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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과 인간 (6) 조율
최은지 기자 | 승인 2019.03.10 22:01
 
이미례 씨(52)는 피아노를 조율하던 집에서 아이를 만났다. 대인기피증이 있다고 했다. 아무하고도 얘기를 하지 않고, 학교에서는 고개만 숙인다고 했다.
 
심리치료의 내용을 떠올려 한 마디를 했다. “너는 말이 없는데 글을 참 잘 쓰겠구나.” 그리고는 기다렸다.
 
먼발치에서 바라보다가 아이가 옆에 다가와 피아노를 만졌다. 이 씨는 다시 한 마디를 했다. “원래 말 잘하는 아이들은 글을 못 써. 말을 안 하는 아이들은 글로 표현을 참 잘하지?”
 
아이가 또 말을 했다. “아줌마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나 우리 학교에서 두 번째로 글 잘 쓰는데.” 이 씨가 대답했다. “그래? 그렇게 보여. 너 글씨도 잘 쓰지? 우리 딸도 그러는데.”
 
두 사람이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누군가 왔다 갔다 했다. 아이 엄마였다. 자기 아이가 남하고 대화하는 모습을 처음 본다, 이렇게 말을 잘 하는 줄 몰랐다고 했다.
 
이 씨는 딸 찬형이를 여섯 살 때 잃었다.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에서였다. 1999년 6월 30일 경기 화성군(지금 화성시) 수련원에서 일어난 사고. 서울 송파구 문정동의 소망유치원생 18명, 경기 부천 이월드유치원생 1명, 어른 4명이 숨졌다.
 
이 씨는 미술을 통해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강남대 사회교육원의 미술심리 상담사 과정에 등록하고 2004년부터 약 1년 간 들었다.
 
‘다이내믹 페인팅’을 배웠다. 손, 발, 붓에 물감을 묻혀 종이를 누르는 압력, 즉 ‘필압’으로 감정을 표출하는 방법이다. 내면에 어떤 감정이 있으면 손에 물감을 묻혔을 때 꾹꾹 누르거나 특정한 색깔을 많이 쓰면서 감정을 표출한다.
 
▲ 이미례 씨가 미술심리를 배울 때의 모습. 오른쪽은 다이내믹 페인팅 (사진제공=이주영 소장)
이주영 한국아트테라피연구소장(50)은 강남대 사회교육원에서 이 씨를 가르쳤다. 트라우마가 아주 심한 상태였다고 수업초반의 모습을 설명했다. 그림을 그리기만 하면 눈물을 쏟고, 울음 때문에 말을 잇기 어렵고, 눈동자가 떨렸다.
 
이 씨는 빨간색을 많이 썼다. 찬형이가 좋아했던 색깔. 이 소장은 현실에서 채우지 못한 부족한 부분이 무의식에서 나타난다, 현실에서의 미해결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욕망이 무의식에 나타난다고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연구로 설명했다.
 
▲ 이미례 씨가 피아노 앞에서 찍은 사진 (사진제공=이미례 씨)
지금의 이 씨는 많이 밝아졌다. 이런 변화에 대해 이 소장은 “그림을 통해 자신을 반성하고 스스로 괜찮은 엄마였다고 용서하면서 부정적인 감정이 줄어들었다”고 평가했다.
 
피아노 조율을 하던 집에서 대인기피증이 있는 아이의 입을 열었던 일에 대해 이 소장은 스스로를 먼저 치유해야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고 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건, 스스로의 마음이 어느 정도 치유됐다는 뜻이다.
 
“딸을 하늘로 보내지 못하고 마음속에 담았었는데 이제야 편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공부를 마치면서 말하셨어요.”
 
피아노 조율을 배우고, 일을 하면서 이 씨는 더 큰 치유를 받았다. 온 정신을 집중해서 음을 맞추는 기쁨. 엉망이었던 소리를 아름다운 소리로 변화시키는 황홀함. 정신적으로 또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그에게 피아노는 큰 힘이 됐다.
 
정재봉 씨(62)는 “이 씨가 믿을 수 있고 성실하다”고 말했다. 정 씨는 이 씨가 일하는 ‘피아노 갤러리’의 대표다.
 
피아노 조율사는 조율만이 아니라 피아노를 갈고 망치질까지 해야 한다. 건장한 남성도 적성에 맞지 않으면 1주일을 버텨내지 못한다. 그런데도 이 씨는 성실하고 재미있게 일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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