체계는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그러한 권력체계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림자 권력'은 일탈이 아니라 일상성으로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언론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쟁점화 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옷 로비 의혹 사건의 보도는 소프 오페라 수준에 머물게 된 것이다. .


둘째로 나는 왜 수십 년 간 계속되어 온 남성들의 '옷 로비' 관행에 대해서는 언론이 시비하지 않는가 묻고 싶다. 여성들의 의복 상품권은 최근에 극히 일부 고위층에서나 유통되는 것이지만 남성들의 '양복표'는 이미 수십 년부터 우리나라에서 널리 통용되고 있지 않은가. 또 '골프로비'는 어떤가?  이런 식의 로비는 남성사회에서는 일탈이 아닌 일상성이 되었기 때문에 뉴스 가치가 없다는 것인가? 남편의 옷 로비는 덮어주고 사모님들의 옷 로비는 일탈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남성들의 양복표 로비와 골프로비도 똑같이 일탈로 다루어야 한다. 


손 숙 장관의 사임에 대해서도 배우 손 숙 개인의 일탈문제로 단순화 시킨 것이 문제이다. 준비된 대통령은 준비 안된 장관을 임명해도 된다는 것인가? 이것은 심각한 정치적인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이제 배우 손 숙의 짧은 장관 외도는 그저 한편의 소프 오페라로 끝나고 말았다.
  

이와 같은 일련의 사건 보도들을 접하면서 많은 여성들은 허탈해 하고 있다. 남성이 놓아둔 권력의 덫에 갇힌 여성들을 보면서 이 모든 것들이 정말 현실이 아닌 연속극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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