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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과 인간 <9> 선택
최은지 기자 | 승인 2019.03.10 22:04
 
이장덕 씨(60)는 경기 화성군청의 부녀복지계장이었다. 씨랜드 화재로 수사를 받다가 수첩을 공개했다. 건축물 및 시설의 인허가를 둘러싼 유착관계와 부당한 압력이 드러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영향을 미쳤다.
 
지금까지 이 씨는 언론의 취재요청을 거절했다. 자신이 나오고 옛날 일을 상기시키면 부모들의 가슴이 더 아플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재난과 인간>의 기획취지를 설명하자 처음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남편과 함께 2월 26일, 경기 수원의 노보텔앰배서더 1층 커피숍에 나왔다.
 
그는 현장을 살펴보니 도저히 허가를 내줄 수 없는 상태였다고 회상했다. 씨랜드에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논길은 차가 마주보면서 지나지 못할 정도로 좁았다. 시설은 휘발성 내장제와 컨테이너로 만들었다. 누가 봐도 문제가 있는데 허가를 내주라는 말이 이상해서 메모했다.
 
시설허가는 설치허가와 사용허가로 나뉜다. 설치허가 단계에서 지적된 점을 고쳐야 운영을 허락하는 사용허가를 내준다.
 
이 씨는 현장에서 발견한 사항을 정리해 설치허가의 조건으로 씨랜드에 제시했다. 교행이 가능하도록 길을 넓히거나 트럭 같이 큰 차가 올 때 마주 오는 차가 피할 수 있는 피양지를 만들고, 2층과 3층을 구성하는 컨테이너를 콘크리트로 바꾸라는 내용.
 
“잘못 허가를 내주면 생명하고 직결이 되는 거잖아요. 길도 그렇게 좁은데 그걸 그냥 내줬다가 버스라도 가다가 떨어져 봐요. 업주는 손해가 없어요. 다쳐서 죽는 사람이 손해인 거지. 현장을 보니까 도저히 이렇게 해주면 안 되겠다 싶어가지고."
 
인허가가 나지 않자 씨랜드 대표는 화성군청 사회복지과장을 통해 돈을 건넸다. 받지 않으면 자신에게 돈을 주지 않고도 줬다고 왜곡할까봐 수표를 복사하고 계좌번호를 알아내 돌려줬다.
 
돈이 통하지 않자 씨랜드 측은 남성 3명을 사무실로 보내 협박했다. 이 씨는 무슨 일이 생길까 두려워 큰집으로 아이들을 보냈다. 검사를 사칭한 전화까지 걸려왔다.
 
계속 버티며 설치허가 단계에서 제동을 걸자 이 씨는 다른 부서로 발령 났다. 지적과에서 근무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씨랜드에 불이 났다.
 
“세상에 그게 결국 하라는 대로 안 지켜서 화재가 난 거잖아요. 나는 다 허가조건을 적어줬는데 그걸 지키지 않고 다음 담당자한테 운영허가를 받아서 한 거죠. 참담하죠. 그 어린 생명이 뭘 알기나 하겠어요.”
 
시정조건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화재를 만들었다고 말할 때, 이 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는 구조적 문제를 건축물 자체, 소방시설, 매뉴얼, 불확실한 책임으로 나눠서 설명했다.
 
업체의 시설관리 문제도 함께 지적했다. 공무원은 현장에서 표면적인 부분만 점검한다. 업체가 구체적인 점검과 관리를 맡는데 규모가 영세해서 담당자가 자주 바뀌니 주기적이고 일관성 있는 관리가 어렵다는 뜻이다.
 
그는 사고 이후 경찰에 소환됐다. 며칠 간 집에 가지 못하고 조사를 받다가 옷을 갈아입고 오겠다고 말한 뒤 수첩을 가져갔다.
 
“잠시 생각을 했어요. 내가 그 사람들한테도 어차피 체계적으로 얘기를 해줘야 될 것 같아서. 왜냐면 아이들이 너무 억울하게 그렇게 희생을 당한 거니까. 이게 조서가 제대로 자세히 나와야 되잖아요.”
 
▲ 스토리오브서울 인터뷰에 응한 이장덕 씨 부부
주변의 반응은 어땠을까. 남편은 “내 입장도 똑같죠. 원칙이 아니면 안 하고. 또 그런 허가 신청이 들어온다면 최소한 법적 구비 요건이 돼야 해주는 거니까. 뭐 압력이 들어온다고 그걸 안 갖췄는데 해줄 순 없잖아요. 잘했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가족과 친구만이 아니었다. 이름도 모르는 국민들이 격려편지를 보냈다. 부부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먼 곳에서 찾아왔다. 응원에 감사하면서도 아이들의 부모가 생각나서 마음이 무거워졌다고 했다.
 
이 씨는 사고발생 1년 뒤에 명예퇴직을 했다. 공부를 더 하고 싶었다. 공무원을 그만두고 4년 만에 법학과를 졸업하고 2년 동안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했다. 남편과 함께 국가공인 예절지도사 자격증을 따서 어린이집을 다니며 가르칠 예정이다.
 
후회한 적은 없는지를 묻자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다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은 선택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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