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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작가 윤석남, 삶으로 여성을 말하다
오주비 기자 | 승인 2019.01.27 22:02

경기도 화성시 안녕길 24번길. 지하철 1호선 끝의 병점역에서 내렸다. 택시를 타고 15분을 더 가서 도착했다. 한적한 시골 전원주택이었다.

오후 1시 52분. 그곳으로 차가 한 대 들어온다. 짧은 커트머리의 여성이 운전석에서 내린다. 윤석남 작가. 올해 나이 여든. 마주 잡은 손에서 느껴지는 거칠음과 눈가의 주름은 그가 살았던 세월의 흔적을 알려준다.

“만나서 반가워요. 여기가 서울이랑 멀어서 오느라 고생했죠?” 커피라도 마시면서 하자며 작업실로 안내한다. 형형색색의 물감과 통에 빽빽하게 꽂힌 붓, 그리고 완성되기 전의 그림.

▲윤석남 작가의 작업실

미국 워싱턴DC의 스미소니언 박물관 홈페이지에 윤석남 작가는 ‘선구적 페미니스트 작가(Pioneering feminist artist)’로 나온다. 작품 ‘어머니Ⅲ’는 지난해 12월 14일부터 올해 11월 17일까지 전시된다.

그는 그림으로 자신과 여성을 이야기한다. 자신이 봤던 여성을 그렸고, 자신의 삶을 작품으로 표현했다. 그런 그를 많은 사람이 페미니즘의 대모, 여성주의 작가로 기억했다. 대모라는 말이 부담스럽지만, 죽을 때까지 그렇게 불리는 아티스트가 되기를 그는 소원한다.

1979년 4월 25일

“남편 월급이 들어오는 날이었어. 나, 남편, 시어머니 이렇게 세 식구 생활비를 받아서 생활했는데, 지금 돈으로 200만 원, 300만 원 정도 될 거야. 근데 그걸 몽땅 화구 사는 데 썼어. 그래서 기억해, 내가 그림을 그리기로 마음먹은 날.”
 
그림을 시작하지 않으면 못 살 것 같다고 하자 친구는 그를 화구 파는 곳으로 데려갔다. 왜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으며 골방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다. 누구를 만나고 싶지도,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글을 쓰고 싶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모른 채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대학에 들어갔다.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만둔다.
 
“등록금이 없어서 2학기에 그만두고 직장에 들어갔어. 남편을 만나 연애도 하고. 그때는 연애가 최고인 줄 알았지. 그래서 결혼도 하고. 살다 보니까 이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하루에 100번 들었어. 이혼은 못 하고, 살다 보니 아기도 생기고. 그냥 살았지.”
 
결혼생활은 부족할 게 없었다. 아파트에 사는 게 일상적이지 않았던 시절, 25평 아파트에서 32평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사람들은 시어머니 잘 모시고, 남편 내조를 잘하는 그에게 예쁘게 산다고 말했다.

하지만 불안했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처럼 웃었지만 윤석남의 인생을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목소리와 끊임없이 마주했다. 삶이 이렇게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그를 끝없이 괴롭혔다.
 
“발랄한 거를 잊어버릴 필요는 없잖아? 나는 점잖은 게 안 되는 거 같아. 나만의 방식으로 주책없이 발랄하게 살려고.”

자신의 방식으로 주책없이 밝게 살겠다는 윤석남 작가. 불안정했던 삶에 선택한 방식은 그림이었다. 그림을 통해 다시 살아나갔다.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나씩 하나씩 들려주기 시작했다. 1982년 문예진흥원 미술회관(현재 아르코미술관)에서 그는 첫 개인전 ‘윤석남전’을 열었다.
 
어머니, 주체적인 삶을 사는 사람

“책 자체를 좋아하셨어. 동아일보가 오면 신문이 비싸니까 사지는 못하고 마을 사람들이 돌려 봤는데 거기에 실린 대중소설 작가였잖아. 대중들이 너무 좋아하는 작가. 그가 자기 집으로 하숙을 들어왔으니 안 반할 수가 있겠어? 인연이지.”

작가의 아버지는 윤백남(1888~1954). 한국최초의 대중소설 ‘대도전(大盜傳)’을 썼다. 언론인, 대중소설가, 극작가, 영화감독. 많은 타이틀을 가진 43살 윤백남을 19살 소녀가 만나서 결혼했다가 39살에 혼자가 됐다. 그렇게 어머니는 6명의 아이들과 남았다.

아버지는 문학적으로, 예술적으로 유명했지만 금전적으로 어려웠다. 집도 없었다. 어머니는 흙벽돌을 찍어 방 2개에 마루 하나짜리 집을 만들었다. 그 곳에서 일곱 식구가 살았다고 한다.

“나는 말이야, 맨날 울었을 것 같아. 근데 우리 어머니는 한 번도 우리 앞에서 운 적이 없어. 혼자 그 나이에 남겨져서 자식들을 모두 키워내기까지 힘드셨을 텐데 말이야.”
 
그는 누구보다 주체적인 삶을 살았던 어머니를 아버지보다 더 존경한다. 책임감과 정직함으로 삶을 사셨던 어머니. 그래서 어머니의 일생을 마음속에서 끄집어내어 작품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방 2개를 터서 만든 8평 정도의 작업실에 어머니를 모셔놓고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첫 개인전에 어머니를 전시했다. 모성의 의미가 약해져 가는 현대에 어머니의 삶을 통해 희생만이 모성이 아님을 말하고 싶었다. 자신의 삶을 온전히 스스로 살았던 어머니의 모습도 모성임을 전하고 싶었다.

▲작업실에 있는 작품, ‘어머니Ⅲ’

내가 모르는 너에게

그는 역사 속에 스러져간 여성과 현재를 사는 주변 여성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건넨다. 그림과 작품 속 주인공은 이런 삶을 살았다. 그림을 보는 당신의 삶도 이처럼 멋있는 삶이라고 말이다.

김만덕, 이매창, 허난설헌을 과거에서 현실로 끌어냈다. 그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읽으며 어떤 사상을 가졌을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을지를 상상해 표현했다. 주체적으로 살았던 여성을 현재에 기록함으로써, 우리도 주체적으로 살자는 말을 전한다.

“허난설헌도 그렇고 이매창도 그렇고. 그 시대에 태어났어도 시를 썼잖아요? 자기의식대로, 의도대로 그랬을 때는 얼굴에 그런 의지가 굳게 나타난 사람이었지 않을까? 눈이 크건 작건 상관없이 눈동자에 맺혀 있는 뭐가 있었을 것 같아. 입매도 보통은 아니었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려요.”

요즘은 작가에게 소중한 여성을 그리는 중이다. 지금의 그가 되기까지 많은 도움이 됐던 20명의 친구. 나이도 직업도 다양한 진짜 친구. 그들이 없었으면 지금의 자신 또한 없었을 거라고 한다. 여성이 나누는 우정의 힘을 보여주려고 한다. 하지만 쉽지만은 않다.
 
“집이나 직장에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와서 작업을 할 건데 내가 그 얘기는 꼭 해주려고. 너는 진짜 더 예쁘다고 말이야.”

남성이 그림을 그리고, 남성이 그림을 소유했던 시대처럼 여성을 아름답게 그려내는 일은 그의 목적이 아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을지 느껴지도록 사람의 인생을 그림에 담는다. 그래서 작품 속 여성은 입체적이다. 모두가 개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번 초상화 작업은 쉽게 속도가 나지 않는다. 친구들은 괜찮다고 했지만, 자신이 그려진 모습에 충격 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그래도 다음에 있을 전시에는 꼭 친구들의 초상화를 걸겠다고 다짐한다.

▲윤석남 작가가 작업실에서 인터뷰하는 모습

의자를 이용한 설치작품 또한 사람들과 소통하는 길이다. ‘핑크룸’이 대표적이다. 날카롭고 뾰족한 갈고리 다리의 의자가 온통 형광 분홍색인 방에 놓여있다. 그림을 시작하기 전의 윤석남 작가의 삶. 또 사회가 규정하는 여성의 삶을 나타낸다. 기괴한 소파와 기괴한 분위기. 가부장적 사회 속에 억압되는 여성의 삶을 보여준다.

“나는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혼자가 아니고 누군가 내가 여기에 존재하고 있는 것을 알아주는 순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림을 통해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 같아.”
 
인터뷰가 끝났다. 병점역까지 태워다 줄 테니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한다. 시내에 자주 나가는지 물었다. 갈 일이 많이 없다고 웃으며 말한다. 차에 내비게이션은 있는데 쓸 줄 모른다고 한다. 그래도 표지판이 잘 돼 있으니 가보자고 말하며 안전벨트를 맨다.
 
그는 가보지 않은 길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디든 가려는 곳에는 표지판이 있다며 말이다. 마치 마흔이라는 나이에 그림이라는 삶의 표지판을 따라 살아온 그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을 따라 살아온 40년의 여정은 윤석남의 속도로 살아간 윤석남의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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