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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직업 (3) 문방구
박세인 기자 | 승인 2019.01.20 22:04

 

처음에는 그저 오래된 동네 문방구를 찾고 싶었다. 밝은 조명에 깔끔한 매장, 교육받은 점원이 있는 프랜차이즈 문구점은 많다. 그러나 문 앞 오락기계에 옹기종기 모여 게임하는 아이들을 주인이 흐뭇하게 바라보는 모습은 찾기 힘들다.

김지영 씨(52)는 1986년 서울 혜화여고를 졸업했다. 학교 앞 ‘까치문방구’ 아저씨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이지예 씨(20)는 초등학생 시절에 꿈이 있었다. 어른이 되면 문방구에 가서 불량식품(?)을 종류별로 다 먹어보겠다고 했다. 그 많던 문방구는 어디로 갔을까.

인터넷에서 오래된 문방구를 검색했더니 서울 성북구 성북동의 ‘ET문구완구’가 나왔다. 취재하러 갔지만 퇴짜를 맞았다. 대신 근처 문방구를 소개받았다.

다시 생각했다. 기왕 오래된 문구점을 취재한다면, 가장 오래된 곳을 가보는 게 의미 있지 않을까? 검색했더니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문구점이 보였다. 주소지로 찾아갔다. 그런데 간판이 달랐다. 일단 들어가 보기로 했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의 ‘아림사문구.’ 원래 이 자리에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문방구로 알려진 ‘보성문구사’가 있었다. 70대 노부부가 50년 동안 운영했는데 2013년부터 급매로 내놓았다.

▲아림사문구의 모습

아시아경제에 따르면 2017년 4월까지 몇 명이 매매를 원했지만 노부부는 문구점을 할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며 거절했다. 2018년 6월 새 주인이 나타났다. 손화준(65) 김정란 씨(59) 부부.

기자가 찾아갔던 2018년 11월 8일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김 씨는 문 앞까지 나와 필요한 게 무엇이냐고 했다. “보성문구사가 있던 곳이 맞냐”고 묻자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맞다”고 대답했다.

아림사문구는 보성문구사의 옆 건물에 있다. 원래의 자리는 텅 빈 상태로 임대자를 기다린다. 옮긴 이유를 묻자 김 씨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거기서 오래 했어. 그랬는데 건물주가 임대료를 한꺼번에 올리는 거야.”

통계청에 따르면 문구용품 소매점포는 2006년 2만 583곳에서 2016년 1만 963곳으로 줄었다. 초중고 학생이 감소했고 2011년부터 시행된 ‘학습준비물지원제도’의 영향이 컸다.

3년 간 적자를 보며 운영하느라 김 씨 부부는 고민이 컸다. 골머리를 앓던 차에 ‘통장님이 내 가게로 오면 다른 사람보다 고려해주겠다’고 동네 반장이 제안했다.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원래 있던 물건과 시설을 다 바꿔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결국 받아들였다.
 
“아는 분이 문구점을 하셨어. 그 분이 다른 분한테 ‘여기 자리 나오니까 해보세요’라고 했는데 그 분이 남편을 추천한 거야. 그래서 하게 됐어.”

갑작스럽게 문방구를 시작하면서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동네 터줏대감이 됐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반갑게 찾아오면 보람을 느낀다.

김 씨 부부는 아이들에게 친절하려고 노력한다. “아저씨가 이거 100원 깎아주는 거야.” 학용품을 사려던 정리지 양(11)은 “(아줌마의) 친절함이 좋다”고 했다.

다른 아이가 장난감을 사러 오자 김 씨는 책가방에 장난감을 넣어줬다. 어떤 아이가 장난감 가격을 물어봤을 때는 장난스럽고도 발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김 씨는 기자와 대화를 나누다가 휴대전화를 만졌다. 장애인 휠체어 봉사에 가야 한다고 했다. 늦은 시간, 여성을 위해 집 앞까지 동행하는 ‘여성 안심귀가 스카우트’로도 활동한다.

가게에는 불량식품이나 오락기계가 없었다. 정부가 2013년부터 ‘사회 4대악 근절’ 정책의 하나로 학교 앞 불량식품을 대대적으로 단속하면서다.

김 씨 부부도 문방구 앞에 오락기계를 놓았던 적이 있다. 아이들이 집에 있는 동전을 다 가져오니 난감했다. 학교 가는 시간을 잊거나 밤까지 게임하는 모습을 보고 기계를 없앴다. 김 씨는 해가 지려고 할 때, 아이들을 보면 집에 빨리 가라고 재촉한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체력이 딸려. 힘들어. 하는 데까지는 해보고.” 아림사문구 같은 곳이 언제까지 많은 어린이의 추억에 남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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