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김포 소녀의 하소연

"아, 드디어 김포에 도착했다!"
지루한 여행을 끝낸 승객들은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이런 감탄사를 내뱉는다. 하지만 출구를 나서면서 이들은 머리를 갸우뚱한다. 지리 시간에 배운 김포평야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버스정류장에서 또 한 번 놀란다. '김포'라는 표지판을 단 버스가 거의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가 김포 맞나?'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김포의 모습을 찾기 힘들다.

서울공항이 아닌 김포공항


이런 의문들은 너무나 당연하다. 김포공항이 김포에 없는데 어떻게 김포의 자취를 찾을 수 있단 말인가? 김포공항은 현재 서울특별시 강서구의 관할지역이 되어 서울시의 모자라는 예산을 충당하며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김포에도 없는 공항을 왜 '김포공항'이라고 했을까? 현재 김포공항이 위치한 곳은 예전엔 김포 땅이었다. 김포평야의 한 맥을 유지하며 황금빛 곡창지대를 자랑하던 역사적인 장소였다. 하지만 정부는 서울에서 비교적 가깝고, 군민의 힘도 약한 김포 땅에 공항을 짓기 시작했다. 김포군민(98년 4월 1일자로 김포시민이 되긴 했지만)들은 공항으로 인해 김포가 발전될 것을 굳게 믿고 완성의 그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드디어 공항은 완성되었고 김포군민은 기대와 흥분에 휩싸였다. 오늘날 김포공항의 위상과 경제 가치를 생각하면 김포군민의 이러한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공항이 완성되자 서울시는 아예 행정구역을 개편하여 공항을 서울시로 포함시켰다. 공항이 주는 모든 이익이 고스라니 서울시민의 주머니로 가게 된 셈이다. 김포군민은 공항이 남긴 엄청난 폐해만 짊어진 채 오늘날까지 살아왔다. 단물은 서울시민이 다 빨아먹고, 쓴물만이 김포군민의 몫이 되었다.    

너희같은 촌년들이 여기 아니면 어디서 비행기 구경하냐


매년 수능 때만 되면 언론은 김포 학생들이 소음으로 겪는 피해에 대한 기사를 내보낸다. 이들은 마치 김포 학생들을 동정이나 하듯 마구 떠들어댄다. 하지만 어떠한 대안도 제시하지 않는다. 단지 김포에 살면 어쩔 수 없다는 투로 결론을 내린다. 당사자가 아닌 이상 어찌 그 속을 다 알 수 있겠는가.   

내가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그 날은 '전국 영어 듣기 평가'가 있는 날이었다. 모두들 조용한 분위기에서 문제를 풀고 있었다. 하지만 밖에서 들려오는 비행기의 굉음으로 문제를 듣지 못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한 용기 있는 친구가 "선생님, 이거 너무 불공평해요. 최소한 학교 위에는 비행기를 못 다니게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라고 불만을 얘기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야, 너희 같은 촌년들이 여기 아니면 어디서 비행기 구경하냐?"라는 말로 학생들의 불만을 일축해 버렸다. 서울에 사는 선생님이 우리의 고충을 알리야 없겠지만 김포에 사는 촌년들은 말할 권리도 없단 말인가.

대도시 이기주의에 의해 피해를 본 소도시는 비단 김포뿐이 아니다. 관광명소로 유명한 강화도 그 중 하나다. 강화는 해마다 많은 관광수입을 올리며 지역경제의 활성화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이를 모를 인천광역시가 아니다. 인천은 광역시로 개편하면서 엄청난 예산이 필요했다. 그 탈출구는 수많은 소도시의 통합으로 이어지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강화였다. 강화는 1995년 3월 1일자로 인천광역시의 훌륭한 충견이 되었다.

김포는 김포의 훌륭한 상징물이 될 뻔한 김포공항을 서울시에 빼앗겼다. 그리고 엄청난 소음만이 김포에 남겨졌다. 분 간격으로 수없이 오가는 비행기를 보며 이것을 고맙게 여겨야 할 판이다. 남들은 이렇게 생각하겠지. 김포의 발전은 김포공항의 뒷받침으로 이어진 거라고.

                                                                                    최상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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